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정치적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 변동에 대한 숙고와 가정」 (2)

정치적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에 대한 숙고와 가정(43-72)

4.

토의 정치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토의가 이루어지는 공론장에 경쟁하는 여론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미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여론의 토의 품질은 의견 형성 과정에서 정보 투입, 처리, 결과물이 각각이 맡은 기능적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여부에 따라 달려있다. 그리고 미디어는 ‘규제가 필요한 문제를 발견’, ‘그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투입’하는 역할을 하기에 결정적으로 토의 품질과 여론의 적절성을 결정한다. 이는 미디어가 의사소통에 대한 일종의 문지기 역할을 하여 ‘여론 형성의 포용성’과 ‘윤곽이 잡힌 의견의 합리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제공되지 않을 경우, 즉 만일 토의 품질과 적절한 여론 형성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여론은 효과적이지 못하고 정치적 퇴행이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통한 뉴미디어(특히 소셜 미디어)는 공론장의 평등주의적이고 보편주의적 요구를 만족하는 듯 보였지만, 문지기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토의 정치에 역효과를 내고 있다. 그러니까 뉴미디어 세계에서는 모든 이용자가 독립적이고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미디어 생산자가 되지만, 동시에 기존 미디어가 갖추고 있던 ‘저널리즘의 중재’, ‘프로그램의 설계’와 같은 생산적 역할이 제거되어, 의사소통 콘텐츠들은 책임 없이 선별되지 않고 유통된다. 이렇게 규제되지 않는 콘텐츠들은 정치 공동체에서의 정치적 의견 및 의사 형성에 대한 파편화 위험과 확산되나 서로를 사실상 차단한 채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회로로 응축되는 위험을 유발하기에 공론장의 의사소통적 맥락의 통합적 힘을 방해한다.

그렇기에 해방된 플랫폼을 제공하는 뉴미디어에 제약을 걸어 다시 문지기 역학을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대해 매체 이용자에 대한 권리 박탈이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이는 모든 국가 시민이 저마다 정치적 규제가 필요한 문제에 대해 스스로 판단을 내리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의사소통 형태를 갖추자는 요구일 뿐이다. 지금까지 올드미디어의 편집적 후견 덕에 소비자로서의 의식만 필요했다면, 이제는 저자로서의 적절한 역할 수행이 필요하기에 그에 대한 정치적으로 적절한 인식을 갖춰야 한다는 요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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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미디어 서비스에서 소셜 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유럽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다루기에 생략함. 약간은 다른 듯한 경향이 있지만.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얘기는 아님)

6.

뉴미디어를 활용하는 논리가 올드미디어에도 가해지면서 공적 공론장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변하고 있다. 뉴미디어가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플랫폼인 것과 같이 올드미디어도 광고매체로 이용됐지만, 독자들은 그것의 성과를 ‘콘텐츠의 형식과 내용이 인지적, 규범적, 또는 미학적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라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올드미디어는 이 인식적 기준에 따르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올드미디어는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해석의 핵심을 생성하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합리적으로 수용되도록 보장하는 매개 기관이었다. 하지만 발행 부수의 감소에 따른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뉴미디어와 달리 유료 제공인 탓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야 했으나 성공적으로 이뤄내지 못한 탓에 올드미디어는 편집 활동의 질과 범위의 면에서 저하됐다. 이에 더해 올드미디어도 인터넷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탈전문화 및 탈정치화되면서 미디어 편집실이 콘텐츠 조달, 편집, 배포를 제어하는 조정 센터로의 전락해 정치적 공론장에서 중요한 주제를 오락화 및 감정적 고발 및 개인화하는 경향을 취하게 됐다.

이러한 객관적 측면에서 나아가 미디어 수용자와 그와 변화된 수용 방식이라는 측면에 눈을 돌리면, 소셜 미디어가 이용자들의 정치적 공론장에 대한 인식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정치적 공론장은 시민들의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 사이의 구분에 기초하고 있다. 즉, 공적 관심사와 사적 관심사 사이에 간극이 존재해야만 공론장은 진리의 타당성에 대해 경쟁하는 주장들을 가능한 토의를 통해 해명하고 일반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포용적일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이 소셜 미디어를 배타적으로 사용할 경우,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변별성이 퇴색된다. 소셜 미디어는 ‘공동의 관심사가 될 자격이 있는 주제’와 ‘공동 관심사와 상이한 관심사에 대한 상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전문적으로 검토된 기사의 형식과 합리성’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러한 탓에 소셜 미디어는 공적 영역을 무화한다. 이렇게 소셜 미디어가 ①누구나 ‘즉흥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나 검토받지 않는 영역을 열고 ②정치인이 공론장에 개인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③자신 의견과 일치하지 않는 의견은 거부하고 동조하는 목소리는 여과되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는 길을 연다는 사실은 그것이 사실 반쪽짜리 공론장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변형된 공론장에서는 세계의 객관성과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되는 우리 세계의 정체성과 공통성이 존재하기 힘들다.


출처: 하버마스, 2024: 4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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