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석,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

오유석 (2016).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 『서양고대철학』, 제2권, 강상진 외. 길. 313-339.

무엇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입장을 가리키는 오늘날의 용어 ‘회의주의’와 달리, 고대의 회의주의자는 사물에 대한 모든 독단적 주장을 거부하고 모든 가능성이 소진될 때까지 탐구를 철저하게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보기에는 탐구를 완수하지 않은 채 확실한 지식에 다다랐다고 믿는 자들뿐만이 아니라, 탐구를 중도에 포기한 채 확실한 지식이 획득 불가능하다고 공언하는 자들 또한 독단주의자이다. 반면 회의주의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주장을 포함하여 그 어떤 독단적 주장도 거부한다.

1. 역사와 문헌

1) 아카데미아의 회의주의

회의주의가 단편적인 구절들이나 사고방식의 수준을 넘어 처음 본격적인 학파로서 등장하게 된 것은 아카데미아의 아르케실라오스에 이르러서였다. 이 회의주의는 플라톤 철학의 해석을 둘러싸고 발생했다. 그가 보기에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그 스스로 어떤 주장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독단적 주장을 논박하며, 철학적 탐구가 끝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알지 못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는 데에 있었다. 아르케실라오스는 주로 스토아 학파의 제논과 논쟁했는데, 양자 모두 진리에 대한 앎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스토아 학파는 이러한 앎을 스스로 발견했다고 주장한 반면, 아르케실라오스는 그러한 주장이 독단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아르케실라오스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제시되던 아카데미아 회의주의는, 마찬가지로 스토아 학파의 크뤼시포스와 주로 논쟁하던 카르네아데스에 의해 완성되었다. 카르네아데스의 가르침은 클리토마코스를 거쳐 라리사의 필론으로 이어진다. 필론은 이전까지 발전되어 온 회의주의 논증들을 견지하면서도, 파악 불가능(akatalepsia)과 판단 유보(epoche)의 개념을 거부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앎을 획득할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입장이 플라톤 이래 모든 아카데미아의 철학자들이 공유해왔던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안티오코스 등의 반발을 불러왔고, 안티오코스는 이에 반발해 사실상 구(舊)아카데미아의 스토아 철학으로 회귀한다.

2) 퓌론주의

안티오코스의 회귀를 기점으로 아이네시데모스는 아카데미아 학파를 벗어나 퓌론을 기원으로 하는 새로운 회의주의 전통을 확립했다. 퓌론에서 아이네시데모스로 이어지는 회의주의 논변들은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퓌론주의 개요』 제1권에 기술되어 전해진다. 『퓌론주의 개요』에 의하면 탐구자는 초두에 서술되었듯 탐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확실하고 최종적인 지식을 주장하는 자, 탐구 중간에 지식의 획득 불가능성을 공언하는 자, 끝으로 계속해서 탐구를 진행해나가는 자로 나뉜다. 첫째 입장은 (스토아 학파나 에피쿠로스 학파를 겨냥한 표현인) 독단주의, 둘째 입장은 아카데미아 회의주의, 셋째 입장은 진정한 회의주의인 퓌론주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퓌론주의 개요』에 서술되어 있는 대로 아카데미아 회의주의를 둘째 입장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아르케실라오스나 카르네아데스에 관한 기록들을 살펴봤을 때 이들이 탐구의 불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을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기 아카데미아 회의주의는 퓌론주의와 같은 입장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3) 텍스트

회의주의자들의 입장을 알 수 있는 텍스트들로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중 퓌론에 관한 장, 키케로가 저술한 『아카데미카』,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퓌론주의 개요』와 『독단주의자들에 대한 논박』이 전해진다.

2. 파악 불가능

파악 불가능(akatalepsia) 논변은 독단주의자들, 특히 파악적 표상(kataleptike phantasia)에 대한 스토아 학파의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구성된 논증이다. 에피쿠로스 학파가 모든 감각이 참이며 실재적이라는 주장을 내세운 반면, 스토아 학파는 참인 감각 표상과 거짓인 감각 표상이 있으며 그 중 참된 감각 표상으로부터 지식이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파악적 표상 내지 파악(katalepsis)은 참인 감각 표상과 거짓인 감각 표상을 식별하기 위해 제시되는 기준이다. 참된 감각 표상 내지 파악적 표상은 올바른 인과적인 연원을 지니기 때문에 명석 판명하다. 파악적 표상은 (1) 실재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고, (2) 실재 그 자체와 일치하게 각인되며 (3) 마음에 도장을 찍은 듯 각인되는 표상으로 정의된다.

이에 맞서 아르케실라오스는 참된 감각 표상과 거짓된 감각 표상이 사실상 구별 불가능하다고 반박한다. 참된 감각 표상과 외견상으로 똑같으면서도 거짓된 감각 표상이 존재한다면, 파악적 표상 개념은 참된 감각과 거짓된 감각을 구별할 기준이 되지 못한다.

