완전히 다른 물질적 구성이 똑같은 속성을 예화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들

서로 다른 물질적 구성이, 우리의 자연 세계 내에서, 동일한 속성을 형성할 수 있을까요?
물론 고통이라는 속성을 예화하는 다양한 물리적 구성들이 상상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가능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물론 예를 들어 고통이라는 속성을 예화하는 다양한 물리적 구성들이 상상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또 한편, 우리 세계 안에서라도 인간의 고통을 예화하는 물리적 반응 (C-신경발화)와 해파리의 고통을 예화하는 물리적 반응은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인간의 고통과 해파리의 고통이라는 두 가지 다른 속성을 예화 시키는 물리적 반응이 다른 것이지, 두 물리적 구성의 어떤 공통점이 고통이라는 공통의 현상을 예화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 시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두 물리적 구성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면, 이 서로 다른 두 물리적 구성이 예화하는 속성이 동일한 것인지 의심스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예로, 나무A와 나무A에서 나뭇잎 하나만 제외한 나무B가 있다고 해봅시다. 누군가는 둘의 물리적 구성은 나뭇잎 하나 차이로 서로 다르지만, 둘이 가지고 있는 속성들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은 나무A임과 나무B임이라는 서로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사소한 물리적 구성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즉 사소한 물리적 구성의 차이가 속성의 차이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튼 제가 궁금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물질적 구성이 똑같은 속성을 예화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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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새길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한 가지 해석은

완전히 다른 물질적 구성을 띠는 두 대상이 모든 면에서 똑같은 속성을 예화할 수 있을까요?

일 것인데요. 이런 입장을 옹호하는 입장은 희박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완전히 다른 물질적 구성" 자체가 "모든 면에서 똑같은 속성을 예화"한다는 말과 개념적으로 배치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완전히 다른 물질적 구성을 띠는 두 (물리적) 기제가 똑같은 (심리적) 속성을 예화할 수 있을까요?

라는 해석을 취할 경우, 역시 큰 쟁점은 복수 실현 논제일 것입니다. 물론 많은 논쟁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복수 실현 논제를 받아들이는 측에선 이 질문에 대해 "예"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한편

라는 서술과

라는 서술은 사뭇 대치되는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우려가 드네요.)

그리고

라는 입장에 대해서 많은 전통적 물리주의자들은

그렇지. 뭐 굳이 나무A와 나무B과 비-물리적 속성에서 같다고 봐야할 이유가 있겠어? 그럼 이론적 부담은 딱히 지고 싶지 않고, 또 질 필요도 없는데.

라고 반응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이런 전통적 물리주의자들은 수반 논제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물리주의'라는 이름값을 하기에는 충분하다고 볼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라는 질문은 재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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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복수 실현 논제를 중심으로 좀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린 동기를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댓글을 남깁니다.

(1)복수 실현이 가능하다는 입장에 따라
X라는 정신 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상당히 다른 물질적 구성 A와 B가 있다고 한다면,
A에 대한 이해를 통해 B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반대로 복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X라는 정신 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구성 A와 B는 (어떤 의미에서인지는 생각해봐야하겠지만..)동일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A에 대한 이해를 통해 B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은 가능한 작업일 것입니다.

AI의 작동 과정에 대한 앎을 통해 인간의 정신활동에 대한 앎을 추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가 존재하며, (Gualtiero Piccinini (2015), Catherine Stinson (2020), and Lisa Miracchi (2019) 그리고 Buckner (2023)) 제 생각에는 이러한 논의에 있어 복수 실현의 가능성이 연관성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좀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복수 실현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한 쪽에 대한 이해로 다른 한 쪽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지도 고민해봐야 할 것 같군요.

선생님의 뛰어난 분석과 심리철학적 지식에 도움을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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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트롭 이론(trop theory)'에서 제시되는 주장인 것 같아요. 속성들 역시 일종의 개체들이라서, 가령, 공 A와 공 B가 모두 '빨갛다'고 하더라도, 공 A의 빨강임과 공 B의 빨강임이 서로 다른 '개체적 속성(트롭)'이라고 주장하는 형이상학 이론 말이에요. 트롭 이론이 복수 실현 논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 입장으로 제시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만약 트롭 이론을 바탕으로 복수 실현 논제를 비판하려고 한다면 트롭 이론을 둘러싼 쟁점들을 살펴보시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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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랑 이번 여름방학을 통해서 심리철학을 좀 봐야할 것 같아요. 아니, 전 동양철학 전공자였는데 점점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거 있죠? 오랜만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네요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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