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
"한국의 레비나스 수용경향"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상반기에 학술지 투고를 시도해보았었습니다. 학부생 고유의 얼치기 열정은 진취력을 갖고 끈기있는 작업에 도움이 되었지만, 냉철한 관점으로 자기 연구를 엄밀하게 만드는데는 젬병이더군요ㅠㅠ 서술적/방법론적으로 부족함을 피드백 받고 최종적으로 게재 불가를 받았습니다(게재가능1, 수정재심1, 게재불가1).
그래도 이런 좋은 커뮤니티를 찾게 되어 마음이 너무 기뻐, 게재도 못한 제 졸고의 일부를 잘라 올려봅니다. 1990년부터 2020년 3월까지 출간된 학술논문과 단행본을 정리하였는데, 우선 단행본 파트만 쓰려고합니다; 사실상 다시 쓰여져야 할 글이기 때문에. 때문에 학술논문의 경우 [요약문] 카테고리에서 개별 논문들로 따로, 자주 올리겠습니다~
여기 올리는 글은 수정되었지만, 본래 글의 초점은 "한국에서 레비나스 철학연구에 있어 관심의 증대와 연구영역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언하는데 있었습니다. 그 궤적 자체는 남겨놓았는데, 과연 그 증언이 제 서술에서 확인되고 있나요? 있다고 한들, 그것을 확언하는 일이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었을까요?(한국 레비나스 학계의 발전에?) 뭐 이런저런 점들을 지적해주시는 답글도 너무나 간절합니다. 읽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글 자체에 대해서 피드백을 주시다면야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외국 문헌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모든 분들이 접근 가능한 국내문헌이라 정리 의미가 있나 싶어 부끄러워지네요~ 그래도 키에르케고어가 이렇게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습니다.
저술가를 위해 보장된 충고.
그대 자신의 고찰을 되는 대로 써서 인쇄에 붙여라. 그러면 거듭되는 교정의 과정을 통하여 점차로 멋진 착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것을 감히 출판해 볼 생각을 해보지 못한 그대들 모두는 용기를 내라. 오식(誤植)도 깔보지는 말라. 오식 덕분에 재치가 입증된 저술가는 완전히 합법적인 방법으로 재치를 발휘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___ 쇠렌 키에르케고어, 『이것이냐 저것이냐 제1부』, 임춘갑 옮김, 다산글방, 2008, p.37
출판도 아니지만.. 어디에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운 제 수준입니다. 너그러이 읽어주세요.
[본문]
- 1990-2008년
1996년, 최초의 레비나스 관련 단행본으로 레비나스에 대한 대중의 기본적 인식과 개념이해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시간과 타자』가 강영안에 의해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레비나스는 당시 한국에서 그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강영안은 책 서두 <옮긴이의 말>에서 유럽과 미국의 레비나스 연구경향을, 책 말미 <관계문헌>에서 레비나스의 저작과 관련 해외 연구들, 그리고 국내 논문 몇 편에 관한 정보를 함께 수록했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강영안을 한국 레비나스 수용의 효시를 당긴 연구자로 공공연하게 인정케 되는 이유가 된다.
뒤를 이어 2000년에는 1981년 레비나스가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서 가졌던 대담을 엮은 『윤리와 무한』이 양명수에 의해 다산글방을 통하여 출간되었다. 레비나스 연구자 서동욱은 위 두 책을 레비나스의 사유가 완전하게 반영되었으면서도 그의 난해한 글 스타일이 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레비나스의 철학의 골자를 이해하기 쉬운 저술로 꼽았다. 이처럼 초창기의 두 번역은 새로운 사유를 잘 소개해주면서도 그 접근장벽 자체는 보다 낮은 레비나스의 저술을 옮겨온 번역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001년 김연숙은 한국 연구자에 의한 최초의 레비나스 해설서인 『레비나스 타자윤리학』(인간사랑)을 출간했다. 김연숙은 레비나스 철학의 기본 골자가 되는 개념들에 대하여 훌륭한 통설적 연구를 수행하였고, 이를 통해 레비나스를 올바르게 수용하고 오독과 개념의 남용을 방지하는 기반이 형성될 수 있었다. 같은 해 콜린 데이비스의 레비나스 해설서를 김성호가 『엠마누엘 레비나스: 타자를 향한 욕망』(다산글방)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2003년에는 박규현이 레비나스가 그와 사유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모리스 블랑쇼'와 관련하여 썼던 글들을 모은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동문선)를 번역하고, 서동욱이 레비나스의 대표적 초기저서인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를 번역했다. 당시 문학평론가로 활동하였던 서동욱은 자신의 많은 평론에서 당시로선 대중에게 생소하던 레비나스의 철학을 적극 활용하였고, 2000년에 출간한 자신의 저서 『차이와 타자』(문학과지성사)에서는 레비나스를 들뢰즈나 사르트르와 같은 잘 알려진 철학자들과 비교하면서 철학적 특이사항을 소개한다. 『차이와 타자』는 레비나스만을 단독적으로 다루는 연구서는 아니지만 학술논문 등지에서 많이 인용되면서 한국의 초창기 레비나스 수용과 이해에 있어 중요한 단행본으로 여겨진다.
