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12

주요 내용

니체는 ‘다른 관객’의 이름을 거론하기 전에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에 대해 다시 언급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에우리피데스가 비극을 “순수하면서도 비-디오니소스적 예술(undionysischer Kunst)”로 만들어버렸기에, 그 전통에 젖어있는 우리는 두 힘을 잘 담아낸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을 “모순”되고 “헤아릴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한다(GT, KSA 1: 81-82).

니체는 에우리피데스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강제로 근절시켜야 하는 것”으로 여겼으나, 끝내 “자신의 적을 찬양하면서 자살했다”라고 언급한다(GT, KSA 1: 82). 이를 예증하는 것이 <바쿠스의 시녀들>이다. 그러고선, 니체는 사실 에우리피데스가 “디오니소스도 아니고 아폴론도 아닌” “새로 태어난 마신인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비추는 “하나의 가면”에 불과했다면서 비판 대상을 옮긴다(GT, KSA 1: 82-83).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 사이의 대립을 무화시킨 진짜 범인으로 소크라테스를 지목한 후, 극이 어떤 형태로 변화했는지 언급한다. 그전에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결여한 극이 ‘극화된 서사시(Dramatisirte Epos)’라고 말한다. 디오니소스적인 것 없이 오직 아폴론적인 것이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서사시는 “가공할 사물조차도 가상에 대한 즐거움과 가상을 통한 구원으로 마법을 걸어서 우리 눈앞에서 변용시킨다. … (또한 여기서) 작가는 자신이 떠올리는 형상들과 완전히 융합될 수 없고, … 먼 눈길로 자신 앞에 있는 형상을 바라본다(GT, KSA 1: 83-84).” 한마디로 서사시-아폴론은 관조를 특징으로 가진다.

반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시인과 배우 양자 모두 묘사되는 것과 융합되어 그것을 가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그것을 감정상으로 느낀다. 이제 아폴론적인 것이 가지는 “서사적 망아(epischen Verlorensein)”와 “무감각한 냉담함(affectlosen Kühle)”은 찾아볼 수 없고, 그것의 유사품인 “냉정한 역설적 사상”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GT, KSA 1: 84).

한편,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는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배제되기에, 개별화의 원리로 말미암은 ‘디오니소스적 황홀경’ 대신 그것의 유사품인 ‘불같은 격정’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격정은 단지 ‘사실주의적’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그대로 묘사한 것에 불과하지, 그리스 예술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던 그리스적 에토스가 전혀 아니다.

니체는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며 에우리피데스 작품을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에 따른 것이라고 요약한다. 그것이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인 이유는, 에우리피데스가 자신의 대담한 이성성(verwegenen Verständigkeit)를 발휘해 이전 비극 작품들을 이해 불가능한 저급한 것으로 여기고, 예술을 합리성에 의존해 구성해냈기 때문이다. 이 구성에 따라 비극의 서사적인 긴장 효과는 불필요한 것이라 여겨져 사라지고, 그 자리는 변론술, 수사, 서사(프롤로그)가 차지한다. 마지막으로, 신화의 실재성을 담보하는 기계장치의 신이 도래한다. 이렇게 “에우리피데스는 무엇보다 자신의 의식적 인식(bewussten Erkenntnisse)의 공명인 극작가 에우리피데스”로서 ‘술(디오니소스적인 것) 취한’ 작가들을 단죄한다(GT, KSA 1: 86). 그리고 이제 이 모든 것의 결과로 이제 아름다움은 이성에 의해 파악될 때에야 확보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짚고 넘어갈 점

  1. 에우리피데스는 자신이 ‘하나의 가면’에 불과했음을 알았으나, 그 깨달음은 너무 늦었고 끝내 자살했다. 이는 GT §11에서 언급된 ‘비극의 자살’을 상기시킨다.

  2. 소크라테스의 명제로 제시된 ‘아는 자만이 유덕하다’는 에우데모스 윤리학 1216b4-10에서 두드러지게 제시된다.

  3. 니체는 12절 전반을 통해서, 특히 말미를 통해 디오니소스의 죽음에 대해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디오니소스의 몰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디오니소스적인 것(이하 D)과 아폴론적인 것(이하 A) 사이의 아곤(투쟁)이 초기 니체 형이상학의 핵심이다. 그리고 아곤의 특징은 ①경연 참가자들의 동등한 능력과 ②그것의 균형 잡힌 구조이다. 그렇다면 에우리피데스가 D를 축소한다는 것은 그것에 기반하며 깊은 상관관계를 지니는 A의 힘 또한 축소하는 것과 같다. 이에 더해, 이제 A 대신 소크라테스가 D의 상대로 제시되는데, 여기서 사실 그리스 비극은 끝이 난다. 비극은 A와 D의 아곤으로 이루어지는데, A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D를 상대를 정당한 자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크라테스적 합리성의 도입은 곧 그리스 비극의 끝이 아니라 A와 D의 아곤이라는 세계 전체를 움직이는 구조 자체를 병리적으로 만든다고 이해될 수 있다. 이점이 니체가 온 저작을 통해 소크라테스를 비판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아도르노가 바로 이 니체의 병리적 합리성 비판을 계승한다.

출처: KSA1: 8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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