제논은 회의주의 논변으로부터 파악적 표상 개념을 옹호하기 위해 파악적 표상이 (4) 비실재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는 조건을 위의 정의에 추가한다. 또한 스토아 학파는 파악적 표상이 거짓된 표상과 동일할 수 없으며 식별 가능하다는 주장을 편다.

이제 관건은, 파악적 표상과 외견상 동일하면서도 거짓된 표상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이다. 아르케실라오스가 정확히 어떤 예시를 들어 제논을 반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카데미카』와 『퓌론주의 개요』에 의하면 카르네아데스는 네 가지 예시를 든다. 환각(착란 속에서 사람을 착각하거나 헛것을 보는 등), 꿈, 착시, 감각의 한계(멀리 있는 사물이 정확히 보이지 않는 등)가 그 네 가지이다. 이 중 앞의 두 개는 인과적으로 비정상적인 연원을 지니고, 뒤의 두 개는 정상적인 인과적 연원을 지닌다. 따라서 이 네 개 사례는 거짓 감각 표상이 인과적 연원과 무관하게 발생하며, 파악적 표상과 구별될 수 없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참된 감각 표상과 거짓된 감각 표상의 구별 불가능성으로부터, 앎이 불가능하다는 단정적인 결론은 따라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제껏 검토된 앎들 중 모든 앎이 파악 불가능한 듯 보인다는 점이다. 회의주의자는 사물과 사태의 본성에 대해 여하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감각되고 표상되는 바만을 기술할 뿐이다. 그러므로 회의주의자는 “~이다”를 “~처럼 보이다”의 뜻으로 사용한다.

3. 판단 유보와 회의주의자의 믿음

아르케실라오스와 카르네아데스는 파악 불가능성에 관해서는 입장을 공유했으나, 판단 유보(epoche)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이는 두 철학자가 제시한 논증의 차이를 검토해봄으로써 알 수 있다. 먼저 아르케실라오스는 스토아 학파의 현자 개념을 겨냥하여 구성된다. 스토아 학파에 의하면, 현자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오류를 저지르지 않고, 억견을 지니지 않으며, 무지하지도 않다. 한편 현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으며, 다만 어떤 사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경우 판단을 유보한다. 여기서 아르케실라오스는 참된 표상과 거짓된 표상이 사실상 구별 불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해서 다음과 같은 판단 유보 논증을 편다.

(1) 현자는 억견을 갖지 않는다.
(2) 모든 참된 표상은 거짓된 표상과 구별 불가능하다.
(3) 따라서 현자가 무언가에 동의한다면, 그는 억견을 갖는다.
(4) 따라서 현자는 아무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스토아 학파는 표상의 인과적 연원에서 참된 표상과 거짓된 표상의 구별 가능성을 찾지만, 아르케실라오스는 모든 표상의 인과적 연원을 일일이 추적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 우리는 우리의 표상들만을 가지고 표상들을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이유에서 파악적 표상은 거짓된 표상과 구별될 수 없으며,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현자는 모든 것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한편 카르네아데스는 다음과 같은 변형된 논증을 제시한다.

(1) 모든 참된 표상은 거짓된 표상과 구별 불가능하다.
(2) 따라서 현자가 무언가에 동의한다면, 그는 억견을 갖는다.
(3) 따라서 현자는 억견을 갖는다.

아르케실라오스와 달리 카르네아데스는 현자가 억견,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럴듯한 표상을 지니며 그에 따라 행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카르네아데스가 이런 식의 논변을 제시한 이유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제시되었다. 먼저 클리토마코스에 의하면 카르네아데스의 논증은 철저히 스토아 학파에 대한 대인(ad hominem) 논증으로서 변증적인 의도를 지닌다. 아르케실라오스와 카르네아데스는 종합적으로 다음을 논증하고 있다. 스토아 학파가 주장하는 파악적 표상은 그 존재가 확실하지 않다. 그러므로 스토아 학파의 현자는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않거나, 오류 가능한 억견을 지녀야 한다.

한편 필론과 메트로도로스는 카르네아데스의 논증을 스토아 학파의 행동 불가 논증에 대한 답변으로 이해한다. 행동 불가 논증은 아르케실라오스를 위시한 아카데미아 회의주의를 논박하기 위해 스토아 학파에서 제시된 논증인데, 이 논증은 다음과 같다. 행위는 믿음을 요구한다. 믿음이란 외부 대상에 대한 믿음이다. 그런데 회의주의자들은 외부 대상에 대한 어떤 믿음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의주의자들에게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어떤 행위도 가능하지 않다. 또 스토아 학파는 회의주의에 대해 다음처럼 반박한다. 모든 대상의 인식 불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모든 대상이 인식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다.

