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 홀로코스트의 책임

이 세상에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명령을 따르는 사람, 그리고 스스로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 이 중,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 혹은 국가의 지시를 받아 이행하는 이들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공무원은 국가, 또는 이의 권리나 지위 등을 대행하는 상관의 명령을 따라 행동한다. 이러한 지시를 받는 공무원이 하는 일은 상관의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를 거역하는 것은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것이며, 국가에 거역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개개인은 명령을 이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판단이 허용되지 않으며 해당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행위자로서의 역할과 의무가 존재하는 것인가? 현실 세계에 있어서 결과론적으로 그것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더라도 보안상의 문제로 인해 해당 지시의 내막과 배경을 전부 지시를 따르는 이에게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독단을 금지하고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변형과 판단' 이 허용되지 아니할 때도 있다. 이는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군인들이나 군부정권에서 해당되기도 한다. 그들이 하는 행위를 과정론적인 관점에서 탐색할 때에는 명령에 불복종 하는 것 그 자체 만으로 법에 어긋날 뿐더러 해당 지위, 직급을 맡게 된 이유도 명령에 복종하고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기에, 명령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만이 자신의 최고선을 충실히 해 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과론적 관점에서 볼 때는 해당 행위로 인하여 벌어질 일에 대하여 명확히 인지하고 만약 해당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실패하거나 좋지 아니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 때에는 행위를 실현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다만, 이러한 판단이 거부당하거나 직위, 직급 상의 상하 관계로 인하여 이러한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행위자는 당시 상황만을 고려하며 정확하게 결과를 예측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해당 행위가 어떠한 행위이던간에 오직 상관의 명령을 받아 그대로 이행하는 것 만이 최고선이며, 이러한 행위가 해당 국가의 법률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면, 행위는 결과와 무관하게 항상 정당화 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지어, 홀로코스트의 주역 중 한명인 아이히만과 이와 대조되는 평가를 받는 인물인 소설 les miserable 의 자베르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먼저, 한나 아렌트가 저술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평범했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아이히만은 행한 참극과 별개로 인성과 천성에 관련하여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가정하도록 하겠다. 먼저,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서 근무하였던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일조한 인물이다. 다만 특이한 점으로 관찰되는 것은 전범재판에서 그는 그 스스로에게 죄가 없다고 주장한 점에 있다. 소설에서의 형사 자베르는 자신의 신념과 정의관에 따라 범죄자를 처벌하는 일에 있어 이를 숭고하게 여긴다.

각 제시된 두 인물, 자베르와 아이히만의 공통점으로 여겨지는 부분은 둘 다 상관의 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공무원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 인물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데 이의 이유는 무엇일까? 이로 추측되는 요소는 최종적인 결론에 있다고 생각된다. 즉, 우리가 아이히만을 비판하고 자베르를 옹호하는 이유는 결국 각자의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는지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가 원론적인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지만, 다만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면 과정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논할 것이다. 결론 말고도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는 결국 자신의 신념을 꺾었느냐 꺾지 않았느냐에도 있다고 보인다. 즉, 아이히만은 자신의 의무인 상명하복에 따라 독일이 패할 때 까지 명령에 따라 지시를 이행한 것과 달리, 자베르는 선행을 베푸는 범죄자를 잡는 과정 중에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이 충돌하였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범죄자를 잡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를 살해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각 인물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서 의무나 임무를 끝까지 고수하였는지 혹은 그렇지 않았는지에서도 차이점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공무원의 의무는 주어진 명령을 따르는 것인데 반해 사람들의 인식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의무를 저버린 이에 대해 관대하다. (물론 의무를 저버렸다고 표현한 점은 과격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식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주로 인류애적 공감과 결과론적 관점에서의 인식으로 인해 괴리가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즉, 공무원 그 자체의 의무보다는 인류애적 공감을 더 중요시 여기기에 만약 두 가치가 서로 충돌한다면 인류애적 공감을 더 우선시 하며, 결과적으로 일어난 행위의 결과가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에 따라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대중은 그 행위를 수행하는 이의 의지나 의무보다는 범인류적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긴다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아이히만의 경우에 대입해본다면 명령을 어긴다는 것이 곧 즉결 처형으로 이어진다 한들 이보다는 대다수의 사람을 중요시 여기며 범인류적 가치를 더 중요시 여긴다는 점에서 인간의 공리주의적 특성과 공동체주의적 특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물론 높은 직급의 경우 단 한번의 명령 불복종이 처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만 이의 경계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컫는 것이다.)

이를 일반화시키면 아이히만에게는 어떠한 죄를 물을 수 있을까? 이는 한나 아렌트가 저술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본 책에서 크게 두 가지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아이히만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였다. 이 중 하나는 '악의 평범성' 이다. '악의 평범성' 이란,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평범하게 행하는 일이 악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즉, 홀로코스트와 같은 악행은 정신적으로,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닌 국가에 순응하고 자신의 행동을 일반적이라고 여기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개념이다. 나머지 하나는 '순전한 무사유' 이다. 이는 명령이 실제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성찰하지 않은 것으로, '순전한 무사유'의 책임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나 아렌트는 더불어가는 삶에서 '사유' 란 권리가 아닌 의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를 총체적으로 살펴보자면, 결국 아이히만은 공무원으로서의 의무인 상명하복을 실천하였지만, 이가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았으며, 이에 양심보다는 직위, 직급의 의무와 그 자신을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비판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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