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자기계발용 혹은 위안용 철학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현상에 대해 니체 자신은 어떤 입장을 가질까 항상 궁금해 왔습니다. 짐작으로는 저는 좋아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으나 이에 대한 확신이 없었는데, 오늘 읽은 『즐거운 학문』 366번 구절을 읽고,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강조는 글쓴이)
한 인간이 어떻게 그 사상에 도달했는가를, 그가 잉크병을 앞에 두고 뱃살을 접은 채, 종이 위로 머리를 굴리고 앉아서 그 사상에 도달했는지의 여부를 우리는 얼마나 빨리 알아차리는가! (…) 이것이 성실하고 박식한 책을 덮으며 내가 받은 느낌이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또 안도감을 느끼며 …. 박식한 학자의 책에서는 또한 거의 언제나 억누르고 또 억눌린 어떤 것이 느껴진다: 어디에선가 “전문가”의 티를 내는 것이다. 그의 열성과 진지함, 원한, 그가 앉아서 생각을 짜내는 구석 자리에 대한 과대평가, 그의 곱사등에서 ― 모든 전문가는 곱사등을 가지고 있다. 학자의 책은 또한 언제나 굽은 영혼을 반영한다. 모든 전문 수공업은 구부리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 모든 명인은 지상에서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상에서는 모든 것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의 희생자가 되는 대가를 치르고 전문인이 되는 것이다.
니체는 여기서 '곱사등'이나 '억눌림'을 말하지만, 그것을 명인 혹은 전문가가 되기위한 대가라고 표현하고 있을 뿐, 명인과 전문가에 대한 부정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지 않죠.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로 긍정을 표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니체는 당대 사람들의 문화를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대들을 다른 방법을 원한다.― “더 싼”, 무엇보다도 더 편안한 방법을 원한다.― 친애하는 동시대인들이여, 그렇지 않은가? 좋다! 그러면 그대들은 다른 것을, 요컨대 전문 수공업자와 명인 대신에 문필가를 얻게 될 것이다. 능란하고 “다재다능한” 문필가를, 곱사등이 없는 문필가를, 실상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거의 모든 것을 “대표하고”, 전문가를 연기하고 “대리하며”, 그를 대신하여 돈을 지불받고 존경받고 축하받는 일을 온갖 겸손을 떨어가며 받아들이는 문필가를.―
그런 대가를 치루지 않고 명인이나 전문가가 되려는 시대에는 혁신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이 도래하지 않는다고, 온갖 부정적인 말을 붙여쓰며 '문필가'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죠. 제 눈에 이 부분은 "대중의 교양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낮은 평지만을 답보"하는 현시대로 따지면 소위 '방송교수'와 상업목적의 자기계발용 철학을 비판하는 구절로 읽힙니다(김경만, 2015: 136). 이어 니체는
그건 아니다! 나의 동료 학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곱사등 때문에 그대들에게 은총이 있기를 빈다! 그리고 그대들이 나처럼 문필가들과 교양 기생충들을 경멸하기 때문에! 그대들이 정신을 사업 수단으로 삼을 줄 모르기 때문에! 그대들이 자신이 아닌 것을 대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들은 전문직의 명인이 되는 것만을 원하며, 모든 종류의 명인과 장인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학문과 예술에서의 모든 꾸며낸 것, 불순한 것, 겉만 번드르르한 것, 거장인 체하는 것, 선동적인 것, 배우의 연기에 불과한 것 등, 훈육과 예비교육의 무조건적 성실과 관련하여 그대들 앞에서 검증받지 못한 모든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문필가와 교양 기생충을 비판하며 곱사등을 가진 학자와 명인에 대한 충성심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니체가 다시 살아서 돌아온다면, 자신 철학이 마개조되어 베스트셀러에 걸려있는 현시대를 보면 참 슬퍼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