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물자체를 추론한 건 모순 아닌가요?

칸트는 인간은 감성과 지성을 이용해서 오직 현상과 그런 현상을 구성하는 인간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런 칸트가 본인의 철학에서 현상과 그런 현상을 구성하는 인간과 독립적인 물자체의 존재를 추론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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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ection Problem을 보시면 더 얻어내실 게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칸트를 잘 몰라서 더 드릴 말이 없네요.

말씀하신 것과 유사한 비판이 칸트에 대한 고전적인 비판 중 하나입니다.
다음 영상의 5-8번, 특히 7-8번이 유사한 딜레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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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칸트 본인이 이러한 비판에 코멘트를 남긴적이 있나요?

칸트에게 제기되는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횡행하는 이 고전적인 비판은 사실 물자체에 대한 칸트의 서술을 오독한 것에 기초한 잘못된 비판입니다. 칸트는 "물자체는 존재한다"와 같은 존재 진술을 한 적이 없습니다.

  1. 존재 진술을 하기 위해서는 존재한다고 주장되는 그 대상(=물자체)에 대한 인식이 주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2. 대상이 인식에 주어지기 위해서는 대상의 직관이 인식에 주어져야 합니다.
  3. 물자체는 그 정의상 (=인간의 인식과 독립적인 무언가) 직관에 주어질 수 없습니다.
  4. 따라서 "물자체는 존재한다" 는 무의미한 진술에 가깝습니다.

비슷한 오류에 기반한 (마찬가지로) 잘못된 비판은 "물자체는 촉발의 원인이다"에 대한 소위 야코비의 비판이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칸트는 이것을 말한 적도 없고 말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칸트는 왜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물자체" 개념을 계속 사용하느냐? 이에 대해서는 길고 복잡한 이유가 있고 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적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Phaenomena und Noumena" 챕터 ( 찾아보니 백종현 번역본에서 "대상 일반을 현상체와 예지체로 구별하는 근거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네요)에서 이 개념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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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론'이야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추론한 물자체에 대해 뭐라고 규정하지도 않았으니까요.

(형이상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해서 모두 다 정당화된 지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게 순수이성비판2 전체 주제기도해서 칸트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칸트는 귀납적인(=경험적인)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선험적인 지식들의 영역을 설정하고,

선험적 지식들의 명제(that이하)가 생성되거나 그 명제가 정당화되는 근거로

직관/상상력/범주가 적절히 규제되었음을 승인함. = I think, 코기토 명제의 의미. 로 잡은 듯 하니까요.

단순히 형이상학적 추론이 가능함(2권) = / 직관/상상력/범주가 적절히 규제되었음.(1권) 인듯요.

물자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직관이 필요없는 건가요?

칸트는 물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해도 자신의 사상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건가요?

여기서 ‘직관’은 우리가 ‘직관적이다’라고 할 때의 의미와는 다소 다릅니다. 차라리 (약간의 왜곡을 동반하더라도) ‘의식에 직접 현상한다’ 정도로 생각하는게 제게는 더 편리하게 느껴집니다. 여하간 물자체가 직관에 주어질 수 없다는 건 ‘직관에 따라 물자체를 추론할 수 없다!’와는 뜻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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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뉴비라 잘 모르지만...

프롤레고메나 읽고있는 중에 관련된 문구가 있는 것 같아서 남겨봅니다.

‘따라서 지성은 자신이 현상을 받아들인다는 바로 그 사실로 사물 자체의 현존 역시 인정하는 것이 된다.’(A105)

오독했을 가능성 100%지만 제 나름대로 이해한 바는
감성의 순수 직관(시간,공간)과 지성의 범주들을 통해야지만 현상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러한 우리 인식원천을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므로,
물자체를 바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인식원천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므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상의 근거(?)인 물자체가 있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물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추론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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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칸트는 (혹은 칸트 이후의 칸트주의자들은) 실제로 이런 구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저로서는 이런 구분조차도 과연 물 자체 개념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요. 추론은 결국 현상계의 영역에서 성립하는 판단들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활동이거든요. 현상계 너머의 초험적인 '무제약자'에 대한 추론을 칸트의 철학이 거부하려고 한다면, 물 자체의 존재에 대한 추론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초험적 대상의 존재에 대한 추론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물 자체의 존재에 대한 추론을 애매하게 남겨둔다는 점이 칸트 철학의 문제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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