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게의 간접적 뜻에 대한 질문

밀러의 <언어철학>에서는 표현의 간접적 뜻(즉, 이중 간접 맥락에서의 지시체)을 관습적 뜻(즉, 일중 간접 맥락에서의 지시체)과 동일시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만약 동일시가 가능하다면 다음의 가정 하에

가정. "chiropodist"와 "foot-doctor"의 관습적 뜻은 동일하다.

다음의 두 명제

(1) John believes that Frank believes that all chiropodists are chiropodists.

그리고

(2) John believes that Frank believes that all chiropodists are foot-doctors.

의 진릿값은 동일해야 합니다. 하지만 Miller는 (1)은 참이면서 (2)는 거짓인 경우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제 생각에 저자가 생각했던 사례는 John이 Frank가 "chiropodist"와 "foot-doctors"가 동의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믿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만약 Frank의 무지에 대한 John의 믿음이 (2)를 거짓으로 만든다면, Frank의 무지는 다음의 두 문장

(3) Frank believes that all chiropodists are chiropodists.
(4) Frank believes that all chiropodists are foot-doctors.

또한 서로 다른 진릿값을 가지게 만듭니다((3)은 참, (4)는 거짓). 따라서 "chiropodist"와 "foot-doctor"의 뜻은 애초에 동일하지 않습니다(두 표현의 뜻이 같다면 (3)과 (4)는 언제나 진릿값이 같으므로). 이것은 처음의 가정과 모순됩니다.

제가 밀러의 주장을 오해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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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하신 논변이 (저자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레게의 뜻 이론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인 것은 맞습니다.

이 논변을 볼 때마다 제가 가지는 불만은 다음입니다. 애초에 프레게가 뜻을 mode of presentation으로서 도입한 것은 인식적 맥락을 고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M. Twain 을 알지만 S. Clemens를 모르는 것이 가능하므로 - 즉 "M. Twain을 안다" 와 "S. Clemens"를 안다" 라는 것이 인식적으로 독립가능한 사태이므로 - M. Twain 과 S. Clemens는 동일한 지시체의 두 "뜻"이라는 거죠. (Hesperus/Phosphoros 등 다른 고유명의 예시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과연 "chiropodist라는 개념을 안다"와 "foot-doctor라는 개념을 안다"라는 것이 위와 같이 독립될 수 있는 사태인지가 의문스럽습니다. 직관적이게 예시를 바꾸면 "총각 의 개념을 안다"와 "결혼하지 않은 남자 의 개념을 안다"가 과연 독립적인 인식적 사태인지가 문제가 됩니다. 제 직관에 따르면, "총각은 총각이다"라는 진술을 승인하면서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다"라는 진술을 거부하는 사람은 "총각" 또는 "결혼하지 않은 남자"라는 개념을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사람은 해당 개념의 기초적 진리조건을 모르고 있는, 따라서 해당 개념을 "사용"하지 못하는 언어사용자인 것이죠. 이러한 비정상적 언어사용자의 예시가 과연 프레게의 동의성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의문입니다.

밀러가 (3),(4)의 예시 대신 (1),(2)의 이중간접 맥락을 예시로 사용하는 것은 추정컨대 이러한 반론을 애초에 차단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네요. (3)과 (4)는 Frank가 비정상적 언어사용자라는 함축이 되니, 이중간접 맥락을 통해 이것을 "Frank가 비정상적 언어사용을 하고 있다는 John의 믿음" 이라는 맥락으로 한번 더 비튼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역시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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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b님이 보시기에도 어딘가 이상한 논변이라니 마음이 놓이네요. 저자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이 논변을 소개만 하고 넘어가서 제가 프레게의 언어철학을 잘못 이해한 줄 알았습니다. 자세하고 명료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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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까 이게 현재까지 논의가 되는, 연구사가 있는 주제였네요!

제가 밀러 교과서를 깊이 공부해보지는 못했지만, 다음과 같은 재구성을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를 받아들일 경우,

두 문장의 진리값은 같아야 합니다. 왜냐면 '관습적 뜻 = 간접적 지시체' 라는 것은 모두가 합의하는 프레게 해석이기 때문입니다.

