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가치

개인적으로 적었던 글인데 여기다 올려도 되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만,
철학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면 한 번 정도 겪을 수도 있는 일이다 싶어서 적어봅니다.
저는 학부시절에 철학을 했고 졸업해서 직장 다니다가 MBA를 하고나서 재무분야에서 일을 했습니다.
지금은 50대 중반에 2선으로 물러나서 회사에서 인문학 사내교수로 이것저것 사내 직원 교육에 관한
다양한 잡일을 합니다.

이번 학기에 회사 온라인 교육 과정에 간략한 미술사 개론을 개설했다. 그랬더니 스탭 중 한사람이 내가 학부 시절에 미술과 관련된 전공을 하거나 뭔가 그 분야에 잘 안다고 착각을 하고 다른 과정에서 미술 강의를 하되 뭔가 비지니스적 통찰을 가진 강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강사 추천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이런 세상에 그런 오해를.....

젊은 시절 미대 출신 언니들을 만났던 적은 있지만, 미술은 나도 그냥 마누라 따라 다니면서 구경하고 그림 왜 사냐고 막지 않은 것이 전부다. 들어다 드리고 액자집에 맡기고 찾아오는 육체적인 노동만 제공했다.^^ 미술사 공부는 나도 직업적인 필요에 의해서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등 책과 유튜브로 익혔다.

그러다가 대화 중에 연수원 지하 복도에 걸려있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그림(카피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왜 악보와 악기가 섞여있는 칸딘스키의 콤포지션과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Composition with Red, Blue and Yellow 등이 왜 명작이고 그리 비싼 그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현대 미술과 현대 철학의 주관성에 대해서 아주 쉽게 칸트 미학부터 설명해줬다. 그리고는 훗설의 현상학은 뉴튼 물리학의 시공관을 대표하던 신고전주의 이후 인상주의부터 시작된 주관성과 외부 사물이 아닌 인간 내면의 생각을 언어가 아닌 이미지로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을 이어서 해줬다. 쉽게 말하면 객관적인 세상을 그대로 그리다가 현상에 대한 복사기 노릇을 그만두고 주관적으로 인식되는 대상의 본질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과학자는 무지개를 빛의 분광이라고 보고, 예술가 오색~칠색 무지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어린시절 봤던 무지개를 떠올리면서 유년의 추억을 생각한다(훗설의 생활세계 현상학측면에서 본질직관). 그러면서 가다머의 해석학(저자와 독자가 각자 자신의 지평을 가지고 있지만 이해는 양자간에 만나는 새로운 장에서 해석이 이루어진다)이야기를 꺼내다 말았다. 이유는 ㅎㅎㅎ

그리고는 추상화와 구상화(이 또한 단어 의미부터...)의 구분과 추상적인 그림도 언어가 개별적인 지시어에서 개념적인 보편자가 될 수록 인지는 가능한 수준에서 보편적 특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개체의 특성은 깍아낸다고 설명을 했다. 그래서 브로드웨이의 선과 네모난 박스는 맨하튼의 도로와 빌딩숲의 번쩍임을 추상화하면서 감상자에게 해석의 공간을 남겨둔 것이라고 해줬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림 값은 백락일고의 고사처럼 알아 주는 사람이 있어야 가격이 형성된다고 했다.

설명이 끝나고 결국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에 대한 추상과 현대 미술 작품들도 비싼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정도만 이해했다고 한다. ㅠㅠ 5월달에 디자인 워크샵 강의를 준비하면서 철학과 미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을 사람들에게 디자인이 기예가 아니라 시대정신에 대한 통찰이라는 주제로 어떻게 해야 쉽지만 뭔가 수준 높은 예술과 미학 및 비니지스에 대한 통찰을 얻어간다는 착각을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설명해도 철학을 쉬운 말로 짧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ㅠㅠ

그 강사료 나 주면 1시간 30분동안 내가 해 줄 수는 있겠지만 맡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진짜 내가 해도 월급 받는지라 추가 강사료는 안준다. 내부 인력의 말은 우습게 아는 것이 회사인지라 ㅎㅎ.전문가를 찾는데 교수도 박사도 아니고 더욱이 미대와는 거리가 먼 전공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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