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험적 지식의 경험적 습득에 대해서

Notice that any proposition which one can have a priori knowledge of one can also have empirical knowledge of. For example, I could come to know that all bachelors are unmarried men not only by reflecting (in my armchair) on the meanings of the words involved but by looking up the meaning of the word ‘bachelor’ in a dictionary (i.e. by getting out of my armchair and making an empirical inquiry). The converse of this is not true, however, in that it doesn’t follow that any proposition which one can have empirical knowledge of one can also have a priori knowledge of. The only way to find out which hemisphere the tropic of Cancer is in is by getting out of one’s armchair and making an empirical investigation – this just isn’t the sort of proposition that one can have a priori knowledge of.

Pritchard, Duncan, 2023, What is this thing called knowledge?, Oxford/NY: Routledge, 90p.

해당 설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선험적 지식을 둘러싼 논의들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습니다만 평소 이해하고 있는 바와 좀 어긋나서 당혹감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모든 총각은 미혼남성이다"란 명제를 경험적으로 습득하는 방법은 모든 총각들에 대해서 일일이 미혼인지 확인하는 것이고, 사전을 통해 얻는 경험적 지식은 별개의 명제("낱말 '총각'은 미혼남성을 의미한다")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용/언급 구분을 혼동한 설명 같은데, 문제는 이 책이 여러차례 개정된 교과서이고 저자가 꽤 인지도가 있는 학자라 그런 오류가 있을 법하지 않다는 거에요ㅜ 제가 놓치고 있는게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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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 '총각'의 정의는 선험적 지식인가요? 아니면 경험적 지식인가요? 아니면 둘 다 아닌가요?

어떤 사람이 사전에서 '총각'이라는 낱말의 정의를 알게 되는 '경험'을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 정의를 경험적으로 검증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그 정의 자체는 경험적 지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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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도 @chabulhwi 님의 설명이 적절한 듯합니다.

던칸은 "선험적 지식"/"경험적 지식"이라는 일종의 (지식에 대한) 유형적 구분을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A라는 명제가 (i) 안락의자에 앉아, 정의를 검토하는 방식의 '선험적/경험 독립적' 방식으로 얻어질 수도 (ii) 아니면 사전을 찾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는 등의 증언을 통한 '경험적' 방식으로 얻어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는 듯합니다. (다만 이때 "경험적"이라는 단어는 통상 쓰이는 감각 지각보다는 좀 넓은 의미로 쓰인 것 같기는 합니다. 아마 이 부분이 혼동을 초래한 듯하네요.)

또한 던칸은 이 부분에서 딱히 명제의 '정당화'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이 부분은 엄밀히 말하자면, "모든 총각은 미혼 남성이다."라는 명제를 '정당화'하는 방식이지, 이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물론 고전적으로 지식은 정당화를 통해서 얻어진다고 말해지긴 합니다. 게티어 문제와 증언 등과 관련된 인식론적 문제가 촉발된 후로, 이런 정식화는 오늘날 와서 좀 구시대적인 문제틀로 여겨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던칸은 학계의 최전방 이론에 적절한, 그런 새로운 틀로서 설명을 하고 있는 듯 하네요.)
(굳이 이런 증언이라는 형태의 지식을 정당화와 연관시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a) 이 명제는 "권위가 있는" 사전에 기록되어있으므로, 믿을 만하다. 고로 정당화되었다.)

그는 그저 명제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두 가지 방식 (인식론적 방식)을 여기서 말하고 있을 따름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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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식을 얻게 된다면 "모든 총각은 미혼남성이다"라는 명제는 "모든 미혼남성은 미혼남성이다"와 동일한 명제가 될 것이고, 이 명제는 소위 분석명제이므로 실제 모든 남성들이 총각인지를 경험적으로 물어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자의 설명이 맞다면) 사전을 찾아보는 경험적 행위만으로 (이것이 설사 언급-지식에 그친다 할지라도) "모든 총각은 미혼남성이다"의 참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즉 "총각"이라는 단어로 "미혼남성"을 지시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총각"이라는 단어에 대한 지식이 곧 해당 명제를 정당화하게 되는 겁니다. "모든 남자는 사람이다"라는 명제의 참을 검증하기 위해 실제로 모든 남자들이 사람인지를 일일이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거랑 비슷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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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예시를 잘못한 것 같습니다. 위의 예를 아래와 같이 바꿀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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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다른 선생님들이 주신 말씀을 전부 아우르는 댓글을 달기 어려워, 송구하지만 제 코멘트만 짧게 합니다.