레비나스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를 돕는 단행본은 지속적으로 출간되었다. 2004년 변순용에 의해 베른하르트 타우렉의 레비나스 철학 입문서인 『레비나스』(인간사랑)가 번역되었고, 2005년에는 강영안이 『타인의 얼굴』(문학과지성사)이라는 제목의 해설서를 출간한다. 강영안 스스로도 밝혔듯 책에서 그는 레비나스 철학의 다른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종교, 언어, 신체성 등)보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 문제에 집중하였다(p.15). 이 선택과 집중 덕분에 ‘우리 자신이 어떠한 주체인가’에 대해 되묻는 레비나스의 물음과 윤리의식을 한국 사회의 의식으로 변용할 수 있는 구체적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06년에는 변광배, 김모세에 의해 마리 안느 레스쿠레의 『레비나스 평전』(살림출판사)이 번역되어 레비나스의 철학이 그의 생애 전반과 관련하여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08년에는 미카엘 드 생 쉐롱의 『엠마누엘 레비나스와의 대담 1992-1994』(동문선)이 김웅권에 의해 번역되어 또 하나의 레비나스 사유 이해의 길이 트였다.
이상 1996년부터 2008년까지의 시기 동안 레비나스 저서 번역 3권, 국내 연구 및 해설서 3권, 해외 개론서 번역 4권 총 9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음이 확인된다. 이를 한국 레비나스 관련 단행본 출간의 ‘초기’라고 분류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1) 레비나스의 초반 철학에 해당하는 저작들이 주로 번역되었으며 2)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도모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3) 국내 연구자의 해설보다 해외 연구자들의 해설서가 더욱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외 연구자들의 해설서가 많은 것에 대하여서는, 데리다나 푸코, 라캉 등 여타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에 비하면 전무하다시피 했던 한국의 레비나스 연구의 실정을 고려할 때 당연하고도 적절한 결과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히려 꾸준한 관심을 갖고 한국에 레비나스를 적극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이며 무엇보다 대중들의 지식욕을 충족시켜주는 번역이라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 2009-2015
2009년부터 2015년 사이에는 1) 레비나스의 전반 저서가 다수 번역되고 2) 국내 연구자의 연구개론서 출판 수가 해외 연구자들의 해설서 번역본 출판 수에 필적하며 3) 철학이 아닌 타 분야의 관점에서 레비나스에 대한 학제적 연구서가 출간되는 특징을 꼽아 이전 시기와 분류됨이 확인된다.
2009년에는 김동규가 레비나스의 초기저서 『탈출에 관해서』(지식을만드는지식)를 번역했고, 윤대선은 개론서에 해당하는 『레비나스의 타자철학: 소통과 초월의 윤리를 찾아서』(문예출판사)를 출판한다. 윤대선의 저서에서는 학술연구에서 그가 기여한 바와 동일하게 레비나스의 철학이 유다이즘에 뿌리하고 있다는 것이 강조되고, 이는 레비나스의 철학적 배경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이해를 고취시키는데도 일조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될 수 있다.
