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걸린 학부생+유학

안녕하세요.
독일에서 철학 공부하고 있고 우울증은 만성이 되어버린 학부생입니다. 가끔 심해질 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아예 한 학기정도 공부를 제대로 못하고요. 언제 졸업하련지...도 걱정이지만, 무엇보다 외로운 싸움인지라 힘이드네요. 철학이 나를 치유하리라는 마음으로 해나가고 있습니다. 혹시 조심스럽지만 여기도 어떤 병이든 문제든 싸워나가면서 철학 공부하시는 분들이 계실지요? 어떻게 하면 더 현명히 이런 상황들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조언 여쭙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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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돈을 벌면서 치료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통장에 3만원 정도밖에 없어서 한동안 개처럼 일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울한 게 사라졌네요. 무항산 무항심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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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세뇌에 성공해 채찍과 당근을 합쳐버린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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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승화하신건지 아님 모든 게 채찍이 되신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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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울증이 정확히 진단된 상태인지 궁금합니다.

보통 신체화 증상 (얕은 수면, 강한 스트레스 반응에 의한 이갈이 혹은 불시적인 근육 경련, 아니면 자해 혹은 자살 충동, 혹은 두세끼도 배고프지 않은 무기력, 반대로 중독이나 폭식 등등)이 있을 경우, [급성이든 만성이든 - 이 구분은 병증이 있는 기간에 따른 분류이지 중증도에 따른 분류는 아닙니다] 속히 병원 치료를 받으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가 있으면 충분한 휴식 (혹은 개인이 어찌할 수 있는 방법) 등으로는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게임으로 치면 디버프가 계속 걸려있어서 체력이 깎여나가는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할까요?
약물 처방이 만능은 아니지만 적어도 저런 신체적 증상들을 줄이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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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처방의 경우, 자신에게 잘 맞는 약을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고, 의사마다 선호하는 약물의 종류와 강도가 다릅니다. 따라서 천천히 마음을 먹되, 부작용처럼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의사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피드백에 대해 의사가 심드렁하다? 그러면 병원을 바꾸는게 나을수도 있습니다.

(2)

단순한 무기력이라면 다른 내과적 증상일수도 있습니다. 갑상선 이상이라던가 대사이상 같은 혈당 문제라던가.
이러한 것은 피검사로 쉽게 나오니 증상이 만성일 경우 한번 확인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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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우울증이 경증이다. 저런 신체화 증상은 없지만 , 무기력하다. 이 경우 제가 추천드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a) 스트레스의 원인을 구분한다.
; 살다보면 지금 상태를 일으키는 온갖 원인이 있을겁니다. 중요한건, (i) 그 중 당장 해결할 수 있거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 (ii) 해결할 수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iii) 해결할 수 없는 것. 이 세 가지로 구분하는 것이죠.

(i)은 당장 해결하세요. 귀찮아도 해결하면 속 시원합니다. (ii)은 계획을 세우세요. 얼치기고 오래 걸려도 좋습나다. 해결할 계획이 세워지는 것만으로도 심적 안정감을 줍니다. (iii)은 그냥 잊으세요. 이런 생각과 불안이 들면 뭘 더 하려고 하지말고 흘리시면 됩니다.

흘리는걸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이런겁니다. 갑자기 건강 염려증이 들었습니다. 이걸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 계속 건강 염려증이 생각나죠.
이럴 때 흘리는건, 마음의 주의(attention)을 딴데로 던지는겁니다. 일이라던가 다른 취미라던가 내일 할 일이라던가. 물론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것은 계속 밑바닥에 깔려있겠지만 보다 쉽고 짧게 사라질 겁니다.

(b) 세 끼를 잘 먹는다.
; 우울증의 문제는 자기 통제력에 대한 신뢰감이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하지 않아야된다 생각하는 것을 하곤하죠.
이런 통제감을 회복하는데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고, 그 중 가장 쉽고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세끼 지키기 같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클린하고 건강하게 먹고, 야식이나 간식하지 않기. 술 마시지 않기. 이정도 기초를 한달 정도 지켜보면 꽤 통제감이 회복되실 겁니다.

(c) 이제 다음 단계는 산책입니다.
; 통제감이 어느정도 회복되면 산책을 하세요. 특히 햇빛 있을 때 산책하면 좋습니다. 산책은 우울증 회복에 여러 도움이 된다 논문이 여럿 나온 바 있습니다. 또한 햇빛은 우울증을 방지하는 세로토닌 합성에 큰 역할을 합니다.

