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와반복 2장의 시작. 물질적 반복에 관해

“반복되고 있는 대상 안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대상이 반복한다는 전제로 문장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대상이(물질이) 반복한다는 것에 별다른 설명이나 근거가 안보입니다. 무근거 전제인가요?
물질이 반복하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안끊기고 존재할 수도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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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들뢰즈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만일 안 읽어보셨다면, SEP를 보시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https://plato.stanford.edu/entries/deleuze/#DiffRepe
또, Somers-Hall - Deleuze's Difference and Repetition도 좋은 입문서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반복의 개념을 니체와 프로이트로 설명하는 걸로 기억하기 때문에, 이런 철학사적 배경이 없다면 한 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조지아 대학교에서 진행한 베르그송과 들뢰즈 강의도 있습니다:

링크: Seminar on Bergson's Matter & Memory, and Deleuze's Difference & Repetition : Richard Dien Winfield : Free Download, Borrow, and Streaming : Internet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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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부분은 들뢰즈의 독단적인 주장이 아니라 흄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구절 <하지만 “반복을 응시하고 있는 정신” 안에서는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 또한 그렇구요.
그리고 <—->에 집중하여 반복이 종합과 관계된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 들뢰즈의 의도이구요. 변화는 응시하는 정신 안에서, 즉 정신 안에서 새로운 차이를 생산한다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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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드립니다!

"반복되는 대상 안에서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반복되는 대상이라는 게 가만히 있는 물체도 뜻하는 걸까요?

가만히 있는 물체가 반복한다는 것이 좀 특이한 용법 같아서요.

위의 yhk님이 언급하신 서머스 홀의 들뢰즈 해설서가 일부 번역되어 있습니다. 관련 부분 링크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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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좋은 자료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걸 봐도 '가만히 있는 물체' 또한 '반복(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이라고 할 수 있는 지는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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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고 왔습니다. Hume - A Treatise of Human Nature 1.4.2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물체가 반복되면 우리의 인지와 별개로 동일성을 가진 물체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개념은 우리의 잘못된 믿음 (vulgar belief)일 뿐입니다. 물체자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흄이 1.4.2에서 말하는 vulgar입니다. 그래서 들뢰즈도 저 말을 한 이후에,

However, given that repetition disappears even as it occurs, how can we say 'the second', 'the third' and 'it is the same'? It has no in-itself.

와 같은 말을 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전 들뢰즈를 잘 모르니 너무 신뢰는 안 하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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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합니다. 흄은 물체가 가만히 있는 것도 '반복'이라고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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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물체가 가만히 있다"라고 말하는 것도 동일성을 적용하는 것이고, 흄이 1.4.2에서 말하는 vulgar philosophy의 한 형태일 것 같습니다. 동일성을 적용하는 것이 반복에 의해 생긴 vulgar belief니깐요. 다음 단락을 보시죠.

"[Our beliefs in the continued and distinct existence of objects] are intimately connected together. For if the objects of our senses continue to exist, even when they are not perceiv'd, their existence is of course independent of and distinct from the perception; and vice versa, if their existence be independent of the perception and distinct from it, they must continue to exist, even tho’ they be not perceiv’d" (1.4.2.2)

여기서 흄은 두 가지 동일성을 적용합니다. 첫번째는 지속된 존재 (continued existence) 고, 두번째는 별개의 존재(distinct existence) 입니다. 지속된 존재는 우리가 인지하지 않을 때도 존재하는 것, 그리고 별개의 존재는 우리의 인지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Steve 님이 말씀하신 가만히 있는 물체라는 건 이 지속된 존재와 별개의 존재를 전제하고 계신 걸로 보이고, 흄은 이 전제가 vulgar belief고, 부정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전 흄의 반복을 물체의 반복과 인지의 반복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물체가 인지와 상관없이 반복되면 객관적 동일성, 이런 반복을 보고 우리가 동일성을 유추하면 유추에 의한 동일성이겠죠. 하지만 이런 것들 역시 물제 자체로 갖고 있는 성질이 아닙니다. 이것을 물체 자체에 적용시키게 되면 위에서 말한 vulgar belief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 제가 흄 전공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아서 여기다가 예측을 적어봅니다. 지금 제 앞에는 바세린 통이 있습니다. 꽉 차있죠. 하지만 다 쓰고 나면 빈 통이 될 겁니다. 꽉 차 있는 바세린통과 빈 통을 우리는 동일한 물체로 봅니다. 같은 통이 반복됐다고 보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반복은 vulgar belief 에 불과하기 때문에 동일성을 부여하면 안 된다라고 흄은 말할 것 같습니다.

