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키 <이름과 필연> 1강 질문

이름과 필연에서 1M의 길이 약정하는 부분부터 전체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1강 후반부)

  1. 크립키가 이름과 필연 1강에서 미터 약정에 대한 비유를 쓴 구체적 목적을 잘 모르겠습니다.

1M = 고정지시어
t0에서의 막대 S의 길이 = 비고정지시어

리는 개념을 설명하며 우연적 선험성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저 약정이 1미터 지칭체를 결정한다는 걸 설명하려 했던 건가요?

1-1. 책에 나오는 우유성이 accident길래 제가 대충 우연성으로 알아듣긴 했는데 우연성과 우유성이 동의어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1-2. 비트겐슈타인이 <이것은 1미터 길이이다.> <이것은 1미터 길이다>라는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가 뭔가요? 1미터라는 용어를 쓰려면 문장 사전에 1미터가 무엇인지가 경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는 건가요? (“지하 3피트에 물이 있음을 내 손 안에서 느낀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인가요?)

  1. ”지칭체를 고정한다”는 말을 표면적으로는 이해해도 확실히 와닿지는 않는 느낌인데… 조금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시 있을까요?

  2. 결론적으로 우연적 선험성의 존재를 밝히고, 고정 지시어인 이름과 비고정 지시어인 기술어구의 차이를 통해

  • 고유명사는 고정지시어이며 고유명사와 기술구는 구별된다 (러셀/프레게에 대한 반박)
  • 고유명사는 그 자체로 지칭의 기능을 수행한다

라는 주장을 이끌어내는 게 <이름과 필연> 1강의 목적인가요?

모르는게 많네요… 부분적으로라도 답변해주시면 정말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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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립키가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겨냥하고 쓴 것인데, 세부 내용을 설명하려면 글이 조금 길어질 것 같네요. 일단, 예전에 써둔 글을 여기에 첨부해 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으로 바라본 크립키의 반기술주의: 코라 다이아몬드, 「파리에 있는 표준 미터자의 길이는?」(1)
https://blog.naver.com/1019milk/221541565738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으로 바라본 크립키의 반기술주의: 코라 다이아몬드, 「파리에 있는 표준 미터자의 길이는?」(2)
https://blog.naver.com/1019milk/22154337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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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배경 설명을 해야 하는 점들이 많지만, 일단 핵심만 짧게 말씀드리는 것이 요점 파악에 차라리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파리 표준 미터자는 1m가 아닐 수도 있었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술주의는 (그리고 크립키가 생각하는 비트겐슈타인주의는) 이런 상식적이고 당연한 주장을 제대로 해명하지 못한다는 것이 크립키의 비판입니다.

(1-1) 네, 거의 동일한 용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1-2) 1m가 파리의 미터자를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이지, 파리의 미터자가 1m를 기준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파리의 미터자와 길이가 같으면 1m이고, 파리의 미터자보다 길이가 길면 1m보다 긴 것이고, 파리의 미터자보다 길이가 짧으면 1m보다 짧은 것입니다. 따라서 1m를 정의하기 위해 파리의 미터자가 사용되는데도, 파리의 미터자의 길이를 1m로 다시 정의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문법적 오류라는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지적입니다. 말하자면, 그런 시도는 정의항과 피정의항을 혼동했다는 것이죠.

(2) 쉽게 말해, '철수'라는 고유명사의 지칭체를 고정한다는 것은, 한번 '철수'라고 부른 대상을 끝까지 '철수'라고 부른다는 의미입니다.

(3) 대략 올바르게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다만, 저 요약들 자체는 틀리지 않았는데, 저 요약들을 어떻게 세부적으로 이해하셨는지는 조금 따져봐야겠지만요.

  • 예전에 서강올빼미에서 공식 언어철학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영상을 참고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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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설명을 제 수준에 맞게 쉽게 해주셔서 궁금했던 점이 해소되었습니다. 뜬금없지만 사실 저 존경심을 갖고 선생님 블로그를 보며 커온 팬(?)입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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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1-1)은 쓰신 내용을 제가 잘못 보았네요. '우유성'은 '속성(property)'과 거의 동일한 용어입니다. '우연성'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연적 속성'이 '우유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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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설명이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파리에 있는 미터자를 1m로 정의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크립키가 인용한 부분은 이러합니다:
There is one thing of which one can say neither that it is one meter long nor that it is not one meter long, and that is the standard meter in Paris. But this is, of course, not to ascribe any extraordinary property to it, but only to mark its peculiar role in the language game of measuring with a meter rule. (p. 54)

보시면 아시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은 '파리에 있는 미터 자가 1m다' 또는 '그 자가 1m가 아니다'라는 말부터가 불가하다는 것 같습니다.

