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질문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양철학사>(군나르 시크베크)를 간간히 읽고 있는 고등학생입니다
현재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고 있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에 대해서 질문 있습니다.
책에서 제가 이해한 바로는 플라톤이 이데아의 세계가 지각 가능한 세계와 분리 되어 있다고 말한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세계에 실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실체는 속성을 가진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실체에서 속성이 '상대적 존재'를 가진다고 나와 있는데요, 그러면 실체에 상대적 존재를 갖는 모든 속성을 제거하면 결국 실체의 '본질적인 것'만 남는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제 생각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하고 별반 다른게 없는것 같아서요
답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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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실체는 '제1실체'인 개체(individual)와 '제2실체'인 종(spiecies)으로 구분됩니다. 가령, 제1실체는 철수, 민수, 영수 등이고, 제2실체는 인간, 개, 고양이 등이죠. 이 중에서 제2실체는 특정한 개체가 지닌 '본질(essence)'이기도 한데, 이 본질이 바로 플라톤에 이데아 개념에 상당 부분 대응하는 특징을 지닙니다. '인간'이라는 종은 구체적인 낱낱의 사물이 아니니까요. 조금 오래된 논문이긴 하지만,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이론 사이에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훨씬 많다고 주장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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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여러 글을 읽어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점을 중심으로 설명해서 둘이 판이한줄 알았는데 비슷하다고 보는 관점도 있군용 감사합니다

저도 과문하지만 질문자 님의 공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댓글 남깁니다.

A. '[실체(οὐσία)는 '본질적인 것'과 '속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속성을 제거한다면 본질적인 것만 남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으로 들리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가운데 어떤 것에 초점을 맞추는지에 따라 다르게 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범주론』(Categoriae)의 실체론입니다. 이 저작의 제5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것들은 기체로서의 첫째 실체에 대해 말해지거나 기체로서의 첫째 실체 안에 내재한다. 그래서 첫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Categoriae, 5, 2b3-6](유재민 번역)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기체로서의 제일 실체[=개별자]를 제외한 나머지 존재자들은 1)제일 실체에 대해 술어가 되거나 2)제일 실체 안에 있다는 의미에서 제일 실체에 의존합니다. 달리 말하면, 제일 실체가 존재하는 한에서 제이 실체를 비롯한 비실체적 존재자들('속성'은 여기에 속하겠지요)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제일 실체와 그 밖의 존재자들의 관계를 다룹니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에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하죠. 『범주론』에서는 '속성의 존재는 개별자로서의 실체에 의존한다'까지만 말해질 뿐, '그렇다면 실체에 귀속하는 속성들을 다 지우고 나서도 남아있는 건 뭘까?' 물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이 저작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국내 연구에서는 조대호(2007) 선생님이 이 점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다소 길지만 인용해봅니다.

"첫째 실체의 자립성 또는 분리 가능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들은 의문을 남긴다. 『범주론』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 없이는 실체에 속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데,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할 수 없을까? 첫째 실체는 그것에 속하는 것들과 따로 떨어져서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실체에서 모든 것을 배제한다면, 무엇이 남는가? 첫째 실체의 자립성은 그런 잉여적 존재자의 자립성을 뜻하는가? — 근대 철학의 실체 개념을 염두에 둘 때 떠오르는 이런 질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론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는 아래에서 더 설명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런 질문들은 첫째 실체의 자립성에 대한 『범주론』의 논의를 많이 비껴난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말이나 이 사람과 같은 첫째 실체가 분리 가능한 것이요 자립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우리는 그저 일상 언어의 수준에서 이해하면 된다. 거기서 분리 가능성은 다만 실체에 속하는 것들이 지니는 내재성과 반대되는 뜻으로 쓰였을 뿐이다. 성질, 크기, 관계 등은 언제나 어떤 것의 성질이요, 어떤 것의 크기요, 어떤 것과 어떤 것의 관계이다. 그것들은 언제나 특정한 실체 안에 있을 뿐 그것과 떨어져서는 있을 수 없고, 그런 뜻에서 타자 의존적이다. 반면, 첫째 실체들은 마치 하양이나 크기 등이 다른 어떤 물체에 속해 있다는 것과 같은 뜻에서 다른 어떤 것에 속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체들은 다른 것에 속함이 없이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존재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자기 안에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뜻에서 그 자체로서 있다. 다시 말해서 첫째 실체의 자립성은 다른 것들을 그것으로부터 배제했을 때 마지막에 남는 잉여적 존재의 자립성이 아니라 존재에 충분한 조건을 자기 안에 갖추고 있는 자기 충족적 존재의 자립성이다." (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 실체론의 지형도", 『화이트헤드 연구』 14 (2007), 69-70쪽)

B. 우리의 질문이 『범주론』의 문맥에서는 답해지기 어렵거나 혹은 애초에 논점을 벗어난 것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Metaphysica) 제7권에서 그 물음을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3장에서 '기체가 실체다'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견해라고 말한 뒤, 그런 견해를 밀어붙일 때 어떤 결론에 이르는지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실체로부터] 다른 것들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분명 밑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다른 것들은 물체들의 양태들이거나 그것들로써 만들어진 것이거나 그것들의 능력이고, 그런가 하면 길이나 넓이나 깊이는 양적인 것들이지 실체들이 아니요(양적인 것은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런 것들을 자기 안에 속하는 것으로 가지고 있는 첫째가는 것, 바로 이것이 실체이다. 그러나 길이와 넓이와 깊이를 덜어내면, 우리는 이것들에 의해 제한된 어떤 것을 빼놓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데, 결국 이런 관점에서 그 문제를 고찰하는 사람들[=기체를 실체로 간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질료가 유일한 실체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질료란 그 자체로 보아서는 어떤 종류의 것도 아니고 양적인 것도 아니며, 있는 것을 정의하는 수단이 되는 다른 어떤 것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일반적 의견에 따르면 '분리가능성'과 '여기 이 어떤 것'은 주로 실체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형상과 둘로 이루어진 것이 질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실체로 생각될 것이다."[Metaphysica, Ζ-3, 1029a11이하](기본적으로 조대호의 번역을 따르되, 인용자는 원문의 "τόδε τι"를 '이것'이 아니라 '여기 이 어떤 것'으로 새겼음)

위의 연관구절에 근거할 때,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속성을 벗겨낸 실체'를 곧바로 '본질적인 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실체 개념을 너무 거칠고 협소하게 이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성[=분리가능성]과 지시가능성[=여기 이 어떤 것]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면 자칫 무엇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무규정적인 것이 될 텐데, 설령 그걸 실체라고 할지라도 '본질'로서의 실체, 즉 형상 또는 질료와 형상의 복합체에 비해서는 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C. 플라톤과의 비교는 저도 더 공부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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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결국 실체를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해 버린다면 이데아론과 마찬가지로 속성을 모두 제거한 실체를 우리가 규정할수 없기 때문에 '본질적인 것'을 순수한 실체의 형태로는 보기 힘들다는 뜻으로 이해...한건 같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