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혹은 프랑스어 공부의 필요성

안녕하세요.
작년에 전역하고 복학한 철학과생입니다.
전역하자마자 복학을 한 터라 이번이 두번째 학기인데요.
사담으로 시작해보자면, 솔직히 입대 전 1학년은 아무 기억도 안나고 저번 학기도 적응하느라 쫓아가기 바빴지만 이번 학기부터는 어느정도 여유도 생기고 하여 스스로를 조금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독일어나 프랑스어 혹은 라틴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만 어느정도 할 줄 아는 것은 어원 등에의 접근에 완전히 막혀 있어 개념이나 사상들 간의 연결성 등을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 말을 듣고 조금 심란한 마음이 계속 이어지네요.
수능을 여러번 치르느라 나이도 스물 중반으로 과에서 제일 많기도 하여 라틴어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프독 중 하나만 파더라도 이게 현실성이 있는 생각인가 스스로 의문도 들고 그럽니다.
아직 철학 쪽으로 확고하게 길을 결정한 것도 아니고 가정형편을 고려했을 때도 학부 이후의 공부는 어디 외부 지원이 없는 이상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도 아직 아는 것도 없지만 철학 공부에 흥미를 느끼긴 하여 혹시 모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니체와 아도르노에 관심이 있어 아무래도 둘 중 하나라면 독일어를 공부할 것 같아요.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어디서 주워듣기론 요즘은 대부분의 연구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고, 이는 프랑스나 독일 애들도 예외가 아니라더라구요.
그럼에도 이러한 영어 외 언어의 공부가 정말 필수적이고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어떤 장벽 같은 것이 세워질 수 밖에 없을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떠듬떠듬이라도 텍스트를 읽어나가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릴텐데 제 상황에 비추어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제쳐두고 언어 공부를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조언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이건 사실...크나큰 철학이라는 연구분야에서 "철학사" 정도에나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 같네요. 게다가 이런 식의 접근은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도 많아요. 예컨대 (i) 정말 그 어원이 그 어원인가? 어원 확정은 언어학적으로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ii) 일상적 개념을 과연 특정 철학자가 그대로 썼는가? 이 역시도 쉽지 않은 문제고요. 마지막으로 (iii) 과거 철학자의 개념은 후시대 철하자가 정말 온전히 계승했는가? 이 역시도 어려운 문제죠.

따라서 이런 고민 때문에 프독어를 공부한다면 너무 이상한 길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하면 좋지만, 전혀
효율적이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이고요.

(2)

영어 중심으로 학계가 돌아가고 이는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영어 외의 언어를 한다면 이점이 있죠. (우선 여기서 원전 연구에 필요한 언어를 제외하겠습니다. 원전 연구를 한다하면 당연히 해당 언어를 떠뜸떠뜸이라고 읽어야하니깐요.)

(i) 우선 학계의 분위기가 언어권마다 좀 다릅니다. 불어권 학계가 호의적인 주제와 학풍이 다르고, 영어권 학계가 호의적인 주제와 학풍이 다릅니다. 만약 두 언어를 다 한다면 보다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겠죠. 기회도 늘고요.
(ii) 또한 고전 연구는 의외로 영어권 자료가 빈약한 편입니다. 많이 따라오긴 했지만, 여전히 고대 그리스/로마/중세/르네상스 시대 많은 문헌에 대한 문헌학적 연구, 즉 1차 자료와 공구서는 불어와 독어로 많이 이루어져있습니다.
자주 연구되는 학자라면 아니겠으나 마이너한 학자들의 경우, 불어나 독어를 모르면 접할 수 있는 2차 자료의 양부터 꽤 차이나 날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마이너는 진짜 마이너에요. 철학사 책에 나오는 학자는 포함안됩니다. 보통 강의에서도 안 다루고 두꺼운 철학사책에 한 문단 혹은 한 문장 나오는 그런 사람들 이야깁니다.)

(3)

이상적인 이야기라면, 독일어를 하는 것이 좋겠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상'입니다. 학부 이후의 공부를 할지 말지에 대한 결심도, 그에 따른 재정 상황을 어찌할지에 대한 고민도 아직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듯 하네요. (그리고 이는 매우매우 좋은 신중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한 번이고, 철학 단일 전공은 결단코 인생에서 많은 기회를 주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여러번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게 맞습니다.)

