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기로, 무언가를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방법은 두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하나는, 어떤 담론을 비판하는 경우입니다. 가령 특정한 과학 사조에 관해, 그 사조가 취하는 개념론(ideology)이 문제적임을 지적하거나, 그 사조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론에 개입한다고 지적하는 식으로요. 이 경우 철학은 대상 담론에 대한 상위 탐구의 역할을 합니다.
다른 경우는, 철학적 논증을 비판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상위 담론으로서의 비판과 동등한 차원의 담론으로서의 비판이 모두 가능할 겁니다. 가령, 우리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을 ‘형이상학적으로’ 비판할 수도 있고, ‘메타형이상학적’ 입장을 통해 이를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시하신 논증이 ‘철학적으로’ 비판되기 위해 두가지를 확인해볼 수 있겠습니다. (1) 이 논증은 철학적 논증인가? 아니라면, (2) 이 논증은 상위 담론을 통해 비판될 수 있는 그러한 논증인가?
일단 전자인지의 여부는 확실하지가 않네요. 명시적으로 철학적 논증을 의도하지 않은 한 어떤 논증이 ‘철학적’ 논증인지는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후자이려면 이 논증이 참여하는 어떤 담론장이 명시될 수 있고, 또한 그 담론장을 구성하는 개념 체계가 명시될 수 있을 때 ‘철학적’ 비판을 하기가 가장 쉽겠습니다.
일단, 굳이 철학적 비판을 하지 않더라도 모든 논증은 비판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논증의 일반적인 형식들을 잘 이해하고 있으면 됩니다. 논리학이나 변증술 책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철학적 비판을 해야만 한다면, 그가 취하는 개념이 어떠한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단지 몇 줄 짜리 논증에 불과하다면 그런 세밀한 분석이 잘 이루어지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물론, 이미 있는 철학적 담론의 권위를 빌려 어떤 논증을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논점을 이탈하거나 ‘닭 잡는 데에 소 잡는 칼을 쓰는’ (또는 그 반대인) 경우가 주로 되는 것 같아요.
‘사이비 논증’이라는 것이 정말로 실재하는지 자체가 하나의 철학적 문제이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다만 ‘사이비 논증’이라는 경멸적 분류는 보통 전혀 이해되지 않는 개념을 사용하는 논증들을 의미합니다.
가령, 라깡의 개념 체계가 이해되지 않는 낱말들로 구성되었다고 보는 이들은, ‘오브제 a가…이다’와 같은 모든 표현이 아무런 의미를 못 갖는다고 볼 것입니다. 단지 “오브제 a”는 라깡이 그 용법을 맘대로 정하면 그만인 어떤 낱말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이건 말 그대로 경멸적인 표현이고, “사이비 논증”이라고 불리는 것의 대부분은 (자비롭게 해석될 때) 기껏해야 오류 있는 논증 정도로 분류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헤겔의 “정신”은 사실 전혀 다른 것들을 맥락에 따라 지칭하고 있다고, 따라서 그의 “정신” 이론이 사이비 철학이라고 하는 이는 사실 헤겔이 ‘애매어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