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철학적 정신분석학자 윌프레드 비온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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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fred Bion (1897-1979)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 이후 여러 조류로 발전했습니다. 자아심리학, 자기심리학, 대상관계이론, 라캉주의 정신분석학 등. 이들은 프로이트의 사상 중 일부를 포착해 이론적으로 재구조화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대상관계이론은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이론 중 하나로 현대 정신분석학의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대상관계이론의 사상가들 중 윌프레드 비온은 특이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상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라캉과 비견될 만큼 어려운 글을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 심오하다고 평가받아 현대에도 그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후기 클라인주의 대상관계이론가로 평가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사상가로 평가받는 것이 그 증거가 될 수 있겠습니다.

비온의 사상은 클라인주의 대상관계이론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기에 이를 먼저 설명하고 비온과 클라인주의 대상관계이론의 관계를 밝힌 다음 비온의 독자적 사상을 소개하는 순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대상관계이론은 멜라니 클라인(1882-1960)의 업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개인에게는 외적 대상(현실)과 내적 대상(심리)가 있고 내적 대상에 사랑 또는 증오를 느낍니다. 때로 이 둘은 같이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때 그 개인은 대상을 부분화 시켜 다른 부분과 분열시킵니다.(여기서 생긴 대상을 부분 대상이라 합니다.) 이 때 그 개인은 망상분열적 위치에 자리잡습니다. 이후 어떤 계기로 사랑을 느끼는 부분 대상과 증오를 느끼는 부분 대상을 하나의 전체 대상으로 통합시키면 그 개인은 망상분열적 위치에서 벗어나 우울적 위치에 자리잡습니다.

위 기술이 클라인주의 대상관계이론의 개요이며 이는 보통 어린아이가 모친을 내적 대상으로서 다룰 때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는 처음에는 엄마의 젖가슴을 통해 망상분열적 위치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후 엄마를 전체대상으로 인식해 우울적 위치로 진입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우울적 위치로의 진입이 끝이 아니라 개인의 일생에서 다른 대상이 끼어들면서(이는 투사와 내사라는 작용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 두 위치는 교대로 등장합니다. 개인에게는 또 다른 위치가 없으며 이 둘을 끝없이 교체시키면서 정신적 성장이 일어나게 됩니다.

클라인주의에서는 정신의 병리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좋은 부분대상(젖가슴)을 만나지 못했거나 망상분열적 위치와 우울적 위치의 교체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해 튼튼한 내적 대상을 만들지 못해서 외적 대상의 자극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부재한 상태로 봅니다.

비온은 이와 같은 사샹을 토대로 삼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비온이 한 업적은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발생시키는 동인인 사랑과 증오에 지식을 추가해 우울적 위치와 망상분열적 위치의 교체를 명확하게 설명했다는 것이 있습니다.

망상분열적 위치에서 우울적 위치로의 교체는 부분대상들의 통합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을 한 데 엮을 제 3의 동인을 필요로 했고 비온은 이를 지식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비온이 자주 언급하는 병리적 유형은 사랑 또는 증오 때문에 대상에 대한 배움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입니다. 비온은 종종 사랑도 배움을 방해할 때가 있다고 봅니다. 비온은 이를 지식 자체가 정서적 경험에서 비롯한 언어의 의미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들어 설명합니다. 여기서 사랑에의 의존에서 벗어나는 지식의 길을 변항과 불변항의 도입을 통해 다룹니다. 의미의 부분들 중 불변적인 것을 찾아 지적 성장을 이뤄내는 것입니다.

비온은 전기 비온과 후기 비온으로 나눠서 다뤄집니다. 전기 비온은 클라인주의에 대한 깊은 연구로 특징지어지며 그로써 대상관계이론을 소개하는 책에서도 여기까지만 자주 소개됩니다. 후기 비온은 신비주의적인 탐구로 특징지어지며 클라인주의에 철학적 모티브(칸트, 흄, 버클리, 에크하르트, 헤겔 등)를 다수 채용해 이를 심화시켰습니다.

후기 비온의 대표작으로는 <변형들> (1965, Transformations)가 있습니다. 여기서 비온은 O개념을 도입합니다. O는 object를 줄여 만든 것입니다. O는 개인이 절대 다다를 수 없지만 지적 성장을 통해 다가가고 또 다가가길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어떤 대상으로 정의됩니다. 칸트의 물자체 개념과 유사한데 실제로 이 책에서 칸트에 대한 언급이 꽤 등장합니다. 우울적 위치와 망상분열적 위치의 교체는 그 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O가 기저에 깔려 있어 이뤄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제 후기 비온이 정의한 정신분석학적 치료는 분석가가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O를 찾을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비온은 적어도 지금까지 읽어본 정신분석학자들 중에서 가장 현상학과 가깝습니다. 비온이 종종 역사보다 직관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습니다.(여기서 역사는 무의식 안에서의 역사를 말한다기보다 그 사람에게 영향을 준 사건들의 시간적 연속체를 의미합니다. 외상적 사건들의 세부사항이 이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비온은 자기의 사상을 직관적 정신분석학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분석가가 환자의 의식에 무의식적으로 결부된 것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해 O로 가는 길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비온은 환자의 사고가 어느 형태를 띄고 있는지를 두 축으로 분류한 다음 행렬화시켜 좌표를 만듭니다. 한 축은 환자의 사고 내용의 종류이고(꿈사고, 신화, 과학적 연역체계 등) 다른 한 축은 사고 방식의 종류입니다(주의, 탐구 등). 비온은 분석가가 이를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신분석학적 직관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변형들>의 역자인 홍준기는 역자 후기에서 비온이 기존의 정신분석학이 못 다루는 것을 다루기 위해 정신분석학을 보편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수행했다고 주장합니다. 비온은 사고의 유형화와 역동적 변형과정을 도입해 정신분석 과정 전체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정신분석학 안에 들이려는 시도를 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다.

  1. ed. 카탈리나 브론스타인, <현대적 관점의 클라인 정신분석>, 홍준기 역, 2019, NUN출판그룹.

  2. 윌프레드 비온, <변형들>, 홍준기 역, 2018, NUN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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