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 로티, 그리고 그 이후: 하버마스-로티 논쟁 이후(6)

2023년 12월 12일, 서강올빼미
하버마스, 로티, 그리고 그 이후: 하버마스-로티 논쟁 이후(6)

00:00-16:20 논문에 대한 발제
16:21-1:22:07 질의응답 및 토론

발제

임연진

논문

Steven Michels, “Rorty and the Mirror of Nietzsche”, A Companion to Rorty, Alan Malachowski (ed.), Hoboken: Wiley, 2020, Chapter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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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에 대해 간략하게 쓴 것이 있어서 첨부해둡니다.


  1. Songs of the self

로티는 네하마스를 통해 니체를 배웠다. 로티의 눈에 니체는 “어떻게 보편을 지각할 것이냐가 아닌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이냐”, 즉 “사적 완성”에 관심을 둔 자였고, 이 점 때문에 비록 많은 언급되지 않으나 긍정적으로 평가된다(269). 플라톤적 진리관에 대응하여 관점주의를 내세웠다는 점 또한 그 이유 중 하나다. 이는 연대에 관한 진리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연대를 만드는 것에 로티가 관심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연하다.

그러나 로티는 니체가 ‘힘에의 의지와 영원회귀의 안내자’가 된 순간부터 전통적인 철학자들과 같아져 버렸다는 점에서 비판적 태도를 취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철학적 진리로 선언하며 플라톤으로 회귀했다(271).”

  1. Selected Affinities

로티의 철학적 작업과 니체 철학 사이에는 분명 연결고리가 있으나, 네하마스의 니체를 접하기 전인 『PMN』 같은 작업에서 니체에 대한 언급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후에 니체는 기존의 체계 철학자들과 달리 진리는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던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올려진다. 그러나 로티가 모든 점에서 니체에게 동의한 것은 분명 아니다.

니체는 고전적인 철학관인 실재론을 두려움과 르상티망의 표현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침묵, 고독 그리고 폭력을 이상화”한다(272). 이러한 니체를 보고 로티는 삐딱하다며, 그와 달리 “과학 발전이나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계몽의 산물들은 근본적으로 결함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실제 진보에 대한 좋은 수단과 희망을 담지한다”고 말한다(272-273).

또한 로티는 니체가 프래그머티즘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구체적으로 기독교를 대하는 입장은 다르다. 로티는 니체와 달리 기독교가 우리 삶에 유용하다는 입장이다.

  1. Zarathustra strikes back

로티의 니체 해석에 대해 검토한다. 로티는 크게 네 가지 ―보편적 독트린인 힘에의 의지,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 기독교의 유용성에 대한 평가, 자유주의 도덕에 대한 평가― 를 갖고서 니체 철학과 각을 세운다. 그러나 그의 니체 해석은 그의 일면만을 보고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니체의 중요한 텍스트들을 들여다보지 않았으며, 그의 철학적 취향과 편견에 기대어 니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그는 니체를 사적 창조에 귀 기울인 철학자로 여긴다. 하지만 그의 주장대로 문학을 읽는 것과 좋은 시민이 되는 것 사이에 분명한 연결고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그의 주장은 너무 나이브하다. 게다가 그는 민주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기 창조와 같은 것을 행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한데, 그는 계급, 인종, 젠더와 연결된 사회적 상황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

※의문

  1. 저자는 “로티는 니체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라며, 그 이유로 로티는 니체를 “자율성과 숭고함을 추구한 자로 그려냈다”는 점을 제시한다. 그러나 로티에게 ‘숭고함 추구’는 부정적인 용어로 쓰이고 있다(271). 따라서 “Rorty asserts, Nietzsche, succeeded – and brilliantly so”와 같은 언급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ibid.).

  2. 저자는 “푸코와 달리 니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개발하도록 독려했다”고 말하지만,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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