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진학 준비 질문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현재 철학과 학생이지만, 저학년이라 지금까지 철학사 위주의 수업 위주로 들었습니다.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어떤 철학 분야에 대해 '이거를 공부 해야겠다!' 라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들었던 철학 수업을 아주 즐겁게 들어 앞으로도 이런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에 철학과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와중에 선배들이 우리학교는 철학 요건이 그리 많지 않으니, 복수전공을 고려해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고민해 본 결과, 근대철학 수업을 들으면서 진리를 알려면 인간의 감각과 인지, 인식에 대해 아는 것도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이 들어 인지 과학을 복수 전공 해보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민이 되는 것이 인지과학과 복수 전공을 한다면 그만큼 철학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인데, 과연 이것이 옳은 선택일까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결국 대학원을 간다면 철학과로 갈 것이고, 듣기로는 철학 대학원은 얼마나 다양한 철학 수업을 들었는지가 중요하다는데, 괜히 인지과학을 복수전공을 해서 본질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차라리 복수전공을 하지 않고 철학 수업을 더 다양하게 듣거나, 조기졸업을 하고 (아무래도 학비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철학 공부를 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까요?

결과적으로 제 질문은:

  1. 인지과학을 복수 전공 하는 것이 추후 철학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그것이 다른 철학 수업을 듣지 못함을 감수할만큼의 가치일까요?
  2. 추가적으로 보통 언제, 또 어떻게 철학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확신합니까?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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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을 복수 전공할 수 있다면, 저라면 할 듯합니다.

(저의 관점에서) 오늘날 영미권 범 분석철학은 크게 네 가지 경로로 가는듯합니다.
(a) 양상논리와 같은 논리학-형식적 도구를 활용한 언어철학과 분석형이상학
(b) 인지과학을 비롯, 여러 실험적 내용을 바탕으로 한 지각 이론/추론 이론/선택 이론/심리 철학/도덕 심리학 등등
(c) 다양한 과학 분야에 대한 "좀 더 고전적 분석철학과 같은" (개념 분석 중심의) 여러 과학의 철학들
(d) 윤리나 미학의 영역에서 하는 이러한 분석적 작업들.

이 중, 경험상 (a)/(b)는 아카데믹한 훈련이 없다면 독학으로 얻기 굉장히 어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따라서 인지과학 복수전공이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된다 여기진 않습니다.

(다만 철학사 위주의, 문헌적 접근을 하고 싶다하시면 조금 고민이 될 수 있겠네요. 그때는 당장 중요한건 이런 것보다는 원어와 원전에 대한 독서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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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한 지극히 주관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도움이 약간이나마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번의 경우, 저는 책을 읽다가 문제의식을 갖고 철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문과, 이과, 예체능... 다양한 분야의 진학을 생각해 봤고, 또 그걸 위해 여러 가지를 해 봤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그 문제가 제게 정말 주된 문제라는 걸 확신하는 데 좀 걸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확신했는가?

먼저, 그 문제의식이 생긴 시점인 고1~2때 처음 확신했습니다. 평소에는 '여기 진학해야겠고, 나머진 모르겠다! 내 인생 어떻게든 되겠지!' 이랬는데, 철학과 들어가고 대학원에 가서 어떤 연구를 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나마 정한 시점이었거든요.

대학에서 정말 좋은 수업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나 대학원 진학하려 했지?"가 떠올랐을 때도 확신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을 가지게 됐다는 점은, 평범한(?) 수업에서 불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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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과학은 아니지만, 저는 학부 시절에 철학과 종교학을 복수로 전공하였습니다. 그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자면,

(1) 인지과학을 복수 전공 하는 것이 추후 철학 공부에 도움이 될까요?

물론, 철학이나 인지과학을 얼마나 깊이 공부할 것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 복수전공은 철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매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네요.

첫째로, (이건 매우 현실적인 문제인데,)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늘어납니다. 철학과, 철학 학회, 철학 학술지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 영역이 열린다는 의미입니다. 저만 하더라도 종교학을 전공한 경험이 대학원생이 되자 철학 바깥의 다양한 논문경진대회나 서평대회에서 상당히 유용하였습니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논문을 써서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상을 수상한 적도 있고, 신학 서적에 대한 서평을 써서 기독교 신문에 실린 적도 있고, 종교학/신학과 관련된 출판사나 아카데미에서 강의 요청도 받은 적이 있거든요.

둘째로, 해당 주제를 이해하는 안목이 넓어집니다. 가령, 철학자들도 종교에 대해 담론을 제시하긴 하지만, (종교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보자면,) 철학자들이 종교를 논의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로 매우 많이 어설픕니다. 종교에 대해 인류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신화학적, 신학적 연구를 수행하는 학자들의 이론을 제대로 참고하지도 못할 뿐더러, 실제 종교 전통에서 이루어지는 제의들에 대해서도 간과해버리고 말거든요. 아무리 철학이 다양한 분야와 주제들에 대해 메타적인 연구를 하는 학문이라지만, 철학으로는 도저히 커버가 되지 않는 실증적이고 세부적인 영역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복수전공을 공부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셋째로, 몇몇 분야들은 뒤늦게 공부하려고 하면 매우 힘듭니다. 종교철학은 이런 장벽이 크게 높지는 않은 편이지만, 수리철학이나 과학철학 같은 분야들은 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인문계에서 순수하게 철학만 공부한 사람들은 접근조차 하지 못할 논의들이 많으니까요. 학부 시절부터 해당 분야 내부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야 그 논의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죠. 그래서 철학 중에서도 이런 세부 분야들을 파고드실 계획이시라면, 복수전공 제도를 활용하시길 적극적으로 추천드립니다.

