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원,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제6강 요약

제6강 인식의 종류

제1장 세 가지 인식의 종류

1. 상상, 이성, 직관적 지식

스피노자의 인식론은 상이한 인식들을 구별할 뿐만 아니라, 부적합한 인식에서 적합한 인식으로, 윤리적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인식론은 윤리학적 및 정치적 함의를 띠고 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식에는 1종, 2종, 3종의 인식이 있는데, 이는 각각 상상, 이성, 직관적 지식이다. 먼저 상상은 개별 대상들에 대한 지각으로부터 보편 통념(notio universalis)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얻는 인식이다. 제5강에서 설명되었듯 유명론을 받아들이는 스피노자에게 보편 통념은 개별 실재들이 갖는 고유한 특성들을 지각하지 못하고, 여러 실재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혼란스러운 통념이다.

보편 통념의 형성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는 독특한 실재들에서 지각되는 다양한 성질들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는 “무작위적 경험[experientia vaga]에 의한 인식”(E2p40s2)이다. 이 “무작위적 경험”이라는 용어는 베이컨(F. Bacon)이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제시한 무작위적 경험과 질서 잡힌 경험(experientia ordinata)의 구별을 스피노자가 차용한 것이다. 보편 통념을 형성하는 둘째 방식은 음성 및 문자 기호를 통해 실재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실제 사과와 아무런 유사성도 없는 ‘사과’라는 기호를 접하면서 머릿속으로 붉은 과일을 떠올리는데, 이러한 일은 그 대상을 지각할 때 해당 기호를 역시 지각함으로써 일어난다. 즉 ‘사과’와 사과의 연결은 습성에 의해 질서지어진 상들의 연결이다. 이러한 연결은 각 사람마다 다르게 이루어진다. 예컨대 병사는 말을 보고 전쟁에 대한 관념을 떠올리는 반면, 농부는 말을 보고 농사를 떠올린다. 스피노자는 이 두 가지 방식을 모두 1종의 인식인 상상 혹은 억견(opinio)으로 규정한다. 1종의 인식은 한낱 우연적으로 참인, 즉 거짓이거나 파편적이 되기 쉬운 종류의 인식이다.

앞의 두 가지와 달리 보편 통념을 형성하는 세 번째 방식이 있다. 이는 “실재의 특성들에 대해 공통 통념[notio communis]들 및 적합한 관념들을”(E2p40s2) 가짐으로써 보편 통념을 형성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2종의 인식인 이성이다.

마지막으로 3종의 인식은 1종이나 2종의 인식과 달리 보편 통념을 형성하는 인식이 아니라 사물들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며, 또한 신의 속성들이 지니는 형상적 본질에 근거한다. 이러한 종류의 인식을 스피노자는 직관적 지식이라 부르는데, 직관적 지식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제5부에 나타나는 신에 대한 지적 사랑이라는 문제와 관련해서야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1종과 2종의 인식은 보편 통념을 형성하는 반면, 3종의 인식은 그렇지 않다. 한편 1종의 인식은 부적합한 인식(우연적으로 참인 인식)인 반면, 2종과 3종의 인식은 적합한 인식이다.

2. 적합한 인식과 부적합한 인식

스피노자는 세 가지 종류의 인식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다. “1종의 인식은 거짓의 유일한 원인이며, 2종과 3종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참되다.”(E2p41) 이 진술은 1종의 인식이 단적으로 거짓이라기보다는, 우연적으로 참이며 따라서 항상 오류 가능하다는 점을 뜻한다. 반면 2종과 3종의 인식은 우리가 필연적인 방식으로 참임을 아는 지식이며, 따라서 오류 불가능하다.¹ 예컨대 1종의 인식은

