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현대 인식론』 제5장 요약

제5장 내재론과 외재론

본서에서는 내재론과 외재론의 구분을 세 가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수행하고자 한다.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은 그 믿음이 적절한 근거에 의존함을 뜻한다. 따라서 '근거', '적절함', '의존함'의 세 측면에서 인식정당성에 대한 내재론과 외재론의 구분을 분석할 것이다.

여기서 제시하는 내재/외재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I)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x가 S라는 사람에게 내재적이라 함은 x가 S에 의하여 내성가능함을 의미한다.

(E)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x가 S라는 사람에게 외재적이라 함은 x가 S에 의하여 내성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첫째 차원: 인식정당성의 근거

그림5.1. 근거의 차원에서 내재론/외재론의 구분

증거주의는, 그것이 근거로 여기는 심리 상태가 명제적 내용을 가져야 하는가와 무관하게 내성가능하므로 내재론이라 할 수 있다.

과정주의는 인지 과정을 인식정당성의 근거로 여기는 입장이다. 인지 과정은 심리 상태들의 인과적 연쇄로 볼 수 있다. 즉 인지 과정은 심리 상태들과 그들 사이의 인과적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심리 상태들은 내성가능하다. 그런데 인과 관계가 내성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경험론의 전통에 따르면 인과 관계는 관찰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인지 과정은 외재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의 혼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성가능한 심리 상태가 인지 과정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는 점과, 경험론의 전통에서는 인과 관계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기 때문에 인지 과정이 순수한 심리 상태의 연속이라는 결론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과정주의는 내재론으로 분류함이 마땅하다.

반면 3장에서 살펴본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들은 지식의 분석에 있어 한 믿음과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과의 관계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들에게 지식의 근거는 외적 사실이다. 외적 사실은 내성가능하지 않으므로 이들 이론은 외재론이다.

사실 인식정당성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이론은 근거 내재론일 수밖에 없다. 인식정당성의 문제는 한 인식 주관에게 그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이기에, 인식 주관의 인식 체계 안에 주어진 것과의 연관 하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식정당성에서의 근거는 내재적이며, 이들을 분석하는 이론은 근거 내재론이다. 반면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은 인식정당성에 관한 언급을 피하고 지식을 그의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이론이 근거 외재론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차원: 근거의 적절성

한 근거가 믿음 P를 위한 적절한 근거가 되기 위해서는, 그 근거에 비추어보았을 때 믿음 P가 사실상 참일 확률, 즉 객관적인 확률이 높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객관적 확률은 내성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들은 적절성 외재론이라 부를 수 있다.

반면 한 근거가 한 믿음을 위하여 적절하기 위해서는, 그 근거에 비추어보았을 때 믿음 P가 인식 주관에게 파악되기로 참일 확률, 즉 주관적인 확률이 높아야 한다고도 한다. 인식 주관에게 파악되는 확률이란 내성을 통해 파악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따르는 이론들은 적절성 내재론이다.

근거 내재론/외재론과 적절성 내재론/외재론의 관계는 어떠한가? 일단 근거 외재론은 적절성 외재론일 수밖에 없다. 근거 외재론에 의하면 한 믿음에 대한 근거는 외적인 사실이다. 그렇다면 근거 외재론에서 적절성의 기준은 외적인 사실과 믿음 사이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 관계는 내성불가능한 사실을 한 부분으로 포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관계는 내성불가능하며, 근거 외재론은 적절성 외재론이 된다. 대우에 의하여 적절성 내재론은 근거 내재론임도 알 수 있다.

반면 한 이론이 근거 내재론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적절성 내재론이라 할 수는 없다. 한 믿음에 대한 근거로 인식 주관의 인지 과정을 제시하면서, 그러한 근거가 적절한지의 여부는 실제로 그 인지 과정이 참인 믿음을 거짓인 믿음보다 더 많이 산출하는가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에 의하여 적절성 외재론이 근거 외재론이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셋째 차원: 토대 관계

단순히 인식 주관이 적절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한 믿음의 인식정당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적절한 근거를 갖고 있더라도 다른 부적절한 근거에 의하여 한 명제를 믿을 수 있고, 이 경우 그 믿음은 인식적으로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정당성의 분석에서 토대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

한 믿음과 그 믿음의 근거 사이의 토대 관계를 인과 관계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인과 관계는 감각적으로 관찰될 수 없다는 견해가 영국 경험론 이래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내성은 그 방향이 인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향하고 있을 뿐이지 관찰의 일종이다. 따라서 인과 관계는 내성불가능하며, 인과 관계를 토대 관계로 보는 입장을 토대 외재론이라 부를 수 있다.

인식정당성의 토대 관계는 문제의 믿음과 적절한 근거 사이의 지지 관계에 대한 상위 믿음에 의하여 성립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경우, 상위 믿음은 내성가능하므로 토대 내재론이라 부를 수 있다.

모든 근거 외재론은 토대 외재론에 속한다. 근거 외재론은 앞서 살펴본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들로 구성되는데, 이들의 지식 분석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믿음과 사실 사이의 인과적, 가정법적 관계들이다. 이들이 단순히 인과 관계에 포섭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성에 의하여 파악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따라서 근거 외재론은 토대 외재론이며, 대우에 의하여 모든 토대 내재론은 근거 내재론이다.

근거 내재론 중 증거주의의 경우, 토대 내재론일 수도 있고 토대 외재론일 수도 있다. 한 믿음이 특정한 증거에 토대를 두기 위해서는 상위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그 증거가 문제의 믿음의 원인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거 내재론 중 과정주의는 토대 외재론이다. 과정주의에서 토대 관계는 생산 또는 유지의 관계이며 이는 인과적 관계로서 내성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표 5.1. 내재론과 외재론의 분류

내재론/외재론 구분과 전통적 견해/발생적 견해의 구분

전통적 견해의 두 가지 중요한 경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인식 주체의 평가에 따른 상위 믿음의 요구

(2) 인식정당성을 심리 상태의 함수로 봄에 따른 반인과론

전통적 견해는 인식정당성의 필요조건으로 인과가 아니라 상위 믿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견해를 따르는 이론은 근거와 믿음 간의 토대 관계를 상위 믿음을 통하여 분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통적 견해를 옹호하는 이론은 토대 내재론이다.

전통적 견해는 인식정당성을 인식 주체에 대한 평가를 통하여 정의한다. 그렇다면 주어진 근거를 토대로 인식 주관에게 문제의 믿음이 참일 확률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면, 그 근거는 적절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전통적 견해를 따르는 이론은 적절성 내재론이다.

반면 발생적 견해는 참을 추구하고 거짓을 피한다는 인식적 목표의 관점에서 결과주의적 성향을 갖는다. 그러한 견해를 따르는 이론은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객관적으로 참일 확률이 높아야 한다고 볼 것이며, 따라서 발생적 견해는 적절성 외재론과 긴밀한 연관을 가진다.

발생적 견해는 믿음의 정당성을 그 믿음의 발생 과정의 함수로 본다. 그렇다면 발생적 견해는 과정주의에 속하게 되며 발생적 견해는 토대 외재론이 된다.

근거의 차원에서는 전통적 견해와 발생적 견해 모두 내재론에 속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인식정당성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이론들은 근거 내재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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