제가 볼 때, 정말로 대학원을 가기로 마음 먹고 나서 공부를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독일어를 하면, 더 많은 연구 자료와 원전의 세밀함을 알 수 있을테지만.....철학 연구라는 것이 언제나 원전의 세밀함을 "반드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니깐요.
분명 (솔직하게 말하진 않지만 사석에서 만나보면) 더듬더듬 원전 읽는 교수들도 꽤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아도르노와 니체 정도라면, 영어로도 어느정도까지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전공자는 아니기에 조금 조심스럽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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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전공하실 게 아니면 굳이 제2외국어까지 공부해서 원전을 읽어야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어 번역본을 보시다가 막히면 영어 번역본을 찾아보는 정도로 웬만한 전공서들은 커버될 겁니다.

얼마 전에 독일어나 프랑스어 혹은 라틴어를 전혀 모르고 영어만 어느정도 할 줄 아는 것은 어원 등에의 접근에 완전히 막혀 있어 개념이나 사상들 간의 연결성 등을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건 모르는 개념 나올 때마다 찾아보면 되는 것이구요, Mandala님 말씀처럼 철학사적인 맥락에서 중요할 수는 있지만 그게 학부생 수준에서 요구되는 정도는 아닐 겁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철학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질문하고 비판해보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하고 나누는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걸 위해서 제2외국어를 꼭 해야 할 필요는 없고요.

전공자들이야 기본적으로 해외 출간 논문들, 번역되지 않은 원전들, 2차 가공자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저작에 접근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제2외국어가 필요하겠습니다만 지금 단계에서는 뭐 그렇게까지 고민하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어 배우는 게 재밌으시면 하시구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확신이 생겼을 때 시작하셔도 무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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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이 되는 석사 혹은 박사 쪽으로 보셔야할 것 같습니다. 석사는 미국에 Georgia State University, University of Wisconsin - Milwaukee, Tufts, 그리고 캐나다의 Simon Fraser University, University of Toronto가 펀딩 + 생활비를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박사는 대부분이 펀딩 + 생활비를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원은 잘 모르겠네요.

언어 관련해서는, 외국어는 박사 입학하고 나서 배워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Writing Sample에 녹여낼 수 있는 영어 2차자료는 차고 넘치니깐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언어는 다른 공부를 할 시간을 제쳐두고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언어를 쓰는 뇌와 철학을 쓰는 뇌와 다르다고 느끼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철학 뇌를 다 썼을 때 언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철학 공부가 방해받는다고 느껴지진 않네요 (헬스할 때 무산소로 다 힘을 빼고 유산소를 하는 느낌이랄까요).

현실적인 이야기들 해주셨으니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한 말씀 드리규 싶어요

언어 공부를 하느냐 마느냐 이건 뭐 사실 본인이 얼마나 원하느냐의 문제라규 생각해요

교수가 되고 학자로서 업을 갖고 이런 거 보다도
그냥 읽어보고 싶으면 해보는 거죠

필요성은 필요를 느끼는 사람에게 생기는 거 아니겄습니까

남들이 하면, 특히 뛰어난 사람이 하면 하고
남들이 안 하면 특히 교순데도 안 한 사람이 꽤 된다면 나도 안 하고

이건 글쎄요 언어 공뷰에 대한 접근?이 제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기준이 그냥 내가 해보고 싶으면 하고
고정도까지눈 필요없을 것 같은디 하믄 안 하고
이게 기준이 돼야 하는 거 같아요

술을 너무 해서 지금 글을 쓰면 안 되는데 잠이 안 와서 그만 실수로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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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회철학 전공으로, 메인으로 니체를 서브로 프랑크푸르트를 보고 있습니다. 제 입장도 위 선생님들의 댓글들과 같습니다.
대학원 진학이 결정되고 나서, 제2외국어를 공부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진학 이후에 전공이 바뀌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후에도 니체와 아도르노를 공부하게 되신다면 독일어 공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석사 수준에서 독일어 능력이 그렇게 요구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 인사가 많이 늦어졌네요.
여러 분들이 다른 측면에서 답변해주셔서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아직 고민도 많고 철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맥이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장의 고민은 사그라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학부 전공선택 수업 교재가 독일어 원서인 경우가 많아서 프랑스어는 몰라도 독일어 공부는 필수과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지만 뭐... 저는 지금 다시 와서 오랫동안 손놓고 있던 독일어 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