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을 나누는 여러 명칭에 대한 간략한 해설

(1)

이슬람 "철학"을 공부하다보면, 여러 가지 명칭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슬람에 조금 관심을 가진다면 누구나 알 법한) 수니/시아라는 구분부터, 하나피/한발리 같은 "법학파"라는 구분, 철학책을 보면 등장하는 무타질라하는 학파에, 도대체 이 이름 무더기 어디에 넣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수피즘이라는 것까지....

보다보면 어지럽고, 깔끔하게 구분된 책도 별로 없어서 영...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냥 제가 공부한 바를 짧게정리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2)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슬람에서는 "철학"(philosophy)에 상응하는 학문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건 서양을 제외한 모든 문화권에서 마찬가지이지요.) 이는 철학에 해당하는 인식론/윤리학/형이상학/심리철학적 논의들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러한 논의들이 "신학적", "법학적", "수피즘적" 논의라는 (이슬람 고유의 학문적 분류 속에서)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슬람 철학 (혹은 아랍 철학)이란 이렇게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논의들을 하나로 합친, "일종의 학문적 창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유의할 점은, 이 논의들이 어떠한 계보도 없었다 보면 틀렸다는 점입니다. 신학적 논의들 속에 있는 형이상학적 논의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계보가 있으며, 선대의 논의가 후대로 전해지고 뭐 그렇습니다. 그저 이 "논의"가 서양 철학 [더 좁게 말하자면 서양 중세 철학처럼]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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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가 있다면 팔사파(falsafa)일 겁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에 대한 아랍어권의 직접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오해의 여지를 피하고자 자세히 풀어쓰자면,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페리파토스 학파의 문헌에 대한 연구를 "팔사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플라톤/신플라톤주의 문헌과 갈레노스 같은 의학/과학 문헌도 연구했지만, 여하튼 주류는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븐 시나, 이븐 루시드 등, "아랍 철학"이라 할 때 주로 불리는 이름들은 모두 이 팔사파를하던 학자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팔사파"는 아랍 철학 연구의 주박과도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논의인만큼, 의심의 여지 없이 "철학"이라 부를 수 있겠죠.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 팔사파가 쇠퇴한 이후의 시기는 "철학이 없다" 혹은 "쇠퇴기다."라고 말해지며 연구가 덜 되었습니다. 하지만 팔사파의 쇠퇴 이후에도, 여전히 신학/법학적/수피즘적 논의에서는 팔사파 텍스트들이 하나의 전범으로서 작용했다는 점에서, 쇠퇴기라는 평가는 재고할 법합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제 연구가 더 되고 있긴 합니다.)

(3)

이제 수니/시아 (그리고 이바디)라는 구분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구분은 신학적/법학적과는 다른, "종파의 정통성에 관한 문제", 즉 정치적 구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혹은 예언자인 무함마드는 종교뿐 아니라, 이 종교를 따르는 거대한 제국을 남겨주었습니다. 따라서 무함마드 사후, 이 종교-제국을 누가 통치하고 이끌 것인가, 에 대한 분쟁이 극심했습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가 누굴 "직접 지명한 적이 없으며", 이슬람 공동체에 의해 뽑힌 사람이 이 자리(칼리파)를 차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물론 제한 사항이 있죠. 이 이슬람 공동체는 당시 귀족층으로 한정되었고, 초창기에는 무함마드가 속한 쿠쉬라이 부족 사람만이 가능했습니다. - 물론 후대에 가서는 이 모든 것이 여러 가지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재해석을 거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출된 칼리파가 아부 바크르입니다.

반대로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직계 혈족이 이 자리를 계승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 아부 바크르를 "칼리파로서 권위가 부족한 사람이고,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가 정당한 계승자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직계 혈족이 계승해야 한다는 원칙 역시 수니파가 그렇듯, 여러가지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재해석을 거치죠.)

