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과 요즘 읽은 몇 가지에 대한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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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을수록, 그 책을 우리가 너무 온갖 해석들을 주렁주렁 달아놓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윤리학에 나열된 온갖 덕목들을, 우리는 그걸 어떻게든 정의하려 하고, 정의를 찾으려고 하고 그러고 있지만, 그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원하던 바였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과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덕목에 대한 "엄밀한 정의" 혹은 달리보자면, 일종의 플라톤적 이데아를 얻을 수 있을까, 여겼을까? (나는 아직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정의, 혹은 다른 학문적 방법론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덕을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것은 그저 흐릿하게, 어떤 예시를 통해서 드러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 여겼을 것 같다. 그림자가 있으며, 우리는 거기에 닿을 수 있다고,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 싶은 바의 전부였던 것 아닐까.
난 차라리 일종의 자기계발서로, 실용적 지침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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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문단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점점 더 추상적인 사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나는 이제 보다 구체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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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수학에 대한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다. 대수학이란 연산을 통해 정의되는 수학적 관계에 대한 학문이다. +뿐 아니라, 어떠한 임의의 연산 관계도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연산 관계라는 슬롯에 들어가는 수는 엄밀히 말하면, 대수학의 관심은 아니다. 이건 수론의 영역이다.

해석학은 함수에 관한 학문이다. 함수는 연속적이며, 일종의 길게 쏘아진 로프 같은 것이다.

기하학은 두 점 사이의 공간적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이걸 아는 순간, 내가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던 대수학 교재의 첫 장을 이해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론이 무엇인지, 왜 그것이 대수학의 영역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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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을 읽는다.
피에르 아도의 <고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겹쳐 읽는다. 아도의 책이 의외로 앙상하고, 오늘날 기준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2000년대 들어서 헬레니즘과 고대 후기 철학에 대한 연구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리고 증가하고 있다.)

라에르티오스는 철학의 기원으로 고대 이집트의 신관들, 페르시아의 마기들, 인도의 나체 철학자들, 갈리아의 드루이드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한다. 하지만 그는 철학이 그리스인의 발명이라 단언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서 철학은 자연학 - 논리학/수사학 - 윤리학을 모두 포괄하는 학문이라는 점이다. 철학의 기원을 말할 때, 이는 대체로 자연학의 영역에 해당하는 주장을 한다는 의미로 말한 듯하다.

라에르티오스는 윤리학이 철학의 영역에 들어선 것은 소크라테스의 공로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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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윌리엄 제임스와 존 듀이에 대해 생각한다.
이들은 "경험"을 중요시하면서, 학술적인 개념어로 시작하는 철학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철학은 개념어가 아니라, "경험", 즉 현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자주 잊는 바이다.

언어 철학에서 "의미"에 대한 연구는, 말 그대로 우리가 언어를 통해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는, 그 현상을 탐구하려는 목적이다. 명제와 같은 것도, 결국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상정"된 것이지, 그것이 존재한다 확실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난 점점 더 영미권의 자연주의적 경향에 호의적이게 되고 있다. 스테판 스티치의 실험 철학은 물론, 여러 인지과학과 인지언어학, 심리학적 실험 결과들을 존중하게 되었다. 이들의 보편성은 여전히 미심쩍고, 데이터에 비해 비약되는 내용이 존재하지만 분명 진실의 파편은 가지고 있다 여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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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이 되면 뭘 하지? 하던 것이 죄다 망하면?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죠.
그래서 유학을 간다고 했다. 그 나이에? 유학? 나조차도 놀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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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에서 윤리학은 기하학에서와 같은 엄밀함을 기대할 수 없고 오직 대략적인 정도의 엄밀함만을 바라야 한다고 말하죠 아마.
그런데 제가 읽어본 바로는 딱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목을 엄밀하게 정의하려는 작업은 별로 본 적이 없네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문헌학적으로 워낙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 저서라 정합적인 해석을 위해서 상세한 주석을 다는 논문은 많았지만 엄밀한 정의를 하려는 작업은 거의 본 적이 없는데, 혹시 읽어보신 게 있다면 꼽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을 것 같지만 뭔가 배울 게 있을 것 같긴 할 것 같아서요)
또 뭐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이 일종의 결의론이나 실용적 지침인가 하면, 저는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용적 지침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이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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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아닌 실질적인 의미의 자연주의나 실험철학적 경향에 아주 호의적이진 않습니다만, 철학적인 생각이 언제나 경험과 살아감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확고해지는 것 같습니다. 윤리학을 공부하다보니 더 그런 것도 같습니다. 뭔가 글이 추상적이게 될수록, 예시가 없어질수록, 독백적일수록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경험하는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 같다는 의심을 스스로 하게 되더라구요. 언제나 그런 일상적인 것들만 할 수는 없긴 하지만요.

