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 대한 분석 (미완성)

(1) 전통적으로 지식은 다음 삼단항으로 정의되었다.

지식 = a. 정당화된 b. 참인 c. 믿음이다. (JTB 조건)

이 조건들을 하나씩 검토해보자.

(1.b.) 참 조건
i. '참'이 아닌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것이 압도적인 다수의 의견이다.
비록 몇 학자들은 '알다'라는 동사가 강하게 확신했으나 틀린 것으로 판명된 명제를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고 지적하지만 말이다. (예컨대, "난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이길걸 알아.")
이 소수 의견에 대해, 대다수의 학자들은 예시의 표현이 과장일뿐이라고 해석한다. 여기서 안다는 건, 강하게 믿는다는 뜻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아래에 나올 믿음과 지식 문제에서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

ii. 또 한 가지 지적할 것은, 형이상학적 참과 인식론적 참은 구분되어야한다는 점이다. 'X가 참이다.'와 'X가 참임을 안다.'는 구분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전을 던져서 손등으로 받아서 아직 안 열였다고 해보자. 이 경우, 동전이 앞인지 뒤인지, 그 참은 정해져있다. 다만 우리가 정해진 형이상학적 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뿐이다.
[고로 여기서는 어떻게 형이상학적 참이 인지적 주체에서 전달되는지, 인식론적 참을 다룰 것이다.][형이상학적 참/의미론적 참에 대해서는 현재 열심히 요약되는 콜린 맥긴의 책을 참고할 것.]

(1.c) 믿음 조건

i. 앞서 말했듯, 기존의 이론에서 믿는다는 단순히 강한 확신이 있다 수준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보다 강한 온전한(full) 혹은 압도적인(outright)인 믿음이 있어야한다. 예컨대, '이것 아니면 안 된다.' 수준의 믿음 말이다. [역시 믿음에 관한 내용에서 보다 심도있게 다루어질 것이다.]

ii. 몇 학자들은 '(온전한) 믿음이 없는 지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다음 퀴즈쇼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퀴즈쇼에서 A에게 역사 문제를 낸다고 해보자. "엘리자베스 여왕이 언제 죽었는가?"에 대해, 예전에 역사 교육을 받은 A는 온전한 믿음은 없지만 대답을 하였고 이를 맞췄다. 그리고 A는 계속 이 역사 문제들을 맞췄다.

이 경우 A는 1. 온전한 믿음은 없지만, 2. 역사적 명제를 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어림짐작이나 찍기가 아니므로 안다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확신이 없으므로 온전한 믿음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 두 가지 방식의 반론이 있다. 첫째는 1. 온전한 믿음이 없다는걸 부정하는 방식이다. 반론자들은 A가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더라도, 암묵적인 믿음(tacit belief)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2. 앎이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A가 (우연이 아닌 방식으로) 옳은 답을 했을지라도, A의 태도를 고려했을 때 그게 충분히 지식에 맞게 정당화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1.a) 정당화 조건

i. 왜 지식이 단순히 참인 믿음으로 부족하며, 정당화 요건이 추가적으로 필요한가? 이는 '우연'의 문제, 즉 인식론적 운의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통상 운이 좋아 맞은걸 지식이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 적절한 이유 - 즉 정당화가 지식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

(1.a.1.) 정당화의 요건 ; 외재주의와 내재주의
내재주의는 믿음에 대한 정당화가 전적으로 인지자의 내적 상태에 달려있다는 주장이다. 내재주의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하나는 인지자가 직접적/혹은 반성적으로 접근 가능한 것만이 내재적이라는 "접근 내재주의(accesa internalism)"과 인지자의 내적 상태면 모두 내재적이라는 "상태 내재주의(state internalism)"이 있다.

(이런 내재주의의 예시로는 증거주의(evitenalism)이 있다. 예컨대, 명제 X가 정당화되는 것은, 인지자 A가 가진 증거에 맞을 때 가능하며, 이 증거가 온전히 내재적이라는 점에서 증거주의는 내재주의라 볼 수 있다.)

반대로 외재주의는 인지자 외부의 것을 통해서 믿음이 정당화된다고 본다. 예컨대 절차주의자들은, 인지자의 내적 상태와 구분되는, 올바른 인지적 절차를 통해서 정당화가 이루어진다고 본다.

(1.a.2.) 정당화의 종류

외재주의 - 내재주의처럼 쉽게 조화되기 어려운 입장에 비해, 다음에 언급될 정당화의 종류(방식)은 상호 배타적인 입장이 아니다. (다만 둘이 관계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명제적 정당화(Propositional justification)은 인지자가 주어진 명제를 충분히 믿을 이유가 있는지를 정당화의 조건으로 고려한다. 반면 신념적 정당화(doxastic justification)은 주어진 믿음이 적절했는지를 정당화의 조건으로 고려한다.

예를 들어보자. 잉그리드는 이웃집이 위험하다고 믿는다. 다만 그 근거는 검은 고양이가 이웃집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잉그리드는 충분한 명제적 정당화가 있다. 왜냐하면 '이웃집이 위험하다'는 명제를 충분히 믿을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신념적 정당화 요건을 부족하다. 왜냐하면 검은 고양이라는 미신을 지식에 '적절한 믿음'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로, 여기서 알다시피, 신념적 정당화가 명제적 정당화보다 더 강한 조건이다. 전통적으로 삼단정의된 지식에서 정당화란 신념적 정당화를 가리킨다고 여겨진다.)

