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현대 인식론』, 제3장 요약

제3장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

이 장에서도 게티어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경향을 살펴본다. 이 경향은 우연적 참의 배제라는 교훈을 직관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향을 따르는 이론들은 단순히 게티어 문제의 해결을 넘어, 지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는 의의를 가진다.

사실 P가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내가 믿음 P를 가진다고 하자. 이 경우, 사실 P가 참이라고 하면 믿음 P는 우연적으로 참이다. 반면, 사실 P가 참일 때는 P를 믿지만, 사실 P가 거짓일 때는 P를 믿지 않는다고 하자. 이와 같이 믿음 P가 사실 P에 공변하는 방식으로 형성될 경우, P가 참이라고 하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 믿음이 우연적으로 참일 경우 지식이 아니라는 견해와, 우연적 참의 여부는 믿음이 사실에 공변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면, 'S가 P를 안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1) S가 P를 믿는다.

(2) P가 참이다.

(3-1) 만약 P가 참이 아니라면, S는 P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3-2) 만약 P가 참이라면, S는 P라고 믿을 것이다.[1]

특히 (3-1)가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므로 이 조건을 (C)라고 부르자. (C)가 어떻게 우연적 참을 배제하는지 생각해보자. (C)가 위배되는 경우, P가 참이 아니더라도 여전히 S는 P라고 믿을 것이다. 이때 S가 P를 믿음은 P에 의해서가 아니라 P가 아닌 다른 사실에 의할 것이다. P가 아닌 다른 사실에 의해서 S가 P를 믿는데, 마침 P가 참이라면 그것은 우연이다. 따라서 (C)에 위배되는 참인 믿음은 우연적으로 참이다.

(C)를 통해 2장에서 살펴본 여러 예시가 설명된다. 명희의 경우, 그녀가 본 기와집이 실제로 기와집이 아니라 모조품이었더라도 그것이 기와집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따라서 (C)에 위배되므로 명희의 믿음은 지식이 아니다. 반면, 명희와 달리 기와집들로만 구성된 지역을 지나면서 자신이 본 건축물이 기와집이라고 믿는 것은 지식이다. 그 건축물이 기와집이 아니라면, 예컨대 논이나 밭일 것이고, 그럴 경우에는 그 건축물이 기와집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2]

가정법적 조건문과 우연의 배제

이 장에서 알아볼 이론들은 겉으로는 달라 보일지라도 동류의 이론으로 분류된다. 이들 이론의 핵심에 (C)가 자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이론들을 이해하기 이전에 (C)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C)는 조건문이고, 조건문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먼저 조건문의 유형을 살핀 뒤 (C)가 어떤 유형의 조건문인지 알아야 한다.

모든 조건문은 "만약 A이면 B이다"라는 형식을 갖는다. 여기서 A는 조건문의 전건antecedent, B는 후건consequent이라 부른다. 조건문은 전건이 참이면서 후건이 거짓인 반증사례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반증사례가 없다고 주장되는 세계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서 조건문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A. 실연적 조건문material conditional

B. 가정법적 조건문subjunctive conditional 혹은 반사실적 조건문counterfactual conditional[3]

C. 엄격한 조건문strict conditional

실연적 조건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없음을 주장한다. 반면 엄격한 조건문은 모든 논리적으로 가능한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없음을 주장한다. 전자는 단순히 실제 세계에서 전건이 거짓이거나 후건이 참이면 성립하는 조건문이므로, 전건과 후건 간의 논리적 필연성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자의 조건문은 모든 가능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없음을 주장하므로, 전건과 후건 간의 논리적 필연성을 함축한다.

그런데 조건문 중에서는 그것이 참이 되기 위하여 현실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가능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없지는 않은 경우가 있다. 가정법적 조건문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조건문의 경우, 반증사례를 배제하는 범위를 현실 세계는 포함하지만 모든 가능 세계를 포함하진 않는 적절한 범위로 설정하면 될 것이다. 이러한 고찰을 발전시켜 데이빗 루이스D. Lewis는, 가정법적 조건문이 현실 세계에 최근접한 가능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존재하지 않음을 주장한다고 해석한다. 우리는 이러한 해석을 따르기로 하자.

