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와 종교의 존재

자유의지와 종교에서의 초월자에 대한 신자의 염원(기도)에 대한 글입니다
최근에 기독교와 종교에 대하여 탐구하고 있으며 이는 그 중 일부입니다.
모든 답변은 환영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자유의지[3]-종교일반 에서 '인간이 창조될 때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였다는 의지'라고 정의됩니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다수의 종교에서는 해당 종교의 영적 존재(초월자) 에게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답을 구하고자 하거나, 자신의 소망을 토로하고, 혹은 영적 존재와 더욱 가까워짐으로써 자신의 영적 지위를 높이고자 합니다. 이 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답을 구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이러한 행위는 곧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질문인데, 만약 신이 전지전능하기에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이는 역설적으로 신이 인간에게 준 자유의지와 부합되기 어렵다고 보입니다. 자유의지는 분명히 '스스로 생각(판단) 할 수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이를 일반화 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됩니다.
가정 1 우리가 기도할 때 미래를 전제로 기도한다
가정 2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면 미래는 아직 정의(fixed) 되지 않았다.
가정 3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 지 안다.
결론 인간의 자유의지가 행하는 모든 것은 신이 계획한 미래와 정확히 일치함으로 이는 신이 예상한 바와 같다.
의문 만약 자유의지가 행하는 바가 신이 계획한 바와 같다면 -> 자유의지가 없으며 고정된 미래(운명)가 존재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참고한 자료https://m.youtube.com/shorts/f0BtNtDb7Fw
https://brunch.co.kr/@ka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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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네요. 안 그래도 요즘 결정론과 영원주의 (eternalism)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아직 많이 생각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단 댓글 달고 다음 논의들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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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논의가 많이 된 주제입니다. SEP의 "Foreknowledge and Free Will" 항목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free-will-fore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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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영역에서 철학적인 글을 쓸 때 그 전제로
‘사전’적 정의를 사용하는 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저희 교수님께선 강하게 말해 사전적 정의는 아예 쓰지도
보지도 말라고 하셨을 정도로요. 본인의 정의에 대한 직관
과 사전적 정의가 뒤섞일 위험도 있고요.

굳이 어렵게 사전적 정의를 이용하지 않고 본인이 갖고 있는
‘상식’을 명확히 밝히고 그것을 전제로 글을 써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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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배경에 놓여 있는 몇 가지 핵심 전제들에 문제가 있습니다.

(1)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우선 @lazy 님이 잘 지적하신대로, 철학적 논의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를 끌어들이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지고 있는 통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분야이지, 그 통념들을 당연하게 전제하고서 출발하는 분야가 아니니까요. 즉,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가 철학적 사유에 의해 검토되어야 하는 것이지, 철학적 사유가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의해 검토되거나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기도?

'종교' (혹은 더 세부적으로 '기독교')라는 주제를 어떤 층위에서 바라보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도에 대한 이런 관점은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평신도들의 일상적인 종교 생활에 한정해서 기도를 기술하신 것이라면 위의 관점도 아주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대부분의 종교 전통은 자신들의 전통에 대한 학문적 고찰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대해서도 평신도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통념과 신학자들(혹은 종교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개념은 크게 다릅니다. 마치 일상인들이 떠올리는 '철학'에 대한 통념과 실제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떠올리는 '철학'에 대한 개념이 크게 다른 것처럼요. 특별히, 기독교 전통에서 기도는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길 구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구하는 행위이다 보니, 고민하고 계신 자유의지의 문제와는 애초에 맥락이 많이 다릅니다.

(3) 신은 전지전능하기에 미래를 알 수 있다?

신이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않는 기독교 신학자나 철학자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가령, 20세기 후반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거장들인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나 위르겐 몰트만 같은 인물들은 하나님에게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프로테스탄트 철학자들 중에서도 존 카푸토 같은 인물들은 '신'과 '기도'라는 상징이야말로 미래의 가능성이 우리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상징이라고 강조하죠. 즉, 이 인물들은 모두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미래에 대한 '희망', '가능성', '결정불가능성', '열려 있음'이라고 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이 아주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같은 종교 전통 내부에서도 신학적으로 대단히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념에 근거한 왜곡된 종교관 위에 허수아비 논증을 성립시키기 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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