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료한 영어책들

요즘 이런저런 영어책들 사다보는 것에 맛들렸는데, 보다보니 모든 책들이 아주 명료하고 간결하게 써지진 않았더라고요. 문학계에서는 좋아할 수도 있는 문체겠지만, 철학에서는 좋아하지 않을 문체 같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저처럼 철학용 영어 실력 기르기에 관심 많으실 분들을 위해 간결한 문체들의 책을 조금 정리해봤습니다.

Hemingway - The Old Man and the Sea
Hemingway - The Sun Also Rises (아직 읽는 중이지만, 문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넣었습니다.)

  • 간결한 문체 하면 헤밍웨이 아니겠어요? 여기 리스트 중에서 거의 가장 간결한 문체를 구사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단락에서 다른 단락으로 넘어가는 게 철학 논문과도 비슷하다고 느끼기도 했네요. 앞으로 몇 번인지 까먹을 정도로 반복해서 읽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대화가 조금 많네요. 개인적으로 대화를 보는 게 철학에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긴 합니다.

Mccarthy - The Road

  • 묘사할 때는 덜 간결할 때가 있고, 일부러 문장을 다 안 쓰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들을 제외하면 굉장히 좋은 것 같습니다. 특히 단락 마무리 짓는 법을 많이 배운 책 같아요.

Orwell - Animal Farm
Orwell - 1984

  • 이 책들은 유명하죠? 이 책도 묘사가 가끔 등장하는 게 조금 거슬리지만, 그래도 묘사하지 않을 때에는 굉장히 간결하게 글을 쓰네요. 두 책 다 n회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너무 새로운 것 같습니다. 저는 영어 리딩/라이팅 법칙들을 많이 찾아보고 생각해내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답지로 이 책들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저도 영문학 전공도 아니고, 원래 공학도였던만큼 책이랑 담을 쌓던 사람이기 때문에, 뭐든지 걸러서 듣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조지 오웰은 제게 영향을 가장 많이 주셨던 교수님이 철학용 영어용 책으로 추천해주신 거고, 저도 n회 정독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조지 오웰 정도는 믿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 쓰고 보니 너무 적네요. 밑천이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혹시나 새로운 책 찾게 되면 또 추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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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카시는 잘 모르겠네요. 매카시의 문체는 지나치게 "묘사적"인 느낌이 있어서요. 명사 위주에 짧고 간결하지만 오히려 묘사와 분위기를 위해 그리 쓰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2)

개인적으로 소설가 중에서 영어를 제일 명료-깔끔하게 쓰는 건 두 사람, 치누아 아체베와 존 맥스웰 쿳시라 생각합니다.
두 사람 다 아프리카 출신이고 모어가 영어가 아니기도 하죠. 덕분에 그들의 문체에는 묘사를 위한 기교가 보이지 않더라고요. 생략이든 잔뜩 더한 비유든.
건조한 사실과 진술이 어렵지 않은 어휘로 직조된 이 문체들을 전 좋아합니다.

(영어가 모어인 작가들은 단어 선택에 있어서 [의식적인 건 아닌것같지만] 묘하게 기교적일 때가 있더라고요.)

특히 쿳시는 에세이스트로서도 최고라고 개인적으로 여깁니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나 <포>,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플라톤의 저작만큼이나 문학과 사유 모두를 잡은 책이라 개인적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굳이 또 한 명을 뽑자면 제임스 볼드윈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그의 에세이는 마음을 울린다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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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맥카시에 대해서 저와 완전히 다른 입장을 가지신 것 같아요. 전 The Road에서 맥카시의 묘사는 셋업용이고, 간결한 문체로 설명하면서 전개를 해나간다고 느꼈어요. 정말 분위기 세팅용이라고만 느꼈고, 정수는 간결한 문체를 쓸 때 나온다고 느꼈거든요.

(2) 사실 Waiting for Barbarians를 리스트에 몇 번 넣었다뺐다 했습니다! 계속 넣고 빼다가 다시 그 책 30쪽 정도 읽고 돌아왔는데, 안 넣게 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 문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습니다. 물론 문법이 제대로 잡힌 원어민 입장에서는 이 책을 읽어도 문법 실력이 크게 영향을 안 받겠지만, 영어 공부를 하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문법 실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문법에 약해서 이 부분에 더 예민했을 수 있겠습니다 (맥카시의 No Country for Old Men을 뺀 이유도 같습니다). 두번째, 전개가 워낙 독특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쿳시는 간결한 문체를 선호하긴 하지만, 단락 안에서의 흐름이라던가,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는 흐름이라던가, 굉장히 독특합니다. 항상 예상을 벗어나고, "어?" 라고 생각이 들면 다시 돌아가서 제대로 읽어야 전개가 이해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제로 쿳시가 동시대의 셰익스피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이유 같기도 해요). 물론 이 이유들은 영어가 익숙하거나 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철학을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면 그렇게 적합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네요.

(3) 아체베와 볼드윈은 아직 읽어본 적이 없는데, 조만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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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부분은 제가 몰랐네요. 제가 영문법을 잘 알지 못하는지라...

그리고 궁금한 것이, 영미권에서는 점점 더 문법에 신경을 안 쓰지 않던가요? 인도 출신이나 카리브, 아프리카 출신들의 문학이든 비문학 글이든 이제 단어나 숙어뿐 아니라, 문법의 차원에서도 비문이 꽤 보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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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철학 학계말고는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네요. 다만, 여러 책들에서 고의로 문법을 틀리는 경우는 많이 봤습니다. 주로 표현을 다르게 하기 위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책들을 읽지 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제가 말하고 싶었던 점은,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철학 영어를 익히기 위해서 읽을 책으로 문법이 틀리는 책은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 철학 에세이를 쓸 때는 서론과 결론을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문장을 가장 명료하게, 가장 문법적으로 완벽하게 구사를 해야하니깐요. 이런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는 철학 학계에서 요구하는 문체를 잘 구사하는 책들이 영어에 도움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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