그림 3.1. 가정법적 조건문의 집합적 이해

**그림 3.1.**에서 점 A는 현실 세계, 원 S는 현실 세계에 최근접한 가능 세계들의 집합, 원 M은 조건문의 전건이 항상 참인 가능 세계들의 집합, 원 P는 후건이 항상 참인 가능 세계들의 집합을 나타낸다. 점 B는 현실 세계에 최근접하면서도 전건은 항상 참이되 후건이 거짓인 경우가 있는 가능 세계이므로, 가정법적 조건문의 반증사례를 포함하는 가능 세계이다. 따라서 B와 같은 가능 세계가 존재할 경우 가정법적 조건문은 거짓이 된다.[4] 반면 점 W는 전건이 항상 참이며 후건이 거짓인 경우가 있는 가능 세계이지만, 현실 세계에 최근접하지 않으므로 가정법적 조건문의 진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이때 현실 세계에 최근접한 가능 세계란, 현실 세계와의 유사성이 높은 가능 세계를 말한다. 즉 현실 세계의 중요한 측면들은 그대로 유지한 채, 조건문의 전건이 참이라는 점만 도입하여 얻어지는 가능 세계를 의미한다.[5]

가정법적 조건문은 모든 가능 세계에서 반증사례가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므로, 논리적 필연성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 세계와 최근접한 가능 세계 내에서는 전건과 후건 사이에 어떤 필연성이 있는 것 같다. 그러한 가능 세계들 안에서는 전건이 참이라면 후건도 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필연성을 상황 내적 필연성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관심하는 (C)는 바로 가정법적 조건문에 속하고, 따라서 한 명제를 믿는 사실과 그 명제가 참됨 사이의 상황 내적 필연성을 함축한다. 즉 (C)에 의하면, S가 P라고 믿는 그러한 실제적 상황에서, P가 거짓이라면 S는 P라고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상황에서 S가 P라고 믿는다면 P는 참일 수밖에 없고, 그 참됨은 필연적이기에 우연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

(C)를 지식 분석의 핵심으로 하는 다양한 이론들은 흔히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Reliable Indicator Theory of Knowledge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신빙성 있는 지표란 무엇인가?

A가 B를 위한 신빙성 있는 지표라 함은 A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B가 존재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됨을 의미한다. 즉, B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A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A는 B를 위한 신빙성 있는 지표라고 한다. 반대로, B가 없어도 A가 존재할 수 있다면, A는 B를 위한 신빙성 있는 지표가 되지 못한다.[6]

주의해야 할 점은, 신빙성 있는 지표 관계란 인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사실적 관계라는 것이다. 즉 A가 B를 위한 신빙성 있는 지표라는 것은, A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B라고 믿을 만한 증거라는 것과는 독립적으로 성립한다.

(C)를 신빙성 있는 지표 개념을 통해 분석해보자. (C)란, 만약 P가 참이 아니라면 S가 P를 믿지 않는다는 조건문이고, 이것이 성립한다면, S가 P를 믿음은 P가 참임을 나타내는 신빙성 있는 지표가 된다. 또한 (C)의 전건과 후건의 관계도 사실적 관계이지 인식적인 관계가 아니며, 따라서 S가 P를 믿는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P가 참이라고 믿을 만한 증거일 필요는 없다.

  1. 암스트롱: 믿음과 사실 사이의 합법칙적 함축 관계

암스트롱에 따르면, 한 인식 체계가 산출한 믿음이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인식 체계가 그 믿음을 가질 경우에 그 믿음의 내용을 이루는 사실이 존재함을 자연의 법칙이 보장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믿음의 행위가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을 합법칙적으로 함축하여야만 그 믿음은 지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암스트롱은 한 믿음이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에 대한 신빙성 있는 지표여야만 그 믿음은 지식이 될 수 있다고 하며, 그러한 신빙성 있는 관계는 자연의 법칙에 의한다고 보았다.

위의 견해를 반영하여 암스트롱은 감각 경험을 입력으로 받아들여 믿음을 산출하는 지각적 믿음을 비추론적 믿음이라고 부르면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P에 대한 A의 비추론적 믿음은 다음의 경우 오직 그때에만 비추론적 지식이다:

(i) 사실 P이다.

(ii) A에 대한 특정한 서술이 있어서, 만약 누구든지 그런 서술을 만족하고 그가 더 나아가 P라고 믿는다면, P는 참이다.[7][8]

  1. 노직과 드레츠키: 가정법적 조건의 관계

노직과 드레츠키는 지식 분석의 요점으로 (C)의 가정법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만, 그들은 다음과 같은 차이를 갖는다: 노직은 가정법적 관계가 믿음과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 사이에서 성립한다고 보았지만, 드레츠키는 그 관계가 한 믿음의 증거와 그 믿음을 참이게 하는 사실 사이에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노직과 드레츠키는 각각 다음과 같이 지식의 필요조건을 제시한다:

(N) P가 거짓이라면, S는 P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D) S가 R이라는 증거에 의하여 P라고 믿을 때, P가 거짓이라면, S는 R을 갖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N)은 다음 예시에 의하여 적절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길수는 어려서부터 치와와와 친숙하여, 치와와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그것이 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치와와를 길수가 볼 때 갖는 특징적인 경험들은 '작다', '털이 짧다' 등을 포함한다. 이 경험을 R이라 하자. 한편, 길수는 셰퍼드에 대해 털이 길고 덩치가 큰 개라는 피상적인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고, 늑대에 때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그래서 길수는 늑대를 보면 그것이 셰퍼드라고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이제, 이러한 길수가 치와와 여러 마리와 늑대 여러 마리를 함께 기르는 어떤 집을 방문하여 치와와를 보고서 자신이 개를 보고 있다고 믿는다."

길수의 믿음은 지식임에 틀림없다. 길수는 치와와를 보고 그것이 개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능력에 의해 치와와를 보고 그것이 개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길수의 믿음은 (D)는 만족하지만, (N)을 만족하지 않는다. 길수가 개를 보지 않았다면, 그는 늑대를 보았을 것이고, 이 경험은 R이 아닌 다른 경험이다. 그러므로 길수의 믿음은 (D)를 만족한다. 반면, 길수는 늑대를 보더라도 여전히 개를 보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즉 길수의 믿음은 (N)에 위배된다.[9]

길수의 사례를 일반적으로 표현해보자. M이라는 인식 과정이 S로 하여금 P를 믿게 하고, M은 P가 거짓이라면 S로 하여금 P를 믿게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런데 주어진 상황에서 P가 거짓일 경우, M이 아니라 M이라는 인식 과정이 S로 하여금 P를 믿게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P가 거짓일지라도 S는 P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M에 의하여 산출된 믿음 P가 우연적으로 참임을 보일 뿐, M에 의하여 산출된 믿음 P가 우연적으로 참임을 보이진 않는다.

이상의 고찰에 의하면, 같은 믿음도 그것이 어떤 인식 방법에 의한 것인지에 따라 지식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믿음과 사실 간의 신빙성 있는 지표 관계로 우연적 참을 배제하려 할 경우, 믿음을 산출하는 인식 방법을 고려해야만 한다.

  1. 골드만: 적절한 대안의 부재

A가 B의 대안이라는 것은, A와 B가 동시에 참일 수 없으며 나아가 관련된 인식 방법 M에 대하여 양자가 동등한 입력을 산출함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그 대안이 근접한 가능성으로 주어졌을 때 그것을 적절한 대안이라고 한다. 골드만에 의하면, M에 의하여 얻어진 S의 믿음 P가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S의 주어진 상황에서 M이 P의 적절한 대안을 P로부터 분별해야 한다. M이 그를 분별하지 못하고, P가 거짓임에도 적절한 대안에 의해 믿음 P를 산출한다면 그것은 지식이 아니다.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과 그 함축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은 조건문 (C)를 그들 이론의 핵심에 두고 있으며, 이 신빙성 있는 지표 관계는 인지 과정에 상대화되어야 함을 알아보았다. 이를 정의의 형식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S는 다음의 경우 오직 그때에만 M의 인지 과정을 통해 P를 안다:

(1) S는 M을 통하여 P라고 믿는다.

(2) P가 참이다.

(3) P가 거짓이었더라면, S는 M을 통하여 P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10]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은 단순히 게티어 문제의 해결 그 이상의 의의를 지닌다. (3)에 의하면 한 믿음이 지식이 되는지 여부는 인지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에 의하여, 마치 함수처럼, 결정된다. 이러한 기계론적 지식관은 전통적 인식론과 대비되는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갖는다.

첫째, 기계론적 지식관은 현대 인식론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자연화된 인식론을 옹호하는 결과를 낳는다.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에 의하면, 인지 과정의 작동 방식에 의하여 한 믿음의 지식 여부가 결정된다. 따라서 인식론은 인지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관한 경험과학적 탐구와 긴밀히 연관되고, 이는 자연화된 인식론의 견해와 같다. 반면 전통적 인식론은, 자연화된 인식론과 반대로, 인식론과 경험과학의 연속성을 부정한다.