3²+4²=x²

라는 식에서 x가 5라는 점을 남에게 들어서 알거나, 감으로 찍어서 맞춤으로써 획득된다. 1종의 지식은 남에게 들어서 아는 지식, 실용적 지식, 통념 등 실상 우리의 지식 중 대부분을 구성하지만 한낱 우연적으로만 참일 뿐이다. 반면 2종의 인식은 수학적 원리를 이용해서 계산함으로써 x가 5라는 지식을 획득한다. 3종의 인식의 경우 원리를 굳이 계산하지 않고 바로 직관적으로 답을 도출한다. 그러나 직관적 지식은 이보다 정교한 의미를 지닌다. 다시 정리하자면 1종의 인식으로부터 2종 및 3종의 인식을 구별하는 것은, 인식이 필연적으로 참이냐의 여부이다. 한편 E2p42에 의하면, 1종의 인식과 2종, 3종의 인식을 구별해주는 또 하나의 기준은 참과 거짓을 구별할 기준을 제공해주느냐의 여부이다. 상상은 우연적으로만 참인 까닭에, 상상을 획득한 사람은 설령 그 지식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상상을 통해서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다. 반면 2종과 3종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참인 까닭에 참과 거짓을 구별할 기준을 제공한다.

이러한 기준은 적합 관념과 부적합 관념의 구별에 근거한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참과 거짓을 구별해주는 기준은 적합 관념인데, 적합 관념이란 “대상과의 관계 없이 고찰되는 한에서 참된 관념의 모든 특성 또는 내부적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E2d4)이다. 외부적 특징은 아까 배제되었던 “대상과의 관계”, 정확히 말하면 “관념과 그 대상의 합치”(E2d4)를 뜻하며, 반면 내부적 특징은 해당 관념의 참을 정당화하는 내적인 근거를 갖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서술하자면, 적합 관념은 내적인 정당화 근거를 지니고 있는 관념이며, 부적합 관념은 이러한 내부적 특징을 지니지 않은 관념이다. 그리고 내부적 특징을 지니는 관념은 자연스레 그 대상과 합치하여 외부적 특징 역시 지니게 된다.

부적합한 관념: 진리의 외부적 특징을 충족할 수는 있지만, 내부적 특징을 결여한 관념.
적합한 관념: 진리의 외부적 특징과 내부적 특징을 모두 충족하는 관념. (진태원, 2022, 176)

제2장 수동성에서 능동성으로

1. 정신의 수동성과 능동성

정신 및 신체의 수동/능동 구별은 스피노자의 인식론과 윤리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범주이다. E2p13s에 따르면, 한 물체(신체)가 보다 많은 물체들에 작용하거나 작용을 받을 수 있는 적성(aptus)을 지닌다면, 그 물체의 정신은 보다 많은 것들을 동시에 지각할 적성을 지닌다. 또한 물체가 자기 자신에만 의존하여 작용할수록 그 물체의 정신은 보다 판명하게 이해할 적성을 지닌다. 이때 “자기 자신에만 의존하여 작용”한다는 것은 물체가 다른 물체들과 관계 맺지 않고 혼자서 작용한다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작용한다는 것, 혹은 적합한 원인²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물체가 능동적일수록 그 정신의 인식 역량도 증대된다.

앞서 이야기했듯,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와 달리 정신의 상이한 직능들을 구별하지 않으며, 따라서 수동적 지각과 능동적 의지 사이의 구별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서는 정신이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 적합한 원인이냐 부적합한 원인이냐가 관건이 된다. 또한 신체의 능동성/수동성과 정신의 능동성/수동성은 공통적인 질서에 기반하므로, 양자는 비례한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에서는 정신과 신체 사이의 갈등이 문제가 되지 않고 정신의 역량의 적합성과 부적합성이 문제가 된다.

2. 부적합한 인식에서 적합한 인식으로

제1장에서 이야기되었듯, 우리 지식의 대부분은 부적합한 인식인 상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적합한 인식을 획득할 수 있는가? 신체가 대상에 의해 변용되어 상을 형성할 때, 정신은 “자연의 공통 질서”(E2p29c)로부터 대상들을 지각하며, 이때 대상에 대해 부적합 관념을 형성한다. 여기서 자연의 공통 질서란 인간이 불가피하게 따라야 하는 외적인 자연적 조건을 뜻한다. 이로부터 대상들을 지각하는 정신은 혼란스럽고 단편적인 인식만을 획득한다.

