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에 대한 질문입니다

회페의 <임마누엘 칸트>를 읽고 있는데, 범주의 초월적 연역 장에서 판단의 주어와 술어의 결합은 사상 자체에 근거해있고,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주장된다고 나와있습니다. 또한 결합 범주의 도움으로만 초월적 자기의식의 통일에 이르며 이로써 범주는 모든 객관성을 가능케 하는 조건임이 증명된다고 합니다.

이를 범주가 초월적 자기의식을 원천으로 갖고 있고, 초월적 자기의식은 모든 인식의 객관적 조건이므로 주관적인 사고물인 범주가 객관적으로 타당해진다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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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칸트가 선험적 연역론(질문자께서 "초월적"이라고 쓰신 transzendental을 저는 편의상 "선험적"이라고 쓰겠습니다)에서 사용한 주관적/객관적의 개념쌍의 맥락입니다. 보통 한국어 일상어에서 "객관적"이라고 하면 (적어도 제 감각에 의하면) 무언가 임의적이지 않고 보편적 기준이 있을 때, "주관적"은 이러한 보편성이 없고 주관에 따라 임의적일 때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뜻을 칸트가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만, 연역론에서의 논의는 좀 더 인식론적인 차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객관적 objective"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주체 밖에 있는 대상/객체에 대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주관적 subjective"는 인식 주체와 관련된 무언가라는 뜻이죠. 이러한 용어법에서 선험적 연역론의 근원적 질문 "어떻게 해서 사유의 주관적 조건들[=인식 주체의 사유 안에 있는 범주들]이 객관적 타당성[=대상에 대한 보편적 규정]을 가지고 있는가?" (A89/B122)이 나타납니다.

만약 연역론의 증명이 성공적이라면 다음이 드러납니다.
i) 범주(=사유의 주관적 조건)가 바로 주어와 술어를 결합시키는 보편적 규칙이다.
ii) 객관적 인식(=대상에 대한 인식)은 판단(=주어와 술어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
iii) 따라서 범주(= i에 의하면 판단의 규칙)는 객관적 인식을 위한 객관적 타당성(=보편적 규칙)을 가진다.
iv) 또한 (ii에 따르면 객관적 인식을 위해서는 판단이 있어야 하므로) 판단의 보편적 규칙인 범주는 객관적 인식을 위한 필연적 조건이다.

칸트에게 선험적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곧, 범주의 적용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판단(=객관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그 원천 혹은 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i-iv에서의 주장대로, 범주가 객관적 인식을 위한 필연적 조건이라면, (이 범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을테니) 이 범주를 주어진 표상에 적용하는 자발적 행위("i think")가 있을 테고 이것이 곧 선험적 자기의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험적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데카르트처럼 명상을 통해서 직접 인식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범주의 필연성" -> "범주의 적용을 위한 필연성" 으로 침잠해가는 연역론의 논의의 끝에서 등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험적 자기의식은 범주에 대한 논의를 따라간 결과 드러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a) 범주는 (범주의 적용을 위한 필연적 조건으로서) 선험적 자기의식을 원천으로 갖고 있습니다.
b) 범주는 객관적 인식(=대상에 대한 판단)을 위한 필연적 조건이므로, (a에 따라) 선험적 자기의식 역시 객관적 인식을 위한 필연적 조건입니다.
c) 처음에 인식 주체 내부의 무언가였던 범주는 이제 선험적 자기의식을 통해 표상에 적용되어 판단을 산출하며 이러한 판단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인식 및 타당성(=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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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되었습니다. 상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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