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열,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서문」,「샌델이 철학하는 방법」 요약

요약을 처음 해봐서 진이 다 빠지네요 ㅋㅋㅋㅋ
뭔가 읽은 책에 대해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고 철학적인 텍스트를 읽고 요약을 해본것도 처음이라서 어색한 부분이 많습니다.
책의 본문에서 논증을 뽑아내는건 어떻게든 할수있겠는데, 핵심을 가려내지 못하고 모든 논증을 다 써보려고 하니까 너무 글이 길어지는 느낌입니다;;;;
시간이 되면 2장과 3장도 요약하고 싶은데 제발 이번만큼 글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자는 변호사이자 방통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시고 있고, 롤즈의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를 소개하시는 분인것 같습니다.
(저자의 블로그civiledu.org에서 정치철학과 롤즈 관련 논문들을 번역해서 올려주고 계십니다)
이 책은 그런 롤즈의 입장을 바탕으로 샌델을 비판하는 책입니다.
(그러나 샌델의 논문들까지 인용하시는걸 보면 샌델도 상당히 주의깊게 살펴보시는 것 같습니다.)
2장,3장,4장의 내용은 공리주의와 자유지상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샌델의 비판과 저자의 옹호입니다.(
저자도 자유지상주의는 비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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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열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특정입장을 뚜렷하게 지지하지않는 온건한 정치철학 개설서 정도로 받아들여지지만, 샌델은 정의와 권리를 말하는 철학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샌델은 정의의 원칙과 권리를 논하는것이 공동체의 임무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다.
또 이민열은 일견 겸손해보이는 책의 자세와는 다르게 샌델식의 사고는 한국사회에서는 특유한 해악과 전염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샌델의 주장이 한국사회에 자유주의1)에 대해서 가지고있는 공공연히 퍼진 오해와 정치철학적 견해를 강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만큼 정치와 정의의 내용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정열적으로 논쟁을 하는 시민들도 드물다.
그러나 이민열은 한국사회의 시민들은 각자 자신들이 옹호하는 가치와 당파로 갈려서 열심하게 주장하는 겉보기와는 달리,
정의를 명백한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이민열은 이름도 처음들어보는 외국 정치철학자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이렇게 많이 샀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 퍼진 정치관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논증을 책임있게 정당화하길 원하며,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가진것처럼 보이는 여러 가치들사이에서도 명백한 선택을 내리고싶어한다.
그렇다면 정치철학은 시민들이 비교적 명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숙고된 판단(도덕적 능력이 왜곡되지 않은 채로 내린판단.2) '노예제는 그르다.
' 다른 사람의 돈을 뺏는것은 옳지 않다. )을 해명하거나 다른 정치적 쟁점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지침이어야한다.

  • 정치철학의 임무

이를 위해서 이민열은 정치철학이 다양한 가치(자유, 평등, 행복 등)들간의 우선순위를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치들간의 관계를 미리 정립하지 못한다면, 정치관은
1.다른 정치적 쟁점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못하거나
2.구체적 사안들에 직면하면 원칙이 직관의 왜곡에 휘둘리기 쉽거나
3.다른 쟁점들에 관해 가지고 있는 숙고된 판단과 맞지않는 경우가 있어 정치관의 정합성을 잃기 쉽기때문이다.

이민열은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대학생을 제외한 사람의 과외 교습을 금지한 법률은 위헌이라는 판단이 타당한가?''
라는 정치적 쟁점에 답하는상황을 예시로 든다.
이 쟁점에 ''이 사례에서는 평등이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과외를 허용하면 부자들의 자식들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불평등하다. 따라서 과외는 금지해야 하고 그 법률은 합헌으로 판단했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민열은 이런식의 논증이
1.다른 쟁점들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2.정치관의 정합성을 잃기 쉽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평등 간의 관계를 미리 정립하지않고 사안의 일면만 보아서 특정 가치를 옹호하기때문에,
저런식의 논증은 사실 '규범적 질문들마다 각기 다른 답이 숨어있다.'라는 전제가 숨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은 그런식의 전제를 내세우지않더라도, 다른 쟁점들에 관해 가지고 있는 숙고된 판단들과 충돌하면 원칙의 일관성이 흔들리기 쉽다고 주장한다.
(이민열이 예로 든 숙고적 판단: ''다른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미치지 않는 행위까지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자격증 및 어학학원도 금지해야하지않는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수영선수는 다른 선수보다 나은 코치를 둬서는 안된다고 금지하는것은 지나친것같다''.3) )

결론적으로 정치철학은 최대한 가치들간의 우선순위를 밝혀서 정합성있는 원칙을 만들어야한다.
또 이민열은 그러한 정치원칙은 다른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판단을 새로 내릴수도 있고, 이미 있는 숙고적 판단들을 해명할수도있지만, 반대로 숙고적 판단이 원칙
을 고칠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존 롤즈가 '반성적 평형'이라고 밝혔던 방식이다.
우리는 자연에서 도덕적 명제를 도출할 수 없기때문에, 도덕규범은 또 다른 규범과 판단들로부터 정당화가 되어야한다.
그러나 도덕적 명제는 우리의 자의적인 판단에 휘둘리기 쉽다.
그래서 정합성을 위해 우리는 판단과 원칙들이 서로 최대한 넓게 지지되는 '가치의 그물망'을 만들어야한다고 이민열은 주장한다.4)