나아가 기계론적 지식관은 자연화된 인식론의 논의를 확장하기도 한다. 기존의 자연화된 인식론은 인식정당성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기계론적 지식관의 조건 (C)는 인식정당성과 무관하기 때문에, 자연화된 인식론의 탐구 영역이 인식정당성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둘째, 이들 이론은 지식의 분석에 인식정당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정말로 한 믿음이 지식인지의 여부가 그 믿음이 적절한 근거에 뒷받침되었는지와는 상관 없이 그 믿음이 적절한 인지 과정을 통하여 산출되었는지에만 의하여 결정된다고 주장한 것이라면, 신빙성 있는 지표 이론은 더욱 기계론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인식정당성을 지식의 분석에서 추방할 수는 없다. 다음 예를 보라:

"한 사람이 해질녘 들판을 지난다. 주변이 어두워서 멀리 보이는 사물들의 크기 정도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사물의 형태는 전혀 분간할 수 없다. 더욱이 그는 이 지역에 초행이어서 주변에 어떤 사물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판단할 만한 아무런 별도의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약 10미터 정도의 높이를 지닌 듯이 보이는 한 사물이 멀리서부터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그 사물을 보고서 그것이 나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 사물은 실제로 나무였다."

이 사례의 믿음은 분명 지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믿음은 참이고, 만약 이 믿음이 거짓이었다면 그러한 믿음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가 본 사물이 나무가 아니었더라면, 그것은 평원이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는 10미터 가량의 사물을 보고 인식하는 방식으로는 그것이 나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11]

이 믿음이 지식이 아닌 이유는, 그가 그의 믿음에 대한 합당한 증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식정당성을 추가하면 다음과 같은 지식의 정의가 주어진다.

S는 다음의 경우 오직 그때에만 M의 인지 과정을 통해 P를 안다:

(1) S는 M을 통하여 P라고 믿는다.

(2) P가 참이다.

(3) P가 거짓이었더라면, S는 M을 통하여 P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4) 믿음 P가 S에게 인식적으로 정당하다.


[1] 인식정당성 조건이 없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 장 후반부에 다시 다룬다.

[2] 후자의 경우, 보인 건축물이 기와집이 아니라고 할 때 그것이 모조품이라고는 가정하지 않는다. 후자는 인식적으로 위험한 상황이 아니므로 그 건축물을 모조품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C)에서 P가 참이 아닌 경우는 현실 세계에 최근접한 가능 세계들에 한하여 고려한다. 자세한 논의는 아래의 가정법적 조건문을 참고하라.

[3] 정확히 말하자면, 반사실적 조건문은 가정법적 조건문이면서 전건의 내용이 실제 세계에서 거짓인 특수한 경우이다.

[4] 주의해야 할 점은 B와 같은 가능 세계가 없더라도 가정법적 조건문의 참이 보장되진 않는다는 것이다. 점 A와 같이 S에는 속하지만, M과 P에는 속하지 않는 가능 세계 C를 상정해보라. C에서는 조건문의 전건이 거짓인 경우와 후건이 거짓인 경우를 모두 포함한다. 이때 '거짓인 경우'가 있음은 항상 거짓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C는 조건문의 전건이 참이면서 동시에 후건이 거짓인 경우, 즉 반증사례를 포함할 수 있으며, 그러할 때 가정법적 조건문은 거짓이 된다.

[5] 한 가능세계가 현실 세계에 최근접한 가능 세계인지의 여부가 현실 세계와의 유사성으로 결정된다면, 현실 세계와의 유사성을 측정할 수 있는 객관적 척도가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척도가 존재하는지의 여부가 불분명하다.

[6] A가 B를 위한 신빙성 있는 지표라는 것이, A가 B의 충분조건이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양자 간의 차이가 없다면 새로이 신빙성 있는 지표라는 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조건이라는 용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여기에서 제시되는 이론들이 충분조건이라는 용어가 정립되기 이전에 등장했기 때문에 이전 시대의 용어를 사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두 용어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차이인지 궁금하다.

[7] 여기서 '특정한 서술'은, A가 포함된 지각 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조건에 대한 기술을 포함한다.

[8] 이를 형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i) P

(ii) (∃H)[Ha & 자연 내에 다음과 같은 합법칙적 연관이 있다: (x) 만약 Hx라면, (만약 BxP라면, P이다)].

[9] 이에 대하여 노직은 다음과 같이 조건을 수정한다.

(N*) S가 M의 방법을 통하여 P를 알기 위해서는, 만약 P가 참이 아니고 M의 방법을 사용한다면, S는 P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10] 조건 (3-2)이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11] 그가 본 사물이 나무가 아니라 평원임은 현실 세계에 최근접한 가능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실제로 10미터 가량의 사물을 보았고, 현실 세계와 유사성이 높기 위해선 그의 경험이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분석은 다음과 같다: 만약 그 사물이 나무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예컨대 가로등이었다고 하자면, 그것을 10미터 가량의 어떤 것으로 인지하고는 이 사례에서 쓰인 동일한 인지 과정에 의해 자신이 나무를 보고 있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조건 (3)에 위배되므로 이 경우는 지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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