+) 지금 더 생각해보니, 물체가 가만히 있는 것 역시 그 물체의 순간들의 반복이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물체가 동일성을 띄는 물체다, 혹은 그 순간들이 하나의 물체를 형성한다라고 하는 것은 vulgar belief다, 라고 할 것 같네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덕분에 새로운 생각하게 됐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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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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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차이와반복에서 저 문장 읽을 때, 존재론적으로 '가만히 있는 물체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공중분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보긴 했습니다.

들뢰즈와 흄 사이에 관한 흥미 있는 논의를 더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들뢰즈와 관련도 없고 사소한 문제이지만, 저는 흄의 'vulgar belief'라는 표현이 '잘못된 믿음'보다는 '통속적 믿음', '일상적 믿음' 정도로 번역되면 좋지 않을까 하여 한 가지 첨언을 하고자 합니다(제 기억에 한국어 번역본은 '저속한'으로 번역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흄은 '통속적 믿음'을 (이와 대비되는 로크적인 표상주의적 '철학적 체계'에 비해) 긍정하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여기서 논의되는 vulgar belief는 (자연주의적 흄 해석에 의하면) 우리가 믿지 않을 수 없는 '근본 신념(fundamental belief)' 중 한 가지인 '물체의 지속적이고, 판명한 존재(continued, distinct existence)'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yhk9297님께서 잘 설명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흄의 질문은 "물체가 과연 존재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있지 않고 "어떤 원인들이 우리를 이끌어 물체의 [지속판명한] 존재를 믿게 만드는가?"에 있습니다. 흄에 의하면, 전자의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물체의 존재는 오히려 "우리의 모든 추론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전제("요점")이기 때문입니다(T 187).

통속적 믿음에 대한 흄의 관점에 대해 Ainslie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히려 그[흄]의 관심사는 "철학자들"이 그럼에도 통속적인 이들의 신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 그는 정신에 대한 철학적 관점을 세계에 대한 통속적 관점과 동일한 과정에 의해 구조화되는 것으로 취한다. 그러므로 그는 후자를 불신임하고자 전자를 사용할 수 없다. Rather his concern is how “philosophers” can nonetheless describe what the vulgar believe. (...) he takes the philosophical perspective on the mind to be structured by the same processes as the vulgar perspective on the world. Thus he cannot use the former to discredit the latter. (Skepticism: Historical and Contemporary Inquiries, ed. G. Anthony Bruno, A.C. Rutherford, 2018. p. 34)

덧붙여서, 우리가 철학적인 순간일 때조차도 vulgar하다는 사실을 흄이 우리에게 가르치려 했다고 Ainslie는 말합니다(p.39). 다시 말해서, 철학적 체계는 통속적 믿음을 매개로 합니다.

흄이 인간의 근본 신념들을 "오류", "환상", "거짓" 등의 부정적 표현으로 지칭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vulgar belief 자체를 흄이 부정해야만 할 것으로 보았다 볼 수는 없습니다(그의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상력'에 대해서도 역시 그는 부정적인 서술어들로 지칭한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흄의 입장에서 근본 신념들에 대해 우리는 부정할 여지조차 없습니다. 전제가 되는 이 신념들은 회피불가능한("unavoidable") 것이기 때문입니다(Coleman, Hume`s Alleged Pyrrh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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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이라는 것은 '사라짐'을 전제로 하며
만약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무상한 것이 아닌 영원한 실체가 있다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만약 무상한 것이 진리라면, 지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만히 있는 물체도 사라지고 나타남을 반복한다는 것일 듯 합니다.
그냥 제 추측입니다.

말씀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물체 자체가 동일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지, 물체가 우리와 별개로 존재를 갖고 있다는 것을 흄을 부정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흄은 Intrinsic notion 과 objective notion을 구분하고, 전자를 부정하고 후자를 채택하는 것 같은데, 제가 저 글을 쓰면서 이 구분을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놓친 것 같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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