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철, 『라이프니츠의 형이상학』, 제8장 요약

제8장 결정론

아르노와의 논쟁에서 라이프니츠는 자신이 결정론자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그런데 그의 입장을 잘 살펴보면, 라이프니츠 자신의 주장과는 달리 그의 철학은 실질적으로 결정론에 빠지게 된다. 특히 이는 라이프니츠가 개체의 통세계적 동일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그렇다.

1. 가능세계와 우연성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신은 수많은 가능세계들 중 최선의 세계를 선택해 창조했으며, 이것이 현실세계이다. 라이프니츠가 이처럼 가능세계들을 상정하는 이유는 가능세계를 통해 우연성을 설명하고 이를 통해 신의 선택의 자유를 위한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만일 오직 현실세계만이 가능하다면 신은 필연적으로 이 세계를 창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능세계들이 있어야 한다.

2. 가능세계와 현실세계의 존재론적 위상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신은 창조 이전에 세계의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을 정신 속에 떠올리고 있다가 그 중 하나를 현실화했다. 다시 말해 각 가능세계를 이루는 가능적 실체들은 모두 신의 정신 속에 관념으로, 즉 신의 성향적 속성으로 존재한다. 가능적 존재물들이 현실적 존재물들과 마찬가지로 실재하며 ‘현실’이 발화자가 속한 세계를 지시하는 지표적 표현이라고 주장했던 루이스(D. Lewis)와 달리, 라이프니츠에게 가능세계는 정신 독립적인 실재물들로 이루어진 현실세계와 달리 정신적 실재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즉 라이프니츠는 가능세계와 현실세계에 상이한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한다.

3. 가능세계에 대한 유명론적 환원

라이프니츠의 존재론에는 실체와 그 속성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가능세계를 포함하여 다른 모든 것들은 이 두 가지로 환원되어야 한다. 혹자는 신이 창조를 행하기 이전에 가능세계들이 있었으므로 가능세계가 현실세계에 존재론적으로 선행하며 따라서 환원 불가능한 기본적 존재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이츠의 설명처럼 가능세계들은 현실세계가 아닌 신의 정신적 속성으로 환원된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는 그 유명론적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가능세계 개념을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 양상논리의 발전에서도 잘 드러나듯, 가능세계 개념은 우연성과 필연성이라는 양상 개념을 설명한다. 따라서 가능세계 개념은 결정론의 문제와 관련된다. 결정론은 한 사물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라이프니츠는 가능세계 개념을 통해 우연성을 설명함으로써 결정론을 거부하고자 했으나, 그와 반대로 그의 입장은 결정론으로 귀결된다.

4. 아르노와의 논쟁

라이프니츠는 한 실체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그 실체의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으며 선험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이 진리는 우연적이다. 아르노는 이런 주장이 결국 결정론이라고 비판한다. 각 개체에 대한 모든 판단이 분석적이라면, 그 개체는 모든 속성을 필연적으로 지니며, 그 개체에게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필연적이다. “[…] 모든 일들은 운명 이상 가는 필연에 의해 일어났었고, 또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Le Roy, 88, 박제철, 2013, 193에서 재인용) 이는 결정론에 다름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확실성과 필연성, 혹은 가설적 필연성(necessitas ex hypothesi)과 절대적 필연성(necessité absolue)을 구별함으로써 이 비판에 대응하려 한다. 가설적으로 필연적인 것의 부정은 모순을 함축하지 않는 반면,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것의 부정은 모순을 함축한다. 전자는 신의 자유로운 명령에 근거하는 반면, 후자는 신의 순수 관념 혹은 지성에 근거한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각 개체가 지니는 속성과 개체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가설적으로만 필연적일 뿐이다. 신은 각 개체에게 일어날 모든 사건들을 예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사건은 여전히 우연적이다.

P는 절대적으로 필연적이다 =df. □P
P는 가설적으로 필연적이다=df. 신은 P라고 예견한다 → □P

이것이 가설적 필연성에 대한 유일한 해석은 아니다. 애덤스는 가설적 필연성을 다음처럼 해석한다.

P는 가설적으로 필연적이다 =df.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한다 → P)

애덤스와 박제철의 해석 차이는 논하고자 하는 주제의 차이에 그 연원을 둔다. 애덤스의 관심은 신이 이 세계를 필연적으로 창조했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창조했는지에 있다. 반면 박제철의 관심사는 신에 의해 이미 창조된 이 세계가 필연적으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우연적으로 작동하는지에 있다.

5. 명제 양상(de dicto modality)/사물 양상(de re modality)

가능성, 우연성, 필연성과 같은 양상 개념은 대언적이거나 대물적이다. 양상 개념이 명제에 귀속될 경우 가능적, 우연적, 필연적인 명제는 다음처럼 이해된다. 가능적인 명제는 적어도 하나의 가능세계에서 참이고, 우연적인 명제는 적어도 현실세계에서 참이며, 필연적인 명제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이다. 한편 양상 개념이 대물귀속될 경우, 우연적으로 F 속성을 갖는 사물은 그 사물이 존재하는 가능세계 중 적어도 현실세계에서 F이며, 필연적으로 F인 사물은 그것이 존재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F이다. 대언필연적인 명제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인 반면, 대물필연적인 명제는 그 명제의 지시체가 존재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참이다.