마지막으로 세번째 이바디(Ibadi)파가 있습니다. (오늘날 오만에 대다수, 알제리 오아시스에 소수 남아있는 종파입니다.) 이들은 (시아파처럼) 알리를 지지했지만, 후에 알리 - 아부 바크르 사이의 분쟁에서 알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합니다. 그러다보니 수니/시아 모두와 척을 지는, 그런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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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치적 정통성에 대한 분쟁은 수니/시아/이바디 간의 독특한 "지도자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선 수니파의 지도자는 특정한 혈통이 아닌 "뽑힌 사람"이면 됩니다. 반대로 시아파의 지도자는 "특정한 혈통" 혹은 "신이 증거하는 특정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능력에 대한 구분은 쿠란의 해석에 대한 여러 법학적/신학적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바디파는 (시아파와 달리) 특정한 능력/혈통일 필요는 없습니다만 (동시에)(수니파와도 달리) 특정한 정치적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닌 이슬람 공동체가 스스로 통치할 수 있다 여겼습니다. (따라서 이바디파는 이슬람 공동체의 법학자가 곧 통치자가 되는 형태입니다. 수니파는 이슬람 법학자가 세속적 통치자를 "선출"하는 형태인 셈이고, 시아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계승자가 곧 통치자가 되는 형태입니다.)(따라서 오늘날에도 이바디파는 시아파/수니파 사이의 중간자적 존재로 보면 무리가 없을 듯합니다.)

수니/시아/이바디라는 "정통성에 대한 구분"은 처음에는 아주 큰 신학적/법학적 차이를 가져오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후대에 이런 종파들이 가진 a) 각기 다른 문제들/해명할 사항과 b) 서로를 다르게 구분하려는 "구별짓기"와 현실적인 교류의 제한 등이 서로 다른 형태를 만들어나가죠.

(4)

이제 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기서 살짝 귀찮은 구분이 있습니다. 통상 신학은 칼람(kalam)이라 하긴 하는데, 이 칼람은 "신에 대한 이성적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쿠란을 어느정도 "문자 그대로" 믿을지는 칼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여하튼 나름의 근거를 제시하고 이성적 토론을 하려고 하죠.

다만 신/신성에 대한 논의이기에 신학이라 부를 수 있지만, "이성적/학문적 논의는 아닌"/칼람이 아닌 논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계승자의 특별한 능력을 강조하는 시아파 내의 논의 혹은 신비주의적 경험에 대한 해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수피즘의 논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쿠란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아타리(athari) - 수니파의 입장이 이러하죠.

여하튼 이슬람 신학에서 중요한 논의는 기독교 신학에서 중요한 논의와 같습니다. (a) 쿠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자 그대로? 아니면 어느정도 합리화시켜서? (b) 신의 본성은 무엇인가? (c) 자유의지와 신의 의지는 어떻게 해명될 수 있는가?

여기서 몇 가지 구분이 나누어집니다.

우선 양극단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이스마일파(시아파의 일종. 오늘날 타지키스탄과 파키스탄을 비롯한 인도양 항구에 흩어져있음)는 계승자의 특별한 능력을 강조합니다. 특히 이스마일파는 이 계승자가 "쿠란에 숨겨진 비의"를 알 수 있다 말하죠. 따라서 이 이스마일파는 칼람에 해당하는 이성적 논의보다는 신비주의적/비의적 해석이 신학의 핵심을 이룹니다.

반대로 수니파 - "전통주의자"(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아타리[Athari] 혹은 한발리 신학 등등)들은 쿠란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한다는 쪽입니다. 물론 쿠란에 나와있는 영역이 아닌 것에는 나름의 합리적/이성적 논의가 있었겠지만 (예컨대 법학적 논의), 그 외에 형이상학적 논의에 있어서 이성적 논의(칼람)은 무의미하다 여겼습니다.

이제 중간적 논의들을 해보죠.

우선 그 유명한 무타질리(Mutazili)가 있습니다. 보통 이들을 "합리적 신학"(rational theology)라고 부르죠. 다만 이게 이들이 서양 계몽주의 시대 때처럼, 쿠란을 완전히 배격하고 뭐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a) 이들은 인간 이성이 가장 고귀하므로, 신에게 복종하는 가장 좋은 태도는 이 이성을 활용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b) 따라서 이들은 팔사파에서 충분히 논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형이상학, 자연철학을 쿠란 해석에 적극적으로 적용합니다. c) 특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을 "인간화해서 해석하는 것"을 무타질리는 극도로 경계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신과 인간이 다르다는 쿠란의 언급을 논리적으로 해석하자면, 신은 인간과 철저히 다른 것이라는 결론이 따라온다 여겼으니깐요) 따라서 d) 쿠란 해석에 있어서 신을 "인간화한 지점"은 이와 전혀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여긴겁니다. [때론 전통주의자/한발리 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들은 신을 인간화한다고 말해지곤 합니다.] e) 이는 무타질리가 다른 학파와 "윤리적 입장"에서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 지점을 만듭니다. 이들은 윤리적/법적으로 "옳은 행동"은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f) 나아가 쿠란에 언급이 거의 되지 않은 자연 철학적 논의 (우주 발생 등등)에 있어서 이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많이 수용했습니다. 특히 이들은 원자론을 수용했죠.