외적 원인에 의한 신체의 변용과 더불어 상상을 형성하는 인식은 “실재들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에 따라 이것 또는 저것을 바라보도록 외적으로 규정”되는 지각, 즉 외적 지각인 반면, 이러한 지각들을 상호 비교해서 사물들의 동일성과 차이를 파악하도록 해주는 지각, 즉 “다수의 실재를 동시에 바라봄으로써 실재들 사이의 합치, 차이 및 대립을 이해하도록 내적으로 규정”되는 지각인 내적 지각 또한 존재한다(E2p29s).

그래서 정신은 처음에 외적 지각을 통해 사물에 대한 혼란스럽고 파편적이며 따라서 비본질적인 인식만을 얻지만, 이 외적 지각이 축적되면 내적 지각을 통해 사물들을 비교 대조하면서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¹ 현대철학에서는 필연성과 오류불가능성이 구별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듯하다.
² 적합한 원인과 부적합한 원인의 구별은 제9강에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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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저도 스피노자의 인식론은 잘 모르지만, 최근에 봐야할 일이 생겨서 보고있네요.

다만 조금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

이라고 적혀있는지 한 번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왜냐면 제가 이해하기로 적합 관념은 그 자체로 참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지, 참과 거짓의 차이가 아닙니다.

여기서도 인용하셨듯이, 남에게 들어서 알거나, 감으로 찍어서 맞출 경우에는 부적합합니다. 하지만 x=5라는 것을 들을 경우에는 부적합하지만 참이겠죠. 그래서 적합 관념이 참과 거짓을 구별해준다는 것에는 확신이 서지 않네요.

그래도 수식으로 1종의 인식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 참에 생각해볼만한 좋은 예시가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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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듯 유익한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아마 우려하시는 부분을 책에서도 발생하기 쉬운 오해로 지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적합 관념이 거짓의 원천이라고 해도, 이를 적합 관념=참인 관념, 부적합 관념=거짓인 관념인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강조되는 구절이 있습니다.

[...] 주의할 점은, [1종의 인식이] "거짓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해서 1종의 인식 전체가 거짓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 논점은, 1종의 인식을 통해서도 우리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지만, 이러한 인식은 2종의 인식과 3종의 인식처럼 "필연적으로 참된" 인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진태원, 2022, 170, 원저자 강조)

다만 적합한 인식(2종과 3종의 인식)이 참과 거짓을 구별해줄 수 있는 기준이 되고 부적합한 인식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확실히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1종의 인식을 통해서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을까요? 그것은 1종의 인식을 통해 얻게 된 인식이 참이라고 해도, 그것은 우연히, 어쩌다가 보니 얻게 된 참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1종의 인식을 통해서 답을 얻은 사람은, 그것이 맞는 답이라고 해도 자신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지 못합니다. (진태원, 173-174, 원저자 강조)

곧 스피노자에 따르면 참과 거짓의 구별은 관념이 적합한 관념인가 부적합한 관념인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적합한 관념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스피노자가 말하는 적합성의 특징 중 하나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 내지 근거를 제시해 준다는 점에 있다는 뜻입니다. (진태원, 2022, 174-175, 원저자 강조)

책에서는 이렇게 서술하는 전거로 42번 정리를 들고 있습니다.

For he how knows how to distinguish between the true and the false must have an adequate idea of the true and of the false (E2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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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흥미롭군요. 저는 언급하신 이유로 적합관념이 truth value of a judgement를 판별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truth/falsity, the truth/the false, a true idea/a false idea와 같은 차이를 두고, 그 차이를 제가 못 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43번에서는

He who has a true idea at the same time knows that he has a true idea, and cannot doubt the truth of the being.

이라고 하고, 또 35번 정리를 보면,

Falsity consists in the privation of knowledge which inadequate, or mutilated and confused, ideas involve.

라고 돼있죠. 하지만 이런 구분들이 어떤 의미를 갖을지 감이 안 잡히네요. 이런 부분에서 42번에서 뭔가 놓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진태원 선생님의 문장을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구분인데, 이렇게 얘기를 나누면서 알게 됐네요. 유익했습니다.

+) 아니면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게, the standard가 아닌 a standard라고 한다면 동의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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