6. 결정론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대물적 필연성을 인정할 때 우리는 결정론에 빠지게 된다. 그는 결정론을 논박하고 의지의 자유와 신의 예지의 양립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이 한 사건을 예견한다는 점으로부터 그 사건이 필연적이라는 점이 따라 나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논증한다. 토마스는 “필연적이다”라는 표현의 중의성을 밝혀냄으로써 이를 논증한다. “이러저러하다고 예견된 것은 필연적으로 이러저러하다”와 같은 문장은 다음의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1) □(신은 x가 F라는 점을 예견한다 → x는 F이다)
(2) (신은 x가 F라는 점을 예견한다 → □x는 F이다)

필연성은 (1)에서 대언적으로, (2)에서 대물적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신은 P를 예견한다”는 “P이다”와 아무런 차이도 지니지 않는다. 즉 양자는 동치이다. 따라서 각 문장은 다음처럼 환언된다.

(1′) □(Fx → Fx)
(2′) Fx → □Fx

(1′)에서부터는 (2′)가 도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이 어떤 사건을 예지한다는 점으로부터 그 사건이 결정되어 있다는 결론은 따라 나오지 않는다. 결정론자는 (1′)뿐만 아니라 (2′)도 승인해야 하지만, 토마스가 보기에 (1′)은 참인 반면 (2′)는 거짓이다.

문제는 라이프니츠의 절대적 필연성이 대언적 필연성, 가설적 필연성이 대물적 필연성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신이 예견하는 사건들이 가설적으로 필연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대물적 필연성을 긍정하며, 따라서 결정론에 빠지게 된다.

7. 개체의 통세계적 동일성

라이프니츠는 아르노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러저러한 후손을 갖는 가능한 어떤 아담(un Adam possible)이 있고, 또 저러저러한 후손을 갖는 무수한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가능한 아담들은(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서로 서로 다르지 않겠습니까? (Le Roy, 88, 박제철, 2013, 207에서 재인용)

아르노는 이에 대해 다음처럼 비판한다.

저는 여러 나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 이러한 여러 나는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여러 내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 나 중 내가 아닌 누군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모순이 나오는 것이죠. (Le Roy, 97, 박제철, 2013, 208에서 재인용)

라이프니츠는 복수의 “가능한 아담들”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다르다면, 이들을 ‘아담’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이상하다. 이에 대한 라이프니츠의 대답에 따르면, “가능한 아담들”에서의 아담이란 완전 개체가 아니라 미규정적인 측면이 남아 있는, 아담의 속성들 중 일부만을 일컫는 것이다. 엄밀히 말했을 때 온전히 개체로 취급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추가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최대로 규정된 개념, 즉 완전 개체 개념에 해당하는 실체이다.

따라서 (불완전한 미규정적 개념으로 취급된) ‘아담’에 대해 여러 가능세계의 (완전 개체로서의) 아담들(w1에서의 아담, w2에서의 아담 등)이 존재한다. 그런데 각 가능세계 및 각 세계의 아담들은 각각 속성을 달리한다. 왜냐하면 이들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가능세계들 중 하나를 임의로 선택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가능세계들은 신이 보기에 더 좋거나 덜 좋다는 점에서 속성 상 차이를 지닌다.

문제는 이 주장에 따르면 각 세계의 아담들이 서로 다른 개체이며, 따라서 통세계적 동일성이 부정된다는 데에 있다. 대물적 필연성의 정의를 아담의 경우에 적용해보자. 일견 라이프니츠는

아담이 갖는 모든 속성 F에 대해, 아담이 존재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아담은 F이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고 말함으로써 대물적 필연성을 부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아담”은 진정한 이름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물적 필연성은 가능세계 wn과 관련해서 다음처럼 적용되어야 한다.

아담-wn이 갖는 모든 속성 F에 대해, 아담-wn이 존재하는 모든 가능세계에서 아담-wn은 F이다.

아담-wn은 wn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는 위 문장을 긍정한다. 결국 한 개체가 갖는 모든 속성은 그 개체에 필연적으로 귀속되며, 라이프니츠는 결정론에 빠진다.

8. 결론

라이프니츠는 모든 참인 명제가 분석명제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완전 개체 개념을 주어로 하는 분석명제가 우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논의에 의하면 우연적 명제는 가설-필연적, 혹은 대물필연적이며 결국 라이프니츠는 결정론에 빠진다.

라이프니츠는 창조 행위에서 신의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 가능세계와 우연성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된 우연성은 신의 관점에서의 우연성이며, 현실세계 내 모든 사건이 필연적이라는 결정론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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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러한 형식화(?) 문장들은 원전에 있는 건가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내용을 이해하고 직접 만드신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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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철 선생님 책에서 나온 문장을 좀 일반화하고 몇몇 표현들을 기호로 대체했습니다. 원문에서는 기호를 사용해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비슷하게 나옵니다.

(1-a) 필연적으로(아리스토텔레스는 앉아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앉아 있다)
(2-a) 아리스토텔레스는 앉아 있다 → 필연적으로(아리스토텔레스는 앉음이란 속성을 갖는다) (박제철, 2013,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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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 저렇게 만들어두는 것들 볼때마다 섹시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배워서 좀 응용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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