무타질리의 (나름) 급진적인 논의들은 이후 쇠퇴하지만, 이후의 모든 신학적 논의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쿠란 해석에 있어서 계승자의 권위를 중시하는 시아파 중 자이드파/12이맘파에서는 무타질리 논의들을 거의 그대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수니파에서 거의 사라진 무타질리 문헌들이 12이맘파가 주류인 이란과 자이드파가 있는 예멘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그리고 전통주의자와 무타질리파를 절충한 아슈라이파(Asharism)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학파는 오늘날 대부분의 수니파가 따르는 신학적 입장입니다.)

(각 신학적 입장들은 쿠란의 지위, 자유의지와 신의 의지 등에 대해서 제각기 다른 포인트들을 가지지만, 아직 제 공부가 부족해서 여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더하긴 어려울 듯합니다.)

(5)

이제 법학으로 넘어갑시다. 법학 일반은 보통 피크흐(fiqh)라고 불립니다. 저희가 아는 한발리, 하니피 등등이 이 피크흐의 학파들입니다. (이 학파들은 보통 '마드하브'라 불립니다.)

법학이라는 칭호에 맞게, 피크흐는 (오늘날 서양법처럼) 여러 분야에 대해 논의합니다. (a) 무엇이 적절한 법의 원천인가? (b) 이 법의 원천에서 어떠한 추론 방법이 적절한 법적 추론인가? (특히 이 부분에서 논리학 혹은 비형식 논리 등이 오랜 기간 학습되어왔습니다. 그래서 팔사파 - 무타질리 학파의 쇠퇴 이후, 이슬람 철학를 연구할 때, 이 부분에 집중하는 학자들이 꽤 늘어나고 있습니다.)

보통 법학파는 크게 순니 한 묶음 4개파 (한발리, 하나피, 말리키, 자히리)와 시아 3 묶음 (자파리 12이맘파, 자파리 이스마일파, 제이드파), 이바디파 1 묶음. 총 5묶음 8파로 나뉩니다.

"묶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묶음마다 인정하는 하디스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법학은 당연히 종교법의 일종이기에, 모든 법학파가 인정하는 가장 우월한 권위를 가진 문헌은 쿠란입니다. 쿠란 텍스트는 어느 종파든 별 다른 이견이 없이 동일하죠. (다만 쿠란의 구절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권위를 가지는 것이 하디스(Hadith)입니다. 하디스는 무함마드의 말과 행동을 기록해서 집대성한 문헌입니다. 따라서 일종의 역사책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X다."라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 역사적 사실이 누구에 의해서 증언되었고, 이 증언은 누구를 거쳐서 내려왔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증언의 신뢰성에 대한 어마어마한 계보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증언의 신뢰성의 높고 낮음에 대한 평가 역시 이루어져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역사책이고 증언집인 고로, 각 종파마다 인정하는 책이 다릅니다. 순니 4개 법학파는 대체로 동일한 하디스를 존중합니다, 시아파는 이스마일과 12이맘, 자이드 각각이 인정하는 하디스가 다르고, 이바디 역시 독자적인 하디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그 다음은 법학파들의 차이입니다. 법학파들이 갈라지는 건, 인정하는 하디스의 종류의 차이도 있지만, 어떠한 법적 추론을 인정할 것인지, 무엇을 법적 권위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차이 역시 존재합니다.

예컨대, 가장 보수적이고 문헌 그 자체를 존중하는 한발리 법학파 (사우디에서 믿는 학파입니다)는 쿠란 - 하디스 - 무함마드에 대한 전승들 - 전승에 대한 개별 해석 순으로 법적 권위를 부여합니다. 나아가, 이슬람 공동체에 내려오는 법적으로 합의된 전승(Ijma)와 유비적 추론(qiyas)을 거의 수용하지 않죠. 또한 지역의 전통적 관습(urf)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발칸 - 터키 - 중앙아시아 등에 널리 퍼진 하나피 학파는 널널합니다. 쿠란 - 하디스를 가장 존중하긴 하지만, 법적인 합의(ijma), 유비적 추론, 지역 관습 모두 널리 인정하고, 법학자 개인이 이 여러 요소들을 고려해서 판정을 내리죠.

