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호,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제1장 요약

I.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이름과 내용

1. ta meta ta physika와 형이상학

이 저술의 제목 ‘ta meta ta physika’, ‘자연학 뒤에 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서지학적인 의미에서 이해된다. 즉 이 제목은 자연학에 관한 저술들 뒤에 오는 글들이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한편 자연을 넘어서 있는 초자연적인 것을 탐구하는 글들이라는 의미로 제목을 이해하려는 시도들 역시 여럿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심플리키오스와 칸트가 그러했다.

수 천 년 된 책의 제목이 지니는 진의를 밝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저술의 연구 대상이 자연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제목이 붙었다는 주장은 과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이해는 『형이상학』을 신플라톤주의적으로 이해하려 시도했던 이들의 흔적이다. 이들은 『형이상학』이 플라톤의 변증론(dialektikē)과 마찬가지로 가지적, 초감각적 대상들을 탐구의 대상으로 설정한다고 이해했다. 물론 여기서 탐구되는 학문은 신을 탐구하는 작업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초자연적 성격을 함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신학적 측면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 자체로 탐구한다는 보편적 존재론의 측면과 공존하고 있으며, 따라서 『형이상학』은 초자연적 대상에 대한 탐구를 넘어 (있는 것으로서의) 모든 대상 일반에 대한 탐구 역시 포괄한다.

2. 『형이상학』의 내용

『형이상학』은 총 1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권(Α)

제1-2장

  • 지혜(sophia)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제일원인에 대한 이론적 학문이다.
  • 지혜는 최고 단계의 앎이다.

제3-6장

  • 4원인설의 소개
  • 4원인설의 관점에서 선대철학자의 학설들 검토(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 및 플라톤)
  • 선대 철학자들의 학설 비판

제2권(α)

제1장

  • 지혜는 진리에 대한 이론이다.
  • 선대 철학자들의 기여에 대한 평가와 그 연구에 대한 필요성 강조

제2장

  • 4원인설의 옹호
  • 원인에 대한 무한한 탐구의 불가능성 논증

제3장: 모든 분야에서 수학처럼 엄밀한 설명은 불가능하다는 교훈

제3권(Β): 제일철학의 핵심 문제들 소개

제일철학에 관한 문제

  • 제일철학의 탐구 대상은 실체(ousia)뿐인가, 실체의 본질 역시 포함되는가?
  • 제일철학은 공리들(모순율과 배중률)을 탐구해야 하는가?
  • 제일철학은 모든 실체를 탐구해야 하는가, 특정한 종류의 실체들만을 탐구해야 하는가?
  • 제일철학은 실체의 4원인 중 모두를 탐구해야 하는가, 그 중 하나만을 탐구해야 하는가?

실체와 그 원인, 원리에 관한 문제

  • 감각적이고 운동하는 실체들 외에 다른 실체들이 존재하는가?
  • 감각적 실체들은 질료인 외의 다른 원인(=형상인)도 포함하는가?
  • 원인과 원리는 보편적인가, 개별적인가? etc.

제4권(Γ)

제1장

  • 제일철학은 있는 것으로서 있는 것(on hēi on)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 있는 것들 중 제일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제2장

  • ‘있는 것’은 여러 의미를 지니지만, 이 의미는 모두 실체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 그러므로 제일철학은 일차적 존재자(=실체)에 관한 탐구이다.

제3-6장

  • 모순율이 모든 원리들 중 가장 확실하다. 모순율의 정당성 옹호
  • 모순율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철학자들(특히 프로타고라스) 비판

제7-8장: 배중률의 정당성 옹호와 이를 부정하는 철학자들 비판

제5권(Δ): 철학 개념 30개에 대한 설명

  • e.g. 원리(archē), 원인(aition), 요소(stoicheion), 자연(본성; physis), 있음(einai), 실체(ousia)

제6권(Ε): 제일철학의 성격과 대상

제1장

  • 학문의 구분: 실천학(praktikē), 제작학(poietikē), 이론학(theoretikē)
  • 이론학의 구분: 수학(mathematikē), 자연학(physikē), 신학(theologikē)
  • 제일철학은 신학에 해당함
  • 제일철학은 제일의 것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다.
  • 제일철학은 있는 것을 있는 것으로 사유해야 한다.