같은 해 황덕형은 『하나님의 타자성: 웨슬리, 바르트와 레비나스의 타자성 연구』(서울신학대학교 출판부)를, 이듬해 박원빈이 『레비나스와 기독교: 기독교 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현대철학』(북코리아)을 출간하면서 레비나스가 여타 학계-특히 기독교계-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한편 2010년 김연숙과 박한표는 레비나스의 대표적 후기 저서인 『존재와 다르게: 본질의 저편』(인간사랑)을 번역한다(이하 『존재와 다르게』). 중기 대표 저작 『전체성과 무한』에서 레비나스가 열어 놓은 논의들을 잇되, ‘존재론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우면서도 심화된 윤리적 논의를 제시하는 『존재와 다르게』가 번역된 것은, 제안컨대 ‘레비나스 철학의 난해함과 낯섦이라는 어려움에 맞서서 대중 일반에게도 그의 심화적 사유를 수용시키고자하는 의지’가 점차로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무근한 억설을 입증해주기라도 하듯, 2년이라는 잠깐의 공백 이후(중도에 『탈출에 관해서』가 2012년 개정되어 출간되었다.) 2013년에 김도형, 문성원, 그리고 손영창이 그린비출판사를 통해 레비나스의 『신, 죽음 그리고 시간』을 번역한다. 이 번역의 의의는 원숙한 레비나스의 후기 사유의 정수가 담긴 저술의 번역일 뿐만 아니라, 레비나스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많은 독자들을 그의 중심사유에로 접근할 수 있게끔 도울 <레비나스 선집> 의 첫 번째 책이라는데 있다. 그린비출판사와 레비나스 연구자들은 비록 느리지만 성실하고 꼼꼼한 번역을 통해 한국 서점가에 꾸준히 책을 출간, 레비나스를 선집을 갖춰야할 주요 철학자로 인식시키는데 크게 공헌하면서 점차로 레비나스의 본격적 수용의 결실이 맺어진다.
같은 해 일반 독자들에게 아주 쉬운 방법으로 다가가도록 쓰인 우치다 다쓰루의 개론서 『(레비나스와)사랑의 현상학』(갈라파고스)도 이수정에 의해 번역되기도 하면서 레비나스 수용은 전문성과 일반 독자들의 쉬운 접근 및 이해용이성 간의 균형을 꾸준히 맞춰나간다. 2014년에는 김동규가 레비나스의 박사학위 논문인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그린비출판사)를 번역하여 레비나스의 후설 이해에 대하여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한 편 2001년에 번역된바 있던 콜린 데이비스의 레비나스 개론서는 주완식에 의해 『(처음 읽는)레비나스: 타자를 향한 존재론적 모험』(동녘)이라는 이름으로 2014년 다시 번역 및 출간된다.
이렇게 앞서 설명하였듯 이 시기에는 한국 연구자들의 레비나스 번역이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저술들을 주로 번역되었다는 점이 특징이 되며, 이는 대중독자들의 관심을 점차로 폭넓게 이끄는 기조의 형성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레비나스 저서 번역 4권, 국내 연구 및 해설서 3권, 해외 개론서 번역 2권으로 총 9권의 단행본이 출간되었는데, 국내연구가 해외연구 저술을 넘어서는 양상으로 미루어볼 때 점차로 한국 연구자들의 자주적인 레비나스 연구가 진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2016-현재
2016년 이후 국내 연구자들의 연구·개론서가 대폭 출간되면서 한국의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히 전성기에 이른다. 2016년 문성원이 자크 데리다의 『아듀 레비나스』(문학과지성사)를 번역한다. 책에서 데리다는 “레비나스의 자리에서 또 그의 이름 안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서, 또한 그에게 말하면서”(J. Derrida, 2016: 47) 레비나스의 철학 안에 머물지 않고 다르게 읽는 적극적 독해를 제안한다. 즉 레비나스의 사유를 우리 자신에게서 살아있도록 만들기를 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레비나스 철학이 함의하는 바와 그 발전가능성을 채워나가고자 하는 자세는 번역자 문성원 자신에게서부터 먼저 실천된다. 그는 2017년에 『타자와 욕망: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전체성과 무한」 읽기와 쓰기』(현암사)를 출간한다. 『전체성과 무한』 자체보다는 앞서 출간되어 레비나스 사유의 깊이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도록 돕는 해설서에서 문성원은 “레비나스가 촉구하려던 것을 오늘의 처지에서 끊임없이 다시 생각하는 일이 필요하다.”(문성원, 2017, p.43)라고 주장하며 난민, 빈부격차,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적 단상을 남긴다.
