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도입', '언어-언어', '언어-이탈' 이행 중에서 언어-이탈 이행을 먼저 떠올려 보시면 좀 더 직관적인 이해가 쉽지 않을까요? 일상의 윤리적 상황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고, 일반적으로도 큰 문제 없이 동의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요.
가령,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라는 주장에 찬동하고 있고, "철수는 어려운 사람이다."라는 주장에 찬동하고 있다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이루어지겠죠.
-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 철수는 어려운 사람이다.
- 철수를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추론적 결론을 내린 사람들은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철수를 실제로 도와주게 되잖아요.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주장들로부터 그에 뒤따르는 행위를 실제로 하게 되는 과정이 바로 '언어-이탈' 이행이죠.
'언어-도입' 이행도 비슷해요. 이건 지각에 일정한 정보가 주어어지는 상황에서, 그 정보로부터 우리가 추론적 귀결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이거든요.
가령, 우리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내 눈은 사물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와 "지금 나는 정상적 상황에 있다."라는 보조 가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보죠. 이 상태에서 내 눈앞에 사과가 빨간색을로 보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추론할 수 있을 거예요.
- 정상적 상황이라면, 내 눈은 사물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파악한다.
- 지금 나는 정상적 상황에 있다.
- 지금 내 눈은 사과를 빨간색으로 지각한다.
- 사과의 색깔은 빨간색이다.
이런 방식으로 사과에 대한 시각적 지각으로부터 "사과의 색깔은 빨간색이다."라는 추론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언어-도입' 이행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제가 제시한 두 가지 예시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것이긴 해요. 좀 더 정확히 설명하려면 '의무론적(deontic)' 태도를 바탕으로 일어나는 점수기록 과정에 대한 고려가 들어가야 하거든요. 쉽게 말해, 추론이라는 것이 단순히 주체 혼자 수행하는 경직된 일방향적 사고 과정이 아니라, 주체와 타자 사이의 상호적 대화를 통해 벌어지는 역동적 소통의 과정이라는 사실이 지적되어야 해요. 다만, 저 단순화된 예시로도 의문이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런 내용을 가장 쉽게 풀어놓은 텍스트는 아마도 브랜덤의 Articulating Reasons일 거예요. 이 책의 83쪽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어요.
The thought is that there are two species of discursive commitment: the cognitive (or doxastic) and the practical. The latter are commitments to act. Acknowledgments of the first sort of commitment correspond to beliefs; acknowledgments of the second sort of commitment correspond to intentions. The first are takings-true, the second makings-true. Practical commitments are like doxastic commitments in being essentially inferentially articulated. They stand in inferential relations both among themselves (both means-end and incompatibility) and to doxastic commitments.
The second basic idea motivating the present account is that the noninferential relations between acknowledgments of practical commitments and states of affairs brought about by intentional action can be understood by analogy to the noninferential relations between acknowledgments of doxastic commitments and the states of affairs they are brought about by through conceptually contentful perception.
-
Observation (a discursive entry transition) depends on reliable dispositions to respond differentially to states of affairs of various kinds by acknowledging certain sorts of commitments, that is, by adopting deontic attitudes and so changing the score.
-
Action (a discursive exit transition) depends on reliable dispositions to respond differentially to the acknowledging of certain sorts of commitments, the adoption of deontic attitudes and consequent change of score, by bringing about various kinds of states of affairs.
R. Brandom, Articulating Reasons, Cambridge, Massachusetts: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p.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