제2-3장

  • 부수적인 것(우연적인 것; symbebēkota) 및 그 원인에 대한 탐구
  • 학문은 부수적인 것을 탐구하지 않는다.

제4장: 참과 거짓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생각 속에 존재하므로 학문의 대상이 아니다.

제7-9권(Ζ, Η, Θ): 실체론

제7권(Ζ): 각자의 실체(ousia hekastou) 탐구

제1장

  • 실체란 제일가는 의미에서 있는 것이다.
  • 있는 것은 무엇인가?(ti to on)는 실체란 무엇인가?(tis hē ousia)로 귀결된다.

제2장: 실체에 대한 선대 철학자들의 학설 소개

제3-17장: 본격적인 실체론

  • 실체의 네 가지 후보: 본질(to ti ēn einai), 보편자(katholou), 유(genos), 기체(hypokeimenon)
    제3장: 실체는 기체가 아니다. 왜냐하면 기체는 내용 없는 질료(hylē)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제4-6장: 본질에 대한 일반적 논의
    제7-9장: 감각적 사물의 생성 중 본질의 지위
    제10-12장: 본질과 정의의 관계
    제13장: 보편자는 실체가 아니다.
    제14-15장: 이데아 이론 비판
    제16장: 질료는 가능적인 것(dynamis)라는 점에서 실체이다.
    제17장: 본질은 감각적 실체의 존재의 원인(aition tou einai)이다.
    제8권(Η): 감각적 실체(aisthētē ousia) 탐구

제1장

  • 제7권 요약
  • 질료는 감각적 사물의 기체이자 가능적인 것이다.

제2-3장: 형상(eidos)=현실적인 것(energeia)으로서의 실체에 대한 탐구
제4장: 실체는 최종적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원인들(engytata aitia)에 의해 제시되어야 한다.
제5장: 생성/소멸 구분이 가능적인 것/현실적인 것 구분과 맺는 관계 탐구
제6장: 정의는 유(genos)와 종차(diaphora)가 질료와 형상의 관계, 혹은 가능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관계에 놓임으로써 통일적인 것으로 성립한다.

제9권(Θ): 가능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에 대한 탐구, 혹은 가능성-현실성 구별에 입각해 있는 것을 탐구

제1장: 능동적 능력(dynamis)과 수동적 능력의 구분
제2장: 이성적 능력과 비이성적 능력의 구분
제3장: 메가라 학파는 가능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구별을 간과했다.
제4장: ‘가능한’, ‘불가능한’, ‘거짓’에 대한 개념적 설명
제5장: 타고난 능력, 습관, 이성에 의해 습득된 능력의 구분
제6장: 가능적인 것과의 구분 속에서 현실적인 것에 대한 유비적 정의
제7장: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는 대상과 그 조건
제8장: 현실적인 것은 가능적인 것에 선행한다.
제9장: 현실적인 것은 가능적인 것에 우위를 점한다.
제1장: 현실적인 것과 참된 것의 관계

제10권(Ι): ‘있는 것’(on), ‘하나’(hen), 두 개념의 관련 개념들에 대한 탐구

  • ‘하나’의 외연과 ‘있는 것’의 외연은 일치한다.