발전가능성의 모색은 비단 문성원 개인만의 독자적 실천은 아니다. 같은 해인 2017년 강영안, 김정현, 김혜령, 문성원, 서용순, 손영창의 글들을 김정현이 엮어 펼쳐낸 『레비나스 철학의 맥락들』(그린비출판사)이 출간된다. 엮은이 김정현은 하나의 사유가 활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사유를 연장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후학들이 자신 시대의 문제에 그 사유를 통해 대면해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강영안 외 5인, 2017: 315). 이러한 전반적 경향에서 한국의 레비나스 연구자들이 우리 시대의 국내·국제적 사회문제 등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레비나스를 통해 도모하는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2018년 김도형이 『레비나스와 정치적인 것: 타자윤리의 정치철학적 함의』(그린비출판사)을 출간, 레비나스를 정치적 영역에 적용하려는 적극적 해석의 시도를 선보이면서 확증되는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 윤대선이 들뢰즈, 메를로-퐁티, 베르그송 등 다양한 철학자들과 레비나스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레비나스를 통해 진단한 사회현실을 이야기한 『레비나스의 타자물음과 현대철학』(문예출판사)을 출간하면서 레비나스 철학과 우리 현실의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이 확연한 하나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한 편 같은 해 김연숙이 『레비나스의 「존재와 다르게-본질의 저편」 읽기』(세창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번역했던 『존재와 다르게』를 보다 쉽게 해설, 레비나스 독해의 난이도를 조율한다(이는 『존재와 다르게』가 절판되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는 출간이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같은 해 기독교학자 성신형은 『틸리히와 레비나스의 윤리적 대화』(한들출판사)를 출간하여 틸리히와 레비나스의 윤리에 대한 사유를 비교하여 기독교계의 레비나스 수용의 진지한 시도를 그려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2018년에 가장 중요한 사건은 레비나스 철학에서 가장 추요한 저술인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이하 『전체성과 무한』)의 출간으로, 그린비출판사에서 김도형, 문성원, 손영창에 의해 번역되었다.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꼼꼼한 번역과 세심한 주석으로 레비나스의 핵심사유를 훌륭히 소개하는 번역은 한국에서 레비나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 사유를 접하고자 하는 이들이 가장 반길 일이었다. 이에『전체성과 무한』의 번역은 현재 진행 중인 번영기 이후의 레비나스 수용 양상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즉 향후 연구의 증가는 물론이고 일반 대중들의 레비나스 이해에도 기여하여 담론의 다양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에는 레비나스 입문해설서로 박남희가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모든 것은 윤리의 문제이다』(세창출판사)를, 최상욱이 『하이데거vs레비나스』(세창출판사)를 출간한다. 전반적으로 두 저술은 레비나스에 대한 새로운 독자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며, 이에 지속적인 입문서의 출간은 우리 사회의 레비나스 수용이 전문연구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반에게서 요청되는 것이라는 긍정적 해석을 행할 수 있다
. 한편 5권으로 기획되어있던 그린비출판사의 <레비나스 선집> 중 하나인『우리 사이: 타자 사유에 관한 에세이』가 김성호에 의해 2019년 4월에 번역되었고, 1년이 지나 2020년 3월 현재 마지막으로 『타자성과 초월』이 김도형과 문성원에 의해서 번역됨으로 <레비나스 선집>이 완성되었다. 이로써 레비나스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번역이라는 수용의 첫 단계”(강영안 외 5인, 2017, p.316)가 충분하게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앞으로 한국의 레비나스 연구는 충분한 관심과 더더욱 많은 담론을 형성하면서 우리의 문제의식의 한 부분으로 확실히 자리 잡을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2016년부터 2020년 3월까지 레비나스의 저서 번역 2권, 국내 연구 및 해설서 7권, 해외 연구서(데리다 <아듀 레비나스>) 1권으로 총 10권이 출간되었다. 1) 5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여타 시기들에 필적하는 단행본 출간량 2) 정치, 신학 및 전문연구자들의 종합전문연구서적의 출간 3) 국내 연구자들의 해설서 다수 출간 등등 다수 정황을 볼 때 한국의 레비나스 연구의 수준은 상당한 심화를 이루고 있고, 또 이런 많은 출간량은 일반 대중의 레비나스에 대한 관심 또한 나날이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제 온전히 국내 연구자들의 해설서만이 출간되는 수준에 이른바, 이처럼 한국 연구자들이 직접 독자들에게 레비나스의 사유를 이해하기 쉽도록 곱씹어줌은 대중의 레비나스에 대한 인지도는 물론 그의 사유-특히 타자윤리학적 사유-의 중요성과 필요성의 이해의 증가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 윤희억의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을 통한 아서 밀러 극의 연구]가 2020년 4월 30일 집문당을 통해서 출간되었습니다. 윤희억 영문학 교수는 2014년부터 매년 최소 1편의 논문씩 총 7편의 논문을 기고하였습니다. 그를 모은 책을 출간한 것 같습니다. 굇수다 굇수)