(d) 실패해도 그냥 하기.
; 계획을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술 먹고 자괴감에 드는 것보단 일찍 자고 내일은 계획대로 하세요. 그런 마음이 좀 필요합니다.

(e) 계획표 짜기.
; 별거없습니다. 그냥 산책하기 밥 먹기 같은 것부터 오늘 공부량까지 노트에 적어넣고, 저녁 때 집에 들어와서 하면 동그라미 안 했으면 엑스하면 됩니다.
다만 최대한 목표를 단순하고 세분하게 적으세요. 굳이 어려운거 할 필요 없습니다. 이거 하기 개껌인데 같은 걸 적으세요. 어려운 목표면 세분하고요. 논문 한편 읽기 대신 논문 1챕터 2챕터 이렇게요. 이건 그냥 날 칭찬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니깐요.

그러다보면 이제, 가끔 도무지 답도 없고 뭐할 때 과거 노트를 들여다보면서, 아 나 생각보다 날 잘 통제했구나 라는 보람이 느껴질 때가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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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된 상태입니다. 중증도에 만성이라 치료 중이고요. 세세한 팁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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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중이시면 여러모로 해결하기 어려운 스트레스 상황들이 있을 것인데....모쪼록 잘 풀리시길 바랍니다.

저도 한 3년 약 먹었고, 1년은 진짜 아무것도 안하는 폐인 시기도 있었습니다만 다 죽지 않으니 놀랍게도 살아남더라고요. 생에 대한 인간 육신의 욕망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흉이 지금와서 보면 꽤 훈장 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내가 그 개 같은 것도 버티고 이겨냈는데 고작 이런 것에 쓰러질리가..." 같은 어디 만화 캐릭터 같은 대사를 속으로 말하게 되더라고요.

모쪼록 힘든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 순간들을 어떻게든 현명하게 잘 넘기고 모든 것이 지나가길 기도하겠습니다.

P.S. 혹여 정말 견디기 어려운 순간이 오신다면 저한테 쪽지라도 보내세요. 뭘 어떻게 해드릴 순 없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드리는것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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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ㅠㅠ감사합니다. 조언들이 매우 섬세해서 놀랐는데 본인도 그런 일들이 있으셨군요. 완치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잘 이겨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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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생활은 여러모로 힘든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 (우울증인지는 진단을 안 받아봤지만) 엄청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모든 의욕을 잃었었죠. 방은 아예 치우지 않아서 정말 경악할 정도로 지저분했었습니다. 청결 상태가 유지가 안 되니 쥐는 방 안을 수시로 뛰어다녔고, 일어나서 제일 처음 하는 일이 밤새 침대 위에 생긴 쥐똥 치우기가 먼저였네요. 설거지는 몇 달 동안 놔둬서 집 안에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었고, 이런 집이 너무 싫어서 과방에서 자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학 생활이니 도움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이런 상황들을 많이 악화시켰던 것 같네요.

지금은 많이 나아진 상태입니다. 주기적으로 운동도 하려고 하고 (운동을 하는 게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친구들도 집에 자주 초대하면서 청결도 유지하려고 하고 있네요 (쥐는 안 본지 세 달이 넘어갑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저도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때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크게 무서울 거는 없더라고요.

제가 Giesingfrau님에게 해결책을 줄 정도의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계시니깐요. 그래도 두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철학도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나이의 폭이 큰 것 같습니다. 20살에 대학을 들어가 25살에 졸업을 하고 석사 진학을 한 후에 27살에 박사 입학을 하는 루트를 타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졸업을 늦게 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은 너무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또, 저는 외로울 때 한인들을 많이 만나고, (독일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인 타운을 많이 가고 한식을 많이 먹으니 괜찮더라고요. 독일에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한국과의 접점을 늘려보는 것도 추천해요. 자라온 나라의 언어와 문화 등을 가까이 하면 왠지 편안해지더라고요. 이런 말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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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역시도 만성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 조심스럽게 몇자 적어봅니다.

너무 힘들 땐 자책보단 쉼을 택하시고. 조금 마음이 괜찮은 날엔 목표를 세분화해서 적어보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달성해보면 좋은 것 같습니다. (커튼 열기, 청소하기, 일기쓰기 등등) 달성하다보면 아, 나 이런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으면서 내가 쓸모없진 않구나 싶어지더라고요.