구체성에 매몰되는 것도 추상성으로 증발해버리는 것도 경계해야 하니 참 어려운 노릇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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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정확한 논문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사실 정확한 논문이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논문 속에서 증발하는 사례에 대한, 제 느낌의 표현인 듯합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는 꽤 여러 예시들이 나오지만, 철학 논문 속에서는 어느새 이것들이 증발해버려서, 더욱 추상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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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굳이 따지자면, 삶의 여러 측면에 대한 탐구라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몇몇은 덕목과 성격에 관한 것이었을거고, 몇은 여가, 몇은 운에 대한 것 아니었을까요?

테오프라토스의 <성격에 관하여>처럼, 지금은 파편으로 전해지거나 제목으로만 전해지는 책들을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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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서 언급하셨지만 피에르 아도-피터 브라운-미셸 푸코의 고대 철학에 대한 작업과 같이 일종의 수행에 대한 것으로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수행 개념은 신비주의와 잘 연관된다기보다는 인지주의와 잘 연관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잘 주는 전통은 인지주의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늘날 자기계발에 빠진 현대인을 볼 때도 수행자란 인상을 받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아주 구체적인 대상에 다다르려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삶과 맞닿아 있는 것을 위해 성장하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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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에 대해 살짝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터 브라운은 모르겠으나, 아도/푸코 같은 프랑스 학계는 "신비주의" 혹은 (심리철학에서 말하는 그게 맞겠죠?) "인지주의"나 덕윤리에 대한 것으로 보면 지나치게 이들의 논의가 협소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볼 때 이들의 관심사는 (i) 알튀세르를 비롯 미셸 드 세르토나 상황주의처럼, 당대 사회-계급-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 주체가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 혹은 자기 스스로에게 (혁명 이외의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는지, 에 대한 고민 (더 뽑자면 바타이유/카이유와의 사회학 연구 그룹과 초현실주의, 그리고 사르트르도 포함될 수 있겠네요.)(이는 당시 망탈리테를 연구하던 아날 학파나 이들에게 영향을 준 뒤르켐-모스의 집합의시과도 연관이 있겠죠.)

그리고 (ii) 모스를 비롯해 몸의 테크닉으로서의 의례와 일상을 연구하던 그룹의 관심사가 겹쳐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세르토도 그렇고, 로베르 위베르였던가...그 양반도 있고, 성함은 기억 안나지만 도곤족 연구하시던 양반도 있고...)

그러다보니 영미권적 시각으로 보게 되면, 이들이 보다 긴밀하게 강조하던 사회/인간의 상호작용과 실천으로서의 행위(practice)의 중요성이 조금 지워지는 느낌입니다.
(사실 인지주의/비인지주의라는 영미 심리/도덕철학의 구분이 요상한 전제 위에 성립되었다 여기는 쪽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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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여러번 곱씹을만한 표현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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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은 정말 그런가요 ㅎㅎ(물론 글의 주요 논지랑은 상관없는듯하지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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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그렇더군요. 뭔가 정말 핵심을 알았다, 하는 깨달음이 있으니 보다 수월하게 읽히더군요.
다만 이게 옳은 것인지는 수학 전공자분들에게, 왜 그런 것인지는 스스로 따져봐야 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