크립키의 진단은 이러합니다:
Part of the problem which is bothering Wittgenstein is, of course, that this stick serves as a standard of length and so we can't attribute length to it. (ibid.; my emphasis)

보시면 아시겠지만, 크립키도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을 '파리에 있는 미터 자를 1m로 정의하는 것이 문제다'가 아니라 '파리에 있는 미터 자를 1m라고 말하는 것이 문제다'로 인식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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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불가능한 이유가 바로 1m의 기준이 파리 표준 미터자라는 점 때문입니다. 즉, ”파리 표준 미터자는 1m이다/아니다.“라는 주장은 1m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상을 1m로 설명하려 한다는 점에서 무의미한 문장입니다. 제가 위의 댓글에 올린 코라 다이아몬드의 글에 대한 해설에 이 점이 좀 더 상세히 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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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표준 미터자는 1m이다/아니다'라는 주장은 1m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대상을 1m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이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 위 주장은 파리 표준 미터자를 1m로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 주장은 그저 파리 표준 미터자에 1m라는 길이를 attribute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 생각에 무엇에 어느 길이를 attribute하는 것과 그것을 그 길이로 설명하는 것은 다른 행위인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파리 표준미터자에 1m라는 길이를 attribute하는 것이 불가하다 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파리 표준 미터자에 1m라는 길이를 attribute하는 것이 불가한 이유가 1m의 기준이 파리 표준 미터자라는 점 때문이다'가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이다라고 말하고 계신건가요? 저도 여기에는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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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적 선험을 설명하기 위한 예시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우연적으로 참이면서 선험적으로 참인 명제의 존재는 크립키가 인식적 차원과 형이상학적 차원의 분리를 보이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다만, 여기에 대한 회의론들이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여전히 선험성과 필연성이 종속 관계에 있다고, 가령 분석성>선험성>필연성의 순서로 강한 양상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1-1, 2 (생략)

2
고정적으로 지칭한다는 것은 그것의 내포(intension)가 항상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어떤 평가 상황에서도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입니다. w0에서 ‘크립키’가 의미하는 대상은, 사물의 배치가 달라진 w1에서도 여전히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이죠. 이건 그다지 반직관적이지 않은 주장입니다. ‘내 옆에 있는 기타가 반으로 조각나 있더라도 나는 그 기타의 주인이었을 것이다’와 같은 문장에서 “나”는 발화하는 ‘나’와 꼭 같은 대상을 의미해야 할 것이니까요.

3
《이름과 필연》은 대략적으로 보자면 (1) 프레게적 이론에 대한 반박, (2) 고유명에 대한 인과적 이론, (3) 자연종명에 대한 인과적 이론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그 목적에 비해 많은 철학적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는 강의입니다. 때문에 크립키의 논증이 어떤 단일한 문제만에 닿아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맥락만 놓고 보면, 말씀처럼 우연적 선험성을 통해 실제 사물인 지시체가 심적 대상인 뜻에 종속된다는 관점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을 보이기 위한 (목적보다는) 강한 논증으로 생각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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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험적 우연성에 대한 추가적인 궁금증이 있는데... 크립키가 언급한
"1M = t0의시점에서 막대 S의 길이이다."가 선험적 우연성의 예시라면, 어떤 사람 A가 막대를 손에 들거나 응시한 채 구어로 "1M = t0의 시점에서 막대 S의 길이이다"라고 말할 때도 저 문장에 선험성이 적용되나요? (우연성과 함께) 시각적 또는 촉각적인 지각 경험을 같은 시점에 동반하고 있는 경우에서요...

<이 막대의 길이가 1m이다>라는 명제가 선험적이라는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미터 단위를 미터 원기의 길이로 약정하는 경우에, 미터 원기에 대해 위의 진술이 선험적이라는 것이 크립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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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