물론 정말 마음의 병이 심할 땐 이런 것조차 할 수 없기도 하고.. 어느 날엔 가능해도 또 어느날엔 움직일 수 조차 없을 때도 있지만... 너무 힘들게 버텨왔구나 생각하며 치료에 집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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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언젠가는 저도 그렇게 훈장같이 제 상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어요.

ㅠㅠ우리 같이 힘내봐요...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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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항산 무항심...그렇군요 minijob이라도 구해봐야겠어요

병원을 처음 가보고 중등도 우울증 포함 4개 정도 진단받은 지도 한참 됐네요. 제 생각에 이것보다 사람마다 다른 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실마리를 얻으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가 선택했던, 그리고 지금도 선택하는 방법은 공부입니다. 과거 일로 짜증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의 죽음을 그리게 될 때, 일단 공부할 책을 펴놓고 그걸 워드로 베껴 씁니다. 쓰다 보면 "아니 왜 이렇게 생각하지?" 하는 부분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해서 공부 시작 잡념 끝! 의 루틴이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집중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걸 하고는 합니다. 물론 좋아하는 책을 펴놓고 그걸 워드로... 이긴 합니다만 그마저도 안 되면 게임을 하든가, 글을 씁니다. (저는 글쓰기를 좋아해서, 이전에 묵혀놨던 여러 글감으로 에세이를 쓰다 보면 기분이 전환됩니다.)

게임도 오래 걸리는 거(롤 등) 채팅 가능하거나 볼 수 있는 개인전 게임(스타, PC판 TFT 등) "말고", 뭐 육성 시뮬레이션 같은 거... 딱히 타인과의 경쟁 요소가 없거나, 있더라도 시비 걸리지 않는 걸 하는 쪽입니다.

글은 이전에 논문 쓴 거 (물론 공모전입니다) 형식만 남겨두고 작성하거나, 아! 그것도 못하겠다! 하면 그냥 워드 줄간격 1.2배수로 줄글을 쭉 씁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글감도 나오고, 내가 앞에서 하던 말이랑 뒤에서 하던 말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면서 좀 편해집니다.

낮 시간에 취침 전 약 먹고 잤다가 저녁쯤 일어나서 다시 (약 안 먹고) 자는 방법도 해본 적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좋긴 한데 시간 아까웠습니다.

뭔가 공부 안 될 때 공부를 하는 이상한 방식을 말씀드린 것 같은데... 공부가 아니라도 좋아하시는 것을, 대신 피로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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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워드필사 괜찮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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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또한 우울증이 있었고 동시에 심리학과 학생인 상태입니다. 지금은 항우울제를 먹지 않는 상태로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학부생이라 잘 조언해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효과가 빠른 것은)은 항우울제를 처방 받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고 부작용이 있지만 학업에 문제를 일으킬 만큼 우울함이 덥쳐온다면 약을 먹는게 최고 입니다(저또한 약의 도움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상황이 안된다면 한번 자신의 감정을 글로 적어보세요. 적고 난 다음에 한번 논리적으로 적은 감정에 대해 따져보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일어날만한 상황이었는지 아닌지를 설명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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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읽어보니 치료중이셨군요. 괜찮으시다면 산책을 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운동을 하신다면 더 좋고요. 운동이 세로토닌 수치를 높인다는 것을 본 것 같습니다. 햇빛을 자주 봐주고 저녁에 일찍 주무시는 것도 많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삶에서 루틴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날은 7시에 일어나고 어느 날은 9시에 일어나는 불규칙한 생활보다는 매일 동일한 7시에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루틴을 지키기 위해 당연한 일이라도 하나하나 적어서 해결하는 것이 저한테는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적어두고

  • 7시에 일어나기
  • 양치하기
  • 이불개기

이들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제거해나가면 루틴을 지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또한 “과제하기”와 같이 큰 일은 아주 세세하게 나누어 하나씩 처리하면, 즉 압도될 것 같은 도저히 못할 것 같은 일은 세세하게 나누면 시도하기가 더 쉬울 것입니다. 물론 이것도 직접 종이에 쓰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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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봄이 다가오니까 꼭 햇빛 쬐러 산책 많이 다니시구요, 독일은 날씨탓도 크져ㅜㅜ, 그리고 힘들어도 사람들과 연락 꾸준히 나누시고 만나시고 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이 다 말씀하셨지만, 방청소랑 규칙적 식사 이런 것도 자신을 지키는 방법인 거 같아요. 저도 나이가 적지 않고 오랫동안 지지부진하게 공부하고 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고 굳세게 마음 먹어요. 글쓴이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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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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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날씨가.. 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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