두 번째 해석에 따르면, 카르네아데스의 논증은 이러한 반박을 재반박하기 위해 제시되었다. 모든 대상이 인식 불가능하다는 말은 인식이 아니라 억견이다. 그리고 모든 감각 표상이 오류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럴듯한 감각 표상과 불명확한 감각 표상이 나뉜다. 우리는 확실한 인식을 얻지는 않지만 억견들을 지니며, 그 중 그럴듯한 억견에 따라 행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때 카르네아데스의 논증에 등장하는 현자는 스토아의 현자가 아닌 회의주의 현자인 셈이다.

회의주의자의 믿음은 스토아 학파의 인식 혹은 파악과 어떻게 다른가? 회의주의자는 대상들이 나에게 이러저러하게 감각되고 표상된다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독단주의자가 그로부터 대상이 실재적으로 이러저러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는 반면, 회의주의자는 그저 대상들이 이러저러하게 보이고 느껴진다는 점만을 기술할 뿐 외부 대상에 대한 확언을 내놓지 않는다.

무언가가 참이나 거짓이라고 단언하지 않더라도, 그럴듯한 믿음에 따르고 그렇지 않은 믿음을 멀리함으로써 우리는 충분히 일상 속에서 행위할 수 있다. 회의주의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믿음이 확실하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 예컨대 나는 내가 요리를 하지 않을 때 항상 가스 불을 잠가둔다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서기 전에 밸브를 잠갔는지 한 번 확인한다.

나아가 회의주의자는 독단적 판단을 거둠으로써 외부 대상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며, 이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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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분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퓌론주의 개요』를 번역하신 선생님이시죠! 같은 '유석'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스토아 논리학자 크리시포스의 선언적 삼단논법에 얽힌 사냥개 일화를 찾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담긴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텍스트 원문이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덕분에 수월하게 인용할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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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에 회의주의, 특히 피론주의 개요를 열심히 읽었었는데 재미있는 주제들이 포진해있는 사상인 것 같습니다.

특히 피론주의자의 믿음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에는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있더군요.

피론의 사상을 전해준 섹스투스 본인이 스토아 학파의 비판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것들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한 것 같습니다.
본인이 <<수학자들의 관하여>>(본문에 언급된 독단주의자들에 대한 논박의 일부)에서 밝히는 바, “회의주의자가 비활동성(inactivity)이나 비일관성(inconsistency)의 곤경에 처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경멸할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이 비판은 스토아 학파의 것이기도 하고, 후대의 흄의 비판이기도 합니다.

섹스투스는 피론주의자들이 현상(phainomenon)에 의한 행동은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행위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하는데,

  1. 자연의 인도
  2. 느낌(pathos)의 강제
  3. 법률과 관습의 전통(paradosis)
  4. 전문 기술의 교육(didakalia)
    입니다.
    스토아 학파에서 (아마도..?) 행위를 주체의 결단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본 반면, 피론주의자들은 행위 자체가 주어진 조건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으로 본 듯합니다.

이 부분이

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피론주의자가 과연 믿음을 갖는지, 갖지 않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현대적 논의는 Frede가 처음 시작한 것 같습니다. 프레데에 따르면 회의주의자도 믿음을 가집니다. 1979년 논문 “Des Skeptikers Meinungen” (영역 The Skeptic’s Beliefs)에서 행위불가 반론이 피론주의자들이 믿음 없이는 행위할 수 없다는 공격이므로, 믿음에 대한 피론주의자의 견해를 조사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두 믿음을 구분하는데,
[불분명한 학문적 탐구의 대상에 대한 동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피론주의자에게 금지되지만, 그렇지 않은 믿음(일상적인 믿음)은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즈는 프레데식 해석을 도시 회의주의(urbane pyrrhonism)으로, 두 믿음 모두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시골 회의주의(rustic pyrrhonism)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반즈의 구분에서 시골 피론주의는 성공적이지 못한데, 철학적 탐구를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설명이 옳다면, 본문에 언급된 것처럼 탐구를 지속하는 회의주의자 상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Barnes(1982, The beliefs of a pyrrhonist)에서는 프레데의 믿음 구분을 비판하면서,이 구분을 다른 명제 태도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1. 수동적으로 갖게되는 동의, 묵인(acquiescence),
  2. 능동적으로 형성하는 동의, 가질수도 있고 가지지 않을 수도 있는 믿음
    입니다.
    그래서 피론주의자에게 믿음은 없습니다. 행위들은 수동적으로 갖는 동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두적인 작업과 관련해서, perin 등의 철학자가 일종의 인식적 상승을 이용한 다른 이론들을 펼치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피론주의는 근대철학을 연구하시는 분들도 재미있게 읽어볼 주제인 것 같습니다. 1562년 섹스투스의 피론주의 개요가 스테파노스에 의해 편집된 이후로, 데카르트를 효시로 하는 근대철학자들의 주적처럼 피론이 다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황설중 선생님의 책이 이 주제를 광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흄과의 연관성을 흥미있게 탐구하고 있는데, 다음 책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고대 회의주의에 흥미가 있어서 주저리 주저리 공부하고 있는 부분을 가볍게 정리해봤습니다~ 틀린 점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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