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베수비오 화산 폭발으로 묻혔던 한 두루마리에서 새로운 에피쿠로스주의 문헌이 해독이 된 모양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헤르쿨라네움에서 출토된 한 두루마리를 누가 잘 해독하나 벌인 Vesuvius Challenge 2023에서 승자가 발표되었습니다. 사실 양이 많은 건 아니고, 약 500자 정도를 누가 잘 번역하는지 대회였던 것 같은데요. 꽁꽁 싸매진채로 수 천년간 탄화되었던 파피루스 두루미를 CT 스캔한 데이터를 갖고 해독을 하는 과정을 보면 '공학 만세!'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이 링크에 애니메이션으로 어떻게 스크롤이 탄화되었는지 잘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철학하는 입장에선 '그 두루마리에 무슨 내용이 담겨있냐?'가 중요할텐데요. 위 링크에 현재까지 이루어진 재구도 일단 포함이 되어있는데요. 아마도 어느 에피쿠로스주의자가 음악과 관련된 쾌락에 대해서 쓴 것은 확실하다는 것 같습니다. 다만 주최자들은 "우리가 해독해낸 이 첫 문헌은 어쩌면 그냥 2000년 따리 블로그 포스트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가 언급하기도 하네요
다만 역시나 흥미로운 점은 이 두루마리의 저자로 추측되는 인물이 가다라의 필로데모스라는 점인데요. 키케로와 엮이는 등 당대 로마 및 현 나폴리 쪽에서는 분명 명사였던 모양이지만, 사실 BC 1세기 당대 기준으로도 철학적으로는 좀 '뒤쳐져' 있었고, 에피쿠로스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딱히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링크된 SEP 항목에서 언급되다시피, 필로데모스의 문헌이 화산재에 묻혀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베수비오 폭발 시점에는 그냥 아무도 관심없던 어디 수장고에 방치되어버린 덕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얘기를 보면 참 애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근현대에 필로데모스가 엄청난 연구의 대상이 되는걸 보면, 역시 이 승부는 살아남은 그의 승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