- 향후 단행본 출간의 과제들
끝으로 단행본 출간에 있어 남아있는 과제들을 검토해보도록 하자. 단행본의 출간 경향은 확실히 상당한 진보와 성장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도 분명히 남아있다. 우선 레비나스는 자신 생애 동안에 약 30여권에 달하는 양의 많은 저서를 출판했는데, 한국에는 번역된 그의 저술이 10권이 채 안 되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음을 지적할 수 있다. ‘핵심 주저’가 근 몇 년 사이에 많이 출간된 만큼 여세를 몰아 여타 저술들이나 레비나스의 개별 논문들이 번역되어 수용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대교의 문제들에 대한 레비나스의 사유가 담긴 『어려운 자유: 유대교에 관한 에세이difficile liberté: essais sur le judaïsme』, 레비나스의 대표적 예술론 논문인 「실재와 그 그림자La rèalitè et son ombre」(이는 1994년 피에르 아야Pierre Hayat의 『역사에서 예측하지 못한 것들Les imprévus de l’histoire』 123~48쪽에 수록되어 단행본 번역을 통해서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강영안, 『타인의 얼굴』, 289 참조), 현상학을 위시하면서도 후설이나 하이데거의 현상학과 다른 길을 걷는 레비나스의 사유를 보여주는 『후설과 하이데거와 더불어 존재를 발견하면서en decouvrant l'existence avec husserl et heidegger』 등 주요 저술들의 번역은 레비나스에 관한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도울 것이며, 이는 자연히 풍부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필수적으로 번역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해외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심화연구서적의 번역과 출간도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세부 분야에의 적용'을 목적할 수록 더욱 시급하다. 한국보다 먼저 레비나스를 연구하였던 유럽과 영미권의 많은 연구자들은 다양한 인물들과의 비교 및 영향 관계 연구 자체를 단행본으로 출간하거나, 법, 문학, 정치, 페미니즘,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레비나스를 적용 및 해석하며 그 발전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연구해설서의 번역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레비나스 연구가 어떤 다양성을 띄는지를 확인시켜줄 것이며, 또한 해외연구자들은 과연 어떻게 레비나스 철학을 현실의 문제의식에서 재고하고 연결 짓는가하는 질문 아래 독해되면서 수용의 모범적인 사례들을 직접 접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한국 연구자들이 주도적으로 심화연구서적을 출간하는 일이 언제나 한국의 레비나스 연구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은 자명하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가 가진 관점’에서 레비나스를 바라볼 수 있는 연구서의 출간은 큰 중요성과 의미를 가질 것이다. 일례로 하이데거에 대한 출판경향을 잠깐 검토해보면, 우리가 가진 시선에 뿌리 깊은 문화적 영향을 미친 불교를 하이데거 철학과 관계 지은 연구서들은 하이데거 연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 2017년 사이 약 90권 가량의 하이데거 연구단행본 가운데 불교와의 관계연구를 주제로 한 단행본만 약 10권(11.1%)으로 전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수정, 「한국에서의 하이데거 연구」, 『현대유럽철학연구』, 제51집, 한국하이데거학회, 2017, 58-67 참조.)
이외에도 간호학, 문학, 신학, 스포츠, 예술 등 많은 분야를 하이데거 철학과 관련지어 검토하는 ‘단행본’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어오고 있다. 지속적으로 그러한 서적들이 출간될 수 있다는 것은 대중 독자들의 관심과 수요 덕분인 바, 이는 결국 하이데거 철학이 현실적 유효성을 가진 철학으로 통용되기에 나타나는 대중적 관심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우리의 관점에 기초하여 한 사유를 주제적으로 탐구한 연구단행본의 출판은 그 사유가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기 위해 이루어져야할 첫 번째 과제가 된다. 그러한 연구서들은 우리 사회가 보고 겪는 현재적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고찰할 때 하나의 특정 철학적 관점을 통해 사유하는 것을 보다 익숙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레비나스의 철학, 특히 그의 윤리적 사유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찰하는 것을 일반 대중 및 한국사회가 보다 익숙하게 느끼도록 하려면 한국 레비나스 연구자들의 심화적이고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는 연구서의 출판은 이제 박차가 가해져야만할 것이다. 그 출판이 독자들의 더 많은 수요를 불러올수록 레비나스 철학을 정치나 문화, 예술, 종교 등 많은 분야에서 접목시키는 것은 레비나스가 한국 사회의 대중들에게 보다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게끔 도울 것이며, 또 그런 만큼 “철학의 장소성에 대한 자각이 어느 때보다 활성화된 지금”(강영안 외 5인, 2017: 318)의 시대에 레비나스 철학도 한국 사회라는 장소에서 사회구성원들이 선(善)을 지향하는 경향이 더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