(6)

이제 마지막은 수피즘입니다.

수피즘은 (모호하기로 악명 높지만) 일종의 "신비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수행 - 아니면 집단적 의례를 통해서 신과 하나가 되려는 운동(movement)라 할 수 있죠. 그런 점에서 힌두교 수행자들이나, 기독교의 수도원 운동, 불교의 선 - 밀교 수행자들과 굉장히 유사한 형태를 가집니다.

이 수피도 일종의 사승관계, 즉 종파가 있습니다. 이를 타라카(tariqa)라고 합니다. (가르침 자체만을 의미하다가, 이 가르침을 따르는 종파로 의미가 확대되었습니다.) 이 타라카 전체의 명단은 이것저것 뒤져봤지만, 한번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뛰어난 한 수피 - 영적 스승이 생기면, 이 스승을 따르는 일종의 "풀뿌리 집단"이 생기는 격인지라 힘 좀 있는 수피 교단일지라도 19세기에 생기고 뭐 그런 경우도 자주 보입니다.

이런 "풀뿌리적 특성" 덕분에 수피 교단 내에 통일된 의례나 학문 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저희가 아는 빙글빙글 도는 춤을 의례로 바치는 것인 말레비(Mevlevi) 수피즘뿐입니다. 꽤 세력이 컸던 낙슈반디(Naqshbandi) 수피즘 교단 같은 경우, 음악이나 춤을 의례에서 꽤 엄격히 제외한 편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는 여러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순니든 시아든 이슬람은 음악과 재현 예술을 금지한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칙을 어기며, 그것들을 하곤 하죠. 그리고 오스만이나 사파비 등 세속 권력이 강한 제국이 형성될수록, 이러한 예술들은 "대놓고" 발전하곤 했습니다.

게다가 이건 음악/재현 예술이 아니다, 라는 형태로 이 금기를 빠져나가곤 합니다. 예컨대, 쿠란에 음정을 넣어서 낭송하는 키라아트[qiraat], 예배를 알리는 소리인 아잔[adan]은 음악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즉흥 코미디는 그 문화 예술의 지옥으로 악명 높은 사우디에서조차 재현 예술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풀어준 장르입니다.)

수피즘의 형이상학/심리철학/구원론은 특유의 신비주의적/비의적 특성 덕분에 시아파와 꽤 닮아있습니다.

(7)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이슬람과 이슬람이 아닌 것의 경계에 있는 것들을 짧게 언급하겠습니다.

일단 (이슬람의 영향은 있지만) 어떠한 사도 - 예언자들의 계보를 말하는 아브라함적 전통과는 분리된 야지디(Yazidi)가 있습니다. 쿠르드족 중 일부가 믿죠.

또한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니교 계열의 종파(라 추정되는) 만다야(Mandae)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 예언자 - 칼리파의 계보를 말하지만, 부활과 삼위일체, 쿠란만큼의 권위를 인정받는 독립된 경전 등등 이제 이슬람이라기보단, 사실상 이슬람에 기반한 신종교라고 불릴 만한 종파가 두 개 있습니다.

(참고로 육체적 부활의 경우, 이슬람의 경우 쿠란에서 그런 건 없다고 못 박아넣은 교리입니다. 물론 이제는 지금은 사라진 중세 시아파의 경우, 이 부활 교리를 믿었다고 전해지고 이 중 살아남은 게 알라위파라는 게 오늘날 주된 견해입니다.
부활 교리처럼, 순니/시아할 것 없이 꽤 이단시되었던 견해는 "신이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존재한다."라는 육체성 교리입니다.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신관과 유사하죠.] 이 역시 소수 견해이지만 존재했습니다.)

알라위(Alawits)와 드루즈(Druze)입니다. 둘 다 온갖 중동계열 기독교 종파는 물론, 유대교와 서양 기독교의 영향까지 있었던 레반트 해안가 (오늘날 시리아 - 레바논 -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지역)에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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