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홀게이트의 정신현상학 입문서를 읽다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혼자서 읽다 보니 기초적인 부분에서도 계속 막히게 되네요ㅠ 답변 달아주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홀게이트의 『헤겔의 『정신현상학』 입문』 2장 2절 의식의 경험 부분을 읽는데 설명이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지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대상 자체도 지에 대해 변경된다. 왜냐하면 앞서 존재했던 지는 본질적으로 대상에 대한 지였기 때문이다. 지가 변하면서, 대상도 변한다. 왜냐하면 대상은 본질적으로 이 지에 속했기 때문이다.”(홀게이트, 본문, 42쪽.)
헤겔의 이 주장을 홀게이트는 다음과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의식이 대상과 동렬에 있도록 자신의 지를 되돌려야 할 것 같다는 의미의 변경이 아니라, 이를 통해 지가 먼저 대상에 관한 최초의 개념과 달라지게 되는 바의 변경을 가리킨다. (……) 헤겔의 논증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 나는 대상을 X로 간주한다. 2) 나는 대상이 Y임을 알게 된다. 3) 따라서 나의 지는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다. 4) 그러므로 나는 나의 지가 대상과 일치하도록 나의 지를 변경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그 대상을 X로 인식한 것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5) 하지만 나는 대상에 관한 그와 같은 최초의 견해로 되돌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자리 잡은 나의 지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대상 자체가 나의 눈에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대상은 단순히 X가 아닌 Y로 입증되었다. 6) 대상에 대한 이러한 변경은 돌이킬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대상에 대해 갖게 된 지는 대상에 대한 틀린 지(知)가 아니라 참다운 지이기 때문이다.”(같은 책, 43쪽.)
그리고 나서 홀게이트는 이러한 참다운 인식의 과정을 ‘일상에서의 자기 교정’과 비교합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이 다람쥐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상 그것은 작은 고양이임을 발견한다. 그 경우, 우리의 이해는 변경되는데, 우리는 하나의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교체하게 때문이다. 대상이 고양이라는 우리의 자각은 그것이 다람쥐라는 최초의 생각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다. 반면 『정신현상학』에서 기술된 과정은 다르다. 하나의 대상이 다른 대상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초에 받아들인 대상이 저 홀로 최초에 받아들인 것과 다른 것으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대상은 최초에 X로 간주된다. 엄밀히 말해 X로 인식된다고 할 때, 그것은 X(혹은 단순히 X)가 아니라, Y로 입증된 것이다. 이것이 헤겔이 기술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변증법적인 요소이다. 대상은 단순히 그것이라는 것에서 그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난다.”(같은 책, 44쪽)
궁금한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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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에 대한 앎, 지를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그리고 ‘의식’의 관점에서 ‘인식’이란, 우리 의식 바깥의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대상’과 이 ‘대상에 대한 앎(개념)’을 맞추어보는(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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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홀게이트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이해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어떤 ‘대상’을 보고 ‘저 대상은 X다’라는 ‘개념’을 가졌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 대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X가 아니라 Y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때 ‘변경’은 Y라는 대상에 맞추어 새로운 개념(‘저 대상은 Y다’)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Y를 인식하는 순간 최초의 판단(‘저 대상은 X다’)이 자동적으로 올바른 판단(‘저 대상은 Y다’)으로 바뀌는 것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나의 개념은 저 대상(X로 보였던 Y)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짧은 식견에서 홀게이트와 헤겔이 강조하는 바는 다음처럼 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식 과정(대상과 개념의 대조)은, 퍼즐맞추기 놀이를 할 때 퍼즐 조각(개념)과 퍼즐판의 빈 칸(대상)을 맞춰보듯이 따로 존재하는 두 대상을 맞추어보는 과정이 아닙니다. 개념과 대상은 처음부터 하나였기에 이러한 변경은 자동으로 일어납니다(여기에 대한 적절한 비유를 들지 못하겠네요.) 그리고 참다운 인식(X가 사실은 Y임을 깨달음)에 도달하면 이전의 상태로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치 착시현상 때문에 이상하게 보이던 그림의 진실을 깨닫자마자 다시는 최초의 그 착시상태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것과 유사합니다. -
이런 식의 주장이 가능한 이유는 ‘개념’과 ‘대상’ 모두 사실은 우리의 ‘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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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 3번이 맞다면, 의아한 점이 생깁니다. 철학자의 관점이 아닌, 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대상’은 의식에 대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의식의 논리를 따라가면서 의식이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지 내재적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는데, 막상 여기서는 철학자의 관점, 그러니까 ‘대상’을 우리 의식 바깥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이미 우리 의식 안에 존재하는 무언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요?
너무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한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철학 문외한의 질문이라고 생각하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