(2) 언제, 또 어떻게 철학 특정 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고 확신합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이 시작되어서 대학교 3-4학년 무렵에 뚜렷하게 정해졌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주의를 공부하고 싶다.'라는 막연한 관심만 있었는데, 대학교 2학년 정도 되니 실존주의, 현상학, 해석학이 뗄 수 없이 긴밀하게 맞물려 있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에서는 철학적 해석학을 전공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런 '관심'이라는 것이 어느 순간 한 번에 결정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대학원에 와서도 '철학적 해석학이 분석적 헤겔주의와 연결되어 있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관심이 확장되기도 했고, 지금도 공부를 하면 할수록 관심이 조금씩 조정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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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는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동시대 철학의 흐름에 대해 전혀 고려해보지 않은 스스로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제가 너무 입시에 초점을 맞추어 당연히 생각해보았어야 할 큰 흐름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네요. 앞서 글에 적었듯, 아직 어떤 철학 분야에 대해 공부할 지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 Mandala 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어떤 분야를 고르던 인지과학을 병행하는 것이 앞으로의 제 공부과정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원전에 대한 독서도 물론 게을리하지 않아야겠죠. 복수 전공 해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경험 공유 감사합니다. 최근에 특정 철학 분야를 정하지 못한 스스로에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싶어 두번째 질문을 작성한 것이었어요. '문제 의식을 갖는다' 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앞으로 독서를 할 때 그 부분을 염두해두며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복수 전공을 추천해주시는군요. 제가 고려하지 못한 많은 부분들을 언급해주시면서 설명해주셔서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너무 특정 철학 분야 한가지만을 해야한다 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철학은 다양한 분야들이 연결되어 있는 학문인데, 아직 특정 주제에 대해 공부해 볼 확신이 없는 스스로에 대해 조급함을 느껴서 그 부분을 놓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인 경험을 곁들어 설명해주셔서 이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복수전공은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철학을 공부하고 관련 서적도 읽어보고 또 다른 학문도 병행하면서 고민하다보면 저도 언젠간 저에게 맞는 관심 주제를 찾을 수 있겠죠. 확장되기도 할 거구요. 지금은 열심히 해야할 때 인 것 같네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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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dala 님의 이유와 거의 같은 이유에서, 복수전공을 하는 것을 뭔가 손해가 되리라고 생각하실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씀드립니다. 다만 당장 시작하기보다는, 여유가 된다면 3학년 즈음으로 유예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보다 많은 개론 수업을 들어본 뒤, 자신의 철학적 관심이 어디에 있고 따라서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할지를 명확히 하고 나면 인지과학 복수전공의 필요성이 보다 명료해질 겁니다. 일단 자신의 관심이

임이 확실해지고 나면, 철학 수업을 더 적게 듣는 일은 감수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쪽이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될 겁니다. 독학으로 전문적 방법론을 훈련받는 것은 꽤나 돌아가는 일이고, 피곤한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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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3학년 때 개론 수업을 들으면서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끌림을 느낀 주제에서 지금 탐구하는 주제들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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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우선은 인풋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말씀대로 다음 학기에는 다양한 개론 수업을 들어봐야겠어요. 현실적인 조언 감사합니다.

  1. 이런 확신이 쉽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저는 좀 부럽더라구요. 그런데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저는 한국에서 학부 다닐 때, 일단 학부 개설 과목들에는 통 관심이 없었어요. 학점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제가 진심으로 그 과목들을 배웠다는 느낌은 없어요. 시험 끝나면 신속하게 삭제되곤 했어요. 오히려 저는 교외 외부 인문학 강의들을 참여하면서, 그리고 혼자 개인적으로 관심가는 철학책들을 찾아 읽으며 철학에 빠지게 되었어요. 그 당시에 발터 벤야민, 랑시에르, 칼 슈미트, 프랑스 철학 이쪽으로 흥미를 가지고 읽었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벤야민을 공부하기를 원한다고 믿었어요. 당시 벤야민이 한창 한국에서 뜨고 있던 시점이어서, 번역서도 계속 나오고 있었고, 일종의 벤야민 유행하는 분위기가 있었죠. 뭐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벤야민이 다시 재발굴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은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제가 유학을 와서, 여기도 벤야민이 유행 중이라, 이제 벤야민 세미나들을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제야 깨달은 거죠. 저는 여전히 벤야민의 글을 정말 좋아하고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제 성향과 철학적 방향성과는 길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제가 느끼기에, 벤야민의 세계와 접근 방식이 상당히 관념적이라는 제 주관적 감상을 덧붙입니다. ㅎㅎ 사실, 저는 여러 세미나를 들어가면서야 제게는 사회철학이나 사회 인식론 쪽이 성향에 맞다는 걸 여기에 와서야 깨달았어요. 그런데 한국에 있을 때는 벤야민이 유행 중이었고, 텍스트 접근성이 좋았고, 또 주변 사람들이 많이 공부하니까, 저도 알게 모르게 나도 벤야민 공부하면 적성에 맞겠구나 생각했던 것이더라구요.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은, 여러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과정에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다른 성향을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을 제 경험에서 이야기 드려요. 그러는 과정에서 아 나는 이런 철학 분과가 맞구나를 찾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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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 댓글에 다 적극적으로 동감합니다.

저학년이시만큼, 위 부분까지 포함해서 여러모로 차분히 시간을 두고 결정을 내리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철학 특정 분야"에 관한 결단을 내리시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이 일찍부터 고민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든 바뀌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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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철학을 공부하시네요! 단순히 책을 읽고 수업 듣는 것만으로 철학을 공부했던 제가 아직 적성 분야를 찾지 못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외 외부 인문학 강의들이나 세미나들도 한 번 참고해보고, 다양한 상황에 스스로를 노출시켜보면서 제 관심사를 찾아보도록 해야겠습니다. 멋진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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