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인간은 감성과 지성을 이용해서 오직 현상과 그런 현상을 구성하는 인간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런 칸트가 본인의 철학에서 현상과 그런 현상을 구성하는 인간과 독립적인 물자체의 존재를 추론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칸트는 인간은 감성과 지성을 이용해서 오직 현상과 그런 현상을 구성하는 인간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런 칸트가 본인의 철학에서 현상과 그런 현상을 구성하는 인간과 독립적인 물자체의 존재를 추론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요?
Affection Problem을 보시면 더 얻어내실 게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칸트를 잘 몰라서 더 드릴 말이 없네요.
혹시 칸트 본인이 이러한 비판에 코멘트를 남긴적이 있나요?
칸트에게 제기되는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횡행하는 이 고전적인 비판은 사실 물자체에 대한 칸트의 서술을 오독한 것에 기초한 잘못된 비판입니다. 칸트는 "물자체는 존재한다"와 같은 존재 진술을 한 적이 없습니다.
비슷한 오류에 기반한 (마찬가지로) 잘못된 비판은 "물자체는 촉발의 원인이다"에 대한 소위 야코비의 비판이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칸트는 이것을 말한 적도 없고 말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칸트는 왜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물자체" 개념을 계속 사용하느냐? 이에 대해서는 길고 복잡한 이유가 있고 학자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적입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의 "Phaenomena und Noumena" 챕터 ( 찾아보니 백종현 번역본에서 "대상 일반을 현상체와 예지체로 구별하는 근거에 대하여"라고 되어 있네요)에서 이 개념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추론'이야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추론한 물자체에 대해 뭐라고 규정하지도 않았으니까요.
(형이상학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고해서 모두 다 정당화된 지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게 순수이성비판2 전체 주제기도해서 칸트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칸트는 귀납적인(=경험적인) 정당화가 필요하지 않은, 선험적인 지식들의 영역을 설정하고,
선험적 지식들의 명제(that이하)가 생성되거나 그 명제가 정당화되는 근거로
직관/상상력/범주가 적절히 규제되었음을 승인함. = I think, 코기토 명제의 의미. 로 잡은 듯 하니까요.
단순히 형이상학적 추론이 가능함(2권) = / 직관/상상력/범주가 적절히 규제되었음.(1권) 인듯요.
물자체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직관이 필요없는 건가요?
칸트는 물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해도 자신의 사상이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건가요?
여기서 ‘직관’은 우리가 ‘직관적이다’라고 할 때의 의미와는 다소 다릅니다. 차라리 (약간의 왜곡을 동반하더라도) ‘의식에 직접 현상한다’ 정도로 생각하는게 제게는 더 편리하게 느껴집니다. 여하간 물자체가 직관에 주어질 수 없다는 건 ‘직관에 따라 물자체를 추론할 수 없다!’와는 뜻이 다릅니다.
철학 뉴비라 잘 모르지만...
프롤레고메나 읽고있는 중에 관련된 문구가 있는 것 같아서 남겨봅니다.
‘따라서 지성은 자신이 현상을 받아들인다는 바로 그 사실로 사물 자체의 현존 역시 인정하는 것이 된다.’(A105)
오독했을 가능성 100%지만 제 나름대로 이해한 바는
감성의 순수 직관(시간,공간)과 지성의 범주들을 통해야지만 현상을 인식하는 것이 가능한데,
이러한 우리 인식원천을 통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므로,
물자체를 바로 인식하는 것은 우리 인식원천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므로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현상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상의 근거(?)인 물자체가 있다는 추론으로 이어진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봅니다.
물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추론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오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칸트는 (혹은 칸트 이후의 칸트주의자들은) 실제로 이런 구분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저로서는 이런 구분조차도 과연 물 자체 개념을 정당화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요. 추론은 결국 현상계의 영역에서 성립하는 판단들에 대해서만 적용되어야 하는 활동이거든요. 현상계 너머의 초험적인 '무제약자'에 대한 추론을 칸트의 철학이 거부하려고 한다면, 물 자체의 존재에 대한 추론도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초험적 대상의 존재에 대한 추론을 거부하면서도, 여전히 물 자체의 존재에 대한 추론을 애매하게 남겨둔다는 점이 칸트 철학의 문제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