제시문의 요지는 ‘선험적 명제란 선험적으로 정당화되는 명제가 아닌 선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명제이다’라는 점입니다. 들어진 예시는 이를 잘 예증하는, 올바른 예시입니다.

예시가 올바른 까닭은, 우리는 증언에 의한 정당화를 얻을 수 있기(can be justified) 때문입니다. 어떤 이론 T에 정통한 화자가 T-문장 t를 발화한 것을 들음에 따라 t에 정당화될 수 있듯, 규약 C에 정통한 화자가 C에서 참인 문장 p를 발화한 것을 들음에 따라 p에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분석적 참이란 규약에 의한 참(truth by convention)이라는 논제를 받아들인 뒤, 분석 명제가 선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음을 받아들여 봅시다. 그렇다면 제시문은 올바른 사례입니다.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성이다’를 참이게 하는 규약 C에 정통한 화자가 이를 발화할 경우, 우리는 이를 들음을 통해 그 참에 정당화됩니다.

한편, 우리는 증언에 의한 정당화를 후험적 정당화로 여기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따라서, 이 사례는 선험적으로 정당화되는 명제에 대한 후험적 정당화의 사례이며, 저자가 주장하려는 논제에 대한 올바른 예시입니다.

혹자는 이 경우가 선험적 정당화임을, 다음으로부터 논증할지도 모릅니다: 그 증언에 의한 정당화를 위해서는 ‘이 사람은 C에 정통하다’, ‘C에 정통한 사람이 𝜑를 C 문장으로 발화한다면, 𝜑를 C의 규약으로 믿을 수 있다’를 선험적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나 선험적 요소가 정당화에 개입함은 어떠한 정당화가 선험적 정당화이기 위한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기실 거의 모든 후험적 정당화는 선험적 믿음을 동반하거든요. 가령, ‘내 앞에 사람이 있다’라는 후험적 믿음은 적어도 ‘이러저러한 감각 인상은 사람이 있음의 증거이다’라는 선험적 믿음에 그 정당성을 의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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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점에 대해 ‘그때 증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다른 층위의 명제이다’라고 할 만한 입장을 내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나는 덧셈을 무릎 위에서 배웠다’였던가요? 이와 유사한 《철학적 탐구》에서의 문구가 있는데, 그 전후에서 (‘분석 명제’에 상당함 직한) ‘축 명제’의 경험적 습득에 관해 논합니다. 이 맥락에서, 비트겐슈타인에게 두 명제의 차이는 정당화 방식이 아닌 논리적 공간에서의 역할의 차이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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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예에서의 증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사전에 나온 낱말 '총각'의 뜻풀이인가요?

혹시 이 '후험적 정당화'와 원문의 'empirical inquiry[{경험적/실증적} 조사]'가 서로 다른 점이 있나요? 어쨌든 증언에 의한 정당화도 보통 후험적이라고 여긴다는 점을 제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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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읽음을 통해 얻는 지식도 일종의 증언에 의한 정당화로 여길 수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글로 써서 전하는 정보들이 일종의 증언으로 인식적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처럼요! “empirical inquiry”라는 표현은 다소간 맹한(?) 감은 있는데, 증언을 찾아가는 탐구도 일종의 경험적 탐구라고 함 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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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그런 경험적 탐구를 과학적 탐구와 구별할 필요가 있겠네요. 설명 감사합니다.

위 주장을 취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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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런 의미에서 'empirical inquiry’를 이 맥락에서 ‘실증적 조사’라고 이해하는 건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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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답변 달아주신 선생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제가 혼동한 부분에 대해 좀 더 분명히 할 수 있었어요.

종합해보면, 아마도 프리차드가 의도했던 설명은 "모든 총각은 미혼남성이다"나 "1+3=4"와 같은 선험지식의 경우일지라도 '총각', '+'와 같은 표기를 익히는데 있어 경험적 요소가 들어있음을 언급하는 것이었던 듯합니다.
옥스퍼드 철학사전이 선험/후험 항목에서 한 문장으로 표현한 것처럼요.

It may, however, be allowed that some experience is required to acquire the concepts involved in an a priori proposition.

즉, 저는 프리차드의 설명을, 선험적 지식에는 동시에 경험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는게 아닌 reflecting과는 별개로 경험만으로도 얻어질 수 있다는 설명으로 오해한 것입니다..띠로리 (아마도 필연적 후험 따위의 개념을 어쭙잖게 알고 있던게 혼동을 유발한 듯합니다ㅜ)

감사합니다! 공부를 더 성실히 해야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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