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적 니체 해석 핵심 요약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에 대한 얘기를 꺼낸 김에 예전에 써놨던 글뭉치들을 조합해서 요약글을 써봅니다.

1. 자연주의란 무엇인가?

자연주의는 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와 실질적 자연주의(substantive naturalism)로 나눠진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철학 연구는 과학의 경험적 연구와 연속성을 가져야 함’을 추구하며, 다시 강한(hard) 버전과 약한(soft) 버전으로 나눠진다. 강한 버전은 연속성을 자연과학이나 물리학의 영역으로 제한하는 반면, 약한 버전은 그것을 넘어 사회과학까지 확대한다. 이때, 연속성을 가진다는 말 속 ‘연속성’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연속성을 결과 연속성(result-continuity)으로 받아들일 경우, ‘철학 이론은 과학 이론의 결과와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즉, 철학 이론은 과학 이론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방법 연속성(methods-continuity)으로 받아들일 경우, ‘철학 이론은 과학 이론과 탐구 방법의 측면에서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 즉, 철학 이론은 과학 이론의 성공적 탐구 방법인 실험이나 그들의 설명 방식과 이해 방식인 인과와 귀납적 추론 따위를 모방해야 한다.’

실질적 자연주의는 ‘존재론적 접근’과 ‘의미론적 접근’으로 나눠진다. 전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연적’이라고 주장하는 접근법이며, 후자는 ‘적절한 철학적 분석은 경험적 연구를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접근법이다. 이들을 강하게 밀고 가는 경우가 물리주의이다.

2. 니체는 어떤 종류의 자연주의자인가?

니체는 방법 연속성을 강조하는 방법-연속적-자연주의자이다. 즉, 그는 과학 이론의 설명 방식과 이해 방식인 인과와 귀납적 추론을 받아들여 철학 이론을 만들려는 철학자이다. 동시에 그는 19세기 독일에서 널리 퍼져 있던 ‘인간은 다른 자연 산물과 달리 더 고상한 다른 기원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과학적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결과 연속성을 갖는다. 그래서 니체는 실제 과학적 결과(특히, 생리학)에 근거하여 도덕과 같은 인간의 중요한 현상을 설명하려 하고, 그 현상들을 인과 결정 요인들을 밝히는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과학에 이론적 모델을 두고 있다.

위 주장은 니체가 ‘인간 유형’을 논했다는 점을 통해 지지받는다. 그는 ‘각각의 인간은 고정된 정신-육체적 구조를 가지며, 그것이 그를 특정한 인간 유형으로 규정한다’라고 여긴다. 정신-육체적 구조가 유형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유형-사실(type-facts)’이다. 그렇다면 유형-사실은 인간의 유형을, 그가 누구인지, 그가 근본적으로 무엇인지, 그 본성 내면의 욕구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이는 나무에 열린 열매를 보고 나무의 유형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무에 대한 자연적 사실이 그 열매를 설명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유형-사실은 그가 가지게 되는 생각이나 가치를 설명해준다. 이 점에서 니체는 자연적 탐구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고, 자연주의적 철학자이다.

3.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은 무엇을 함의하는가?
니체의 유형-사실론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수 있다.

  1. 각 개인은 그 사람을 특정한 유형의 사람으로 규정해주는 독특한 정신적-심리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

  2. 정신적-심리적 구성은 한 사람에 대한 생리적 사실과 무의식적 충동과 정서 모두를 의미하고, 다른 말로 ‘유형-사실’이라 부를 수 있다. (유형 사실은 한 사람의 삶에 있어 인과적으로 일차적(causally primary)이다.)

  3. 유형-사실들의 인과적 강도는 한 사람의 삶의 시기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그 정도는 다른 유형-사실들의 인과적 영향이나 환경적 영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유형-사실들은 한 사람에 관한 다른 모든 사실이 그 사람의 유형-사실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명적으로 일차적(explanatorily primary)이다.)

통상적인 도덕적 사고는 약물 복용이나 심신미약과 같은 예외적 상황이 아닌 이상 주체가 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지닌다고 여긴다. 이렇게 도덕적 책임을 행위 주체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주체가 자율적이라는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한다. 유형-사실론은 이러한 ‘자율성 조건(the Autonomy Condition)’에 대해 비판을 가할 수 있다.

유형-사실론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의 차원에 떠오르는 것은 무의식적이거나 육체적인 무언가의 결과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의식적 삶은 기본적으로 부수적이다. 의식적 상태가 자율적 행위를 형성하는 것이라면, 그러한 자율적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의식 또한 본성적 사실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니체가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없애버린 것은 아니다. 니체는 유형-사실이 한 사람의 인생의 모든 면을 결정하지는 않고, 사람의 삶은 상황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상황과 환경은 유형-사실에 의해 인과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상황과 환경이 가치들이라면, 인간은 유형-사실에 손을 댈 수는 없어도 가치들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자신 삶을 창조해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도덕적 책임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마토 모종은 커서 토마토가 될 수밖에 없는 삶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정원사로서의 우리는 그것의 환경을 잘 조성하여 그 궤적 속의 한 삶의 방식을 실현시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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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자 니체의 반대편에 있는 이가 누구일까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성이나 합리성 같은 것을 의식의 내부로 한정시키는 데카르트주의적 의식철학자들 및 관념론자들인데요. 그렇다면 이 대립이 어떤 강도의 대립인지도 궁금해집니다. 가령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채택하는 것과, 자연주의적 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rationality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양립가능하다고 본다면, (행위-책임에 대한 본문의 내용도 그렇고) 느낌상 니체가 인간의 rationality 자체를 완전히 부정했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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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니체 철학 내부로 한정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은 널리 퍼져있는 니체 해석인 네하마스로 대표되는 실존주의적 니체 해석과 결정적으로 대립합니다. 후자에 따르면 니체는 우리 각자가 자신 삶의 방향을 자신의 자율적 판단과 의도대로 선택하고 지향하는 삶을 강조한 철학자입니다. 하지만 자연주의적 해석이 옳다고 한다면,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지향'하는 것은 '유형-사실'에 입각해있는 것이지 '자신의 자율적 판단과 의도'에 따르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렇기에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은 기존의 주류 해석 방법 중 하나인 실존주의적 니체 해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해석이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은 이성의 독자성을 강조한 철학자들과 반대편에 서 있는 철학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관계는 사실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을 넘어 거의 모든 니체 해석 라인이 설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에의 의지'에 근거하여 니체를 해석하는 쪽도 이성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결국 이성은 힘에의 의지가 발현된 것에 불과한 것이기에 의식철학 혹은 관념론적 철학과 니체는 대립한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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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어디까지나 아마추어의 넋두리입니다만, <우상의 황혼>을 읽으며

die Lehre vom Willen ist wesentlich erfunden zum Zweck der Strafe

대목을 보고 "오, 펀치라인!"이라고 반응했던 사람으로서 뭔가 "나의 니체는 이렇지 않아!"라고 하고 싶어지네요 :s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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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실존주의적인 니체 해석이 주류인 한국에서 공부를 시작하다보니 자연주의적 니체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나의 니체는 이렇지 않아!!"라고 생각했으나 논변의 탄탄함에 무릎꿇었습니다 :bowing_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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