쟁점은 한 발 더 나아가

(ㄱ): 관습적 뜻 = 간접적 지시체 = 간접적 뜻

를 받아들이냐 마냐일텐데요. (ㄱ) 을 받아들인다면 (3)과 (4)는 지시체(=진리값)뿐 아니라 뜻도 같겠지만, (ㄱ)을 거부한다면 (3)과 (4)는 지시체는 같을 지언정 뜻은 다르게 될 여지도 생길 것입니다.

밀러가 다음과 같은 이중 간접 맥락 예시를 동원하는 것은 곧 (ㄱ)이 뜻 뿐 아니라 진리값에서도 차이를 가져올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1)과 (2)의 진리값을 결정하기 위해선 그 종속절의 지시체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1)과 (2)의 종속절에 각각 대응하는 것이 바로 (3)과 (4)죠. '관습적 뜻 = 간접적 지시체'이니, 이중 간접 맥락 하에서 (3)과 (4)에 대응하는 종속절의 지시체가 같다면 (3)과 (4)의 (일중 간접 맥락 하에서의) 뜻 또한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ㄱ)을 받아들이냐 마냐에 따라서 그 답은 달라집니다: (ㄱ)을 받아들인다면 (3)과 (4)의 뜻이 같게 되고, 곧 그에 대응하는 종속절의 지시체가 같아지니만큼 (1)과 (2)의 진리값은 반드시 일치하게 됩니다. 반면 (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3)과 (4)의 뜻이 다를 여지가 생기니만큼 그러한 귀결을 피할 수도 있겠죠. 따라서 (1)과 (2)의 진리값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ㄱ)을 거부해야만 한다는게 밀러의 결론이 될 법 합니다.

그리고 밀러에 대한 이런 해석이 맞다면, 그는 아마 다음 추론에 대해서 반대를 표명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Frank의 무지는 일중 간접 맥락으로 한정되는 (3)과 (4)에서는 적어도 '진리값 차원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 것입니다. 뜻 차원에서는 이미 (3)과 (4)에서 문제가 생기겠지만요. Frank의 무지가 진리값 차원에서 보다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은 이중 간접 맥락인 (1)과 (2)가 될 것입니다.


음 ... 제 개인적인 관점을 나누자면, Frank의 무지가 (3)과 (4)의 진리치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1)이나 (2)에서만 나타난다는 것은 좀 어색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이는 왜 밀러가 (3)이나 (4)가 아니라 (1)과 (2)를 동원했는지를 설명주는 이유가 될 수 있지는 않나 싶네요 - 왜냐면 문제가 보다 심각히 불거지는 것은 (1)과 (2)니까요.

더불어서, 만약 전체 맥락상 본 논의가 프레게 언어철학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한다면, 밀러는 이런 어색함은 '프레게에 대한 비판'이라는 큰 그림에서 봤을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왜냐면 (ㄱ)을 받아들이건, 거부하건 다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니까요.


@Herb 님께서 짚어주신 것처럼, 현 사례는 언어 사용자가 자기가 쓰는 말의 뜻(혹은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을 하는 것의 특수한 사례입니다.

관건은 이처럼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프레게 철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냐는 것일텐데요. 여기서 참고할만한 프레게의 입장은 뜻의 객관성, 즉 언어 사용자가 그 뜻을 틀리게 사용할 수도 있다는 주장일 것입니다. 이런 '뜻의 객관성' 입장이 프레게 철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냐고 보는 것에 따라서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쓰는 사례'가 프레게 철학에 있어 중요한 주제인지, 아니면 그저 사소한 예외사항인지 판단 또한 갈리게 될 것 같습니다.

(나아가 이는 크립키의 "A Puzzle About Belief"를 비롯한 이후 언어철학의 발전사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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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지적이네요. 개인적으로는 (ㄱ)을 받아들이고 (1), (2), (3), (4)의 진릿값이 모두 같다고 하는 편이 밀러의 결론보다 일관적인 듯합니다. 하지만 @wildbunny 님 답변 덕분에 밀러가 이중 간접 맥락을 자신의 논증에 동원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또한 이해가 됩니다.

이것도 매우 흥미로운 지적이네요! 프레게과 뜻의 규범성을 중시하는만큼, "관습적 뜻과 간접적 뜻을 동일시하는 언어는 뜻의 규범성(객관성)과 관련한 프레게 자신의 언어철학을 문제 없이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고찰할 가치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논지를 잘 발전시킨다면 밀러의 논증보다 더 강력한 반론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네요.

역시 자세하고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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