제11권(Κ): 『자연학』 제3-4권의 발췌문 묶음

  • Β권의 문제들
  • 제일철학의 통일성과 대상
  • 모순율과 배중률
  • 있는 것으로서 있는 것을 다루는 학문
  • 자연철학의 근본개념들(e.g. 원인, 본성, 우연, 운동, 무한자, 변화와 운동)

제12권(Λ): 부동적이고 영원한 실체들에 대한 탐구

제1-3장

  • 제일철학은 있는 것들의 제일원인에 대한 탐구이다.
  • 있는 것들의 제일원인은 실체이다.
  • 따라서 제일철학은 실체에 대한 탐구로 귀결된다.
  • 실체는 감각적(가멸적 실체, 불멸적 실체) 실체와 초감각적 실체로 구분된다.
  • 감각적 실체의 원리들: 질료, 형상

제4-5장: 실체의 원리들과 다른 범주들의 원리들 사이의 유비적 동일성

제6장

  • 영원한 것(천체)의 운동이 존재한다.
  • 영원한 것의 운동의 원인이 존재한다.
  • 영원한 것의 운동 원인은 순수한 작용이자 현실적인 것이다.
  • 따라서 하나의 영원하고 부동적인 실체가 존재한다.
  • 모든 것의 시작은 혼돈이 아니라 현실적인 작용이다.

제7장

  • 이 실체는 스스로 운동하지 않으면서도 운동을 자기의 사유 및 욕구 대상으로 산출한다.
  • 이 실체는 최고선, 영원한 생명, 순수한 사유, 순수한 행복이다.
  • 따라서 모든 것의 시작은 완전한 것이다.

제8장: 당시의 천문학 이론에 기반한 부동의 원동자 이론 소개

제9장: 신적 사유 활동의 본성에 대한 탐구

  • 신은 사유의 사유(noēsis noēsēos)이다.

제10장: 좋은 것(to agathon)에 대한 탐구

  • 세계의 좋음은 궁극적으로 신에 내재한다.
    요컨대 신은 모든 것의 운동을 산출하는 원리이고, 모든 것이 지향하는 목적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하나의 원리이다.

제13권(Μ) 및 제14권(Ν): 수학적 대상과 이데아에 대한 탐구

제1-3장: 수학적 사물들은 감각적 사물에도 귀속되지 않고, 분리된 개별적 실체도 아니다.

제4-5장: 이데아 이론의 역사적 분석과 비판

제14권

  •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 비판
  • 피타고라스의 수 이론 비판

각 권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 『형이상학』은 완결된 저술이 아니라 상이한 여러 주제들을 다루는 글들의 묶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논지의 존재에 관한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처럼 말할 수 있다. 첫째, 특히 제12권이 초기에 및 독립적으로 저술된 부분임을 감안한다면, 『형이상학』은 신학적 성격을 띤다. 둘째, 그 앞에 위치하지만 제12권보다 늦게 저술된 제7-9권의 보편적 실체 이론은, 제12권에서 두드러지는 신학적 탐구로서의 제일철학을 확장한 탐구라고 볼 수 있다. 제12권을 『형이상학』의 핵심으로 보는 논자들은 제7-9권의 보편적 존재론을 신학의 예비학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논의가 제12권에 비해 훨씬 정교하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신학적 부분의 예비학이라기보다는 그 확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형이상학』은 그 미완결성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아 학문으로서의 제일철학, 실체, 신이라는 세 가지 탐구 주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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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읽을 예정이었는데, 맛보기용으로 딱 좋을 포스팅일 것 같네요. 기대가 됩니다.

저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정말 잘 모르지만,

여기서 양질의 페이퍼들을 찾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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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좋은 자료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분이 현재 집필 중인 책인가 보군요. 막히거나 헷갈리는 부분이 있을 때 이 글들을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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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건 제가 인용한 부분, 즉 <형이상학>이 하나 혹은 여러 개의 주제를 다루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알고 있습니다. <형이상학> 의 전반적인 논의는 (당연하게도) SEP, 그리고 Halper - Aristotle's Metaphysics: A Reader's Guide 정도가 좋다고 들었네요. 그리고 Lear - Aristotle: Desire to Understand가 전체적인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입문으로 유명한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 <영혼론>을 읽고 있는데, 필요한 배경지식은 Lear책에서 찾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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