(2) 가벼운 지식(Lightweight knowledge)

몇 학자들은, '지식'이라는 단어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주장한다. 특히 지금까지 논의한 강한 지식과 반대되는 '참인 믿음'만을 요구하는 '약한 지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다음 같은 일상적 사례에 기반을 둔다. 우리가 '누군가가 무엇을 안다'는 것을 물을 때, 때론 그 지식이 '어떻게 정당화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시험에서 한국의 수도를 묻는다고 치면, 여기에 대한 답은 서울이지만 이 문제의 출제자는 어떻게 서울이라는 답이 정당화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관심할 것이다.

(다만 이 사례를 비판하려는 측은, 여기서 정당화가 누락된 다음의 직관적 사례가, 정당화가 결여되었기에 진짜 '앎'이 아니라는 식으로 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알다'라는 단어는 [(1.b.) 참 조건에서의 논의처럼] 진짜가 아닌 과정된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다만 가벼운 지식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강한 지식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로 다시 강한 지식의 문제로 넘어가보겠다.)

(3) 게티어 문제

게티어 문제는 기존 JTB 조건으로는 지식이 성립되기에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기해보자면, 지식에서 정당화 요건이 요청되는 이유는 '인식론적 운'. 즉 찍기로 맞은 것을 지식에서 제외하기 위함이였다. 게티어 문제는 정당화만으로는 이 '인식론적 운'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보임으로, JTB 조건 이상을 요구한다.

[통상 게티어 문제는 '옳은 방식으로 정당화가 된 믿음'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지만, '우연의 일치로' 참으로 바뀌는 경우로 예시화 된다.]
예컨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보았다고 해보자. 알고보니 그렇게 본 오아시스는 신기루였지만, 실제로 본 곳에 가보지 운이 좋아서 '실제 오아시스'가 있는 경우다.

게티어 문제를 JTB 조건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JTB 조건의 '정당화' 요건을 강화해서, 게티어 문제의 경우를 '정당화된 믿음'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원문에서는 7에서 언급된다고 말하지만, 이는 오류로 보인다.]

둘째는 JTB 조건에 네번째 조건을 더한, JTB + X를 지식의 정의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 경우들을 살펴보자.

(4) 게티어 + X ; 1. 거짓 부명제 제거

JTB + X의 첫번째 접근은 "(d) 인지자의 믿음이 거짓에서 추론되지 않았다."를 추가하는 것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게티어 문제가, 옳은 방식으로 정당화된 '틀린 믿음'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이 접근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허나 모든 게티어 문제가 '틀린 믿음'에 기반하지는 않는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유사 게티어 문제를 살펴보자.

인지자가 공원에서 개를 보았다고 해보자. 알고보니, 그 개는 일본에서 새로 만든 로봇 개로서, 감각 지각만으로는 실제 개와 구분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인지자는 이 정보를 전혀 모른다.)[환각이 아닌 통상적인 감각지각에 의한 정당화는, 대부분의 인식론 학자들이 올바른 정당화라고 여길 것이다.] 그럼에도 게티어 문제처럼, 이 공원에 실제 개가 있다면 다시 게티어 문제가 발생한다.

혹은 가짜 헛간 사례를 살펴보자. 시골길에 사람들을 엿 먹이기 위해, 헛간과 구별되지 않는 간판을 세워놓았다고 해보자. (극사실주의 회화를 생각해보자.) 여길 지나가는 인지자는 당연히 이 헛간을 통상적인 감각 지각으로 정당화할 것이다. (그렇지만 틀렸다.) 허나 우연치 않게 실제 헛간이 하나 있었다고 해보자. 그럼 다시 게티어 문제가 발생한다.

(5) 게티어 + X ; 2. 양상 논리적 접근
[경고 ; 역자가 양상 논리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틀린 번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5.1.) 세심함 조건 (Sensitivity)

세심함 조건이란 "인지자가 명제 A를 세심하다 믿는 경우는, iff A가 거짓일 경우 -> 인지자가 A를 믿지 않을 때이다."

이 조건을 추가하는 동기 중 하나는, 지식이 단지 참인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능성 중에서 참인 것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는 직관 때문이다.

이 세심함 조건은 앞서 본 오아시스 게티어 문제를 쉽게 해소한다. 왜냐하면, 설사 '물이 있다'가 거짓일지라도 -> 인지자는 신기루에 의해서, '물이 있다'를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유사-게티어 사례도 세심함 조건으로 해소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세심한 조건이 게티어 문제를 해소하는 경우는 A가 거짓일지라도, A를 믿는 경우뿐이기 때문이다.

(6) 게티어의 해체 ; 정당화 요건의 제거 - 자연주의
(7) 게티어의 해체 ; 지식은 분석 가능한가? - 덕 인식론
(8) 인식론적 운 (덕 인식론 2)
(9) 다른 방법론들
(10) 덕 인식론
(11) 지식 먼저
(12) 실용주의적 전환
(13) 맥락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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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믿음이 없지만 대답을 하였고 이를 맞췄다."라는 상태가 정확히 어떤 상태인가요? 답을 어림짐작으로 찍어서 맞췄다는 건가요?

파트 뒷 부분에 나오지만, 단순한 어림짐작이 아니라서 지식이지만, 인지자 자신은 그게 진짜 그렇지 확신하지 못하므로 온전히 믿지 못한다. 라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