  • 정치철학들이 가격폭리 처벌법을 대하는 방식

그렇다면 샌델은 그러한 가치들간의 우선순위를 밝히고, 판단과 원칙으로 서로 지지되는 정치철학을 소개하는가?
이민열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선 이민열은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허리케인 찰리의 사례'를 논한 부분을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허리케인 찰리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수해 피해자가 생겼다. 숙박시설 이용료와 생필품 가격도 치솟았다. 이때 상인들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매기지 못하도록 가격 폭리 처벌법을 도입하는 것은 정의로운가?''
이민열은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한 정치철학의 논증들을 소개한다.

'행복의 이론' 공리주의 ㅡ 모든 행위들은 행복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한다. 따라서 가격을 높여받는 것이 무조건 부정의하다고 말할수없다.
재난지역에서 물품을 공급하는 것부터가 상인들에게 기본적인 부담을 준다.
따라서 가격상승을 법으로 금지한다면 오히려 물품이 공급되지않아 피해자들의 고통이 늘어날것이다.
우선 상인들의 수익을 보장해서 물품의 공급을 늘리고, 재난 피해자들에게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상인과 피해자들 모두의 고통을 경감시킬수있다. 다만 숙박시설같은 공급이 고정되있는 재화는
규제할수있다.

'자유의 이론' 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가 아님!) ㅡ 자유주의는 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자유로워야한다고 생각하기때문에
계약의 무조건적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공리주의와 같은 흐름으로 가격을 높이 매기는것은 허용하되 숙박시설은 규제할수있다.
그러나 상인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공급할 의무만 지운다면, 재난의 고통을 상인들에게만 떠넘긴것과 다름없다. 이는 '평등한 배려'에 위반된다., 따라서공동체 전체가 세금으로 지원해야한다.

'미덕의 이론' 샌델의 공동체주의 ㅡ샌델:이 사례는 단순히 행복과 자유에 관한 논쟁에 그치지 않는다!
행복과 자유도 좋지만 미덕을 고려해야한다. 남의 고통을 이용해먹으려는 상인들의 탐욕이 도를 넘었다.

이 사례에서 샌델은 행복과 자유도 '좋지만' 미덕도 따로 고려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치들 사이의 관계를 얼버무린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
예를 들어 공리주의에서는 모든 미덕과 악덕 '조차도' 행복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서 평가할것이다.
샌델은 모든 가치들을 접어두고 미덕을 따로계산한다.
또 이 사례에서 샌델은 상인들의 '악마의 거래'가 필요할때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언제 미덕을 적용해야하고 언제는 적용하지 않는지 뚜렷한 원칙을 제시하지 못한다
.
이민열은 A사례에서 a라는 미덕이 타락하고 B사례에서 b란 미덕이 타락한다는 식의 논증으로는, A사례와 B사례에서 공통적으로 가지고있는 심층적원리를 포착할수없고 A사례에서의 판단이 B사례를 판단하는데 아무 도움을 줄수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샌델의 정치철학은 원칙과 판단이 서로를 지지하지 않고 가치들간의 우선순위와 관계를 드러내지않는다.

  • 사안의 일면만 강조해 보았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민열은 또한 샌델의 저서에 나오는 구제금융의 사례를 소개한다.
''금융위기 때문에 어려움에 빠져 구제금융을 받은 월스트리트 회사들의 보너스 파티는 잘못되었는가?''
샌델은 이번에도 자유와 행복이라는 가치로는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금융회사들이 실패를 포상했기때문에 성공의 미덕을 저버렸으며,
따라서 보너스파티는 잘못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샌델의 미덕론을 끝까지 밀고나가면 분명히 우리의 숙고된 판단과 배치되는 부분이 생긴다.
실패를 포상하는것이 잘못이라면 실업수당은 노동시장에서의 실패를 보상하는 것이 아닌가?
의료보험 또한 건강관리의 실패를 보상하는것이 아닌가? 물론 샌델은 저런 사례들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고려해야할 또 다른 미덕과 악덕을 끌어들이겠지만, 이민열은 두 사례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드러내려면 가치들간의 관계를해명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구제금융은 회사들이 연달아 파산해서 경제에 더큰 위기가 올까봐 실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민열은 공적자금인 구제금융으로 보너스파티를 했다면 그것이 실패에 대한 포상이던지, 성공에 대한 포상이던지 상관없는 횡령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민열은 월스트리트에서 거품을 부추긴 회사들은 경제위기를 가져왔으므로 국유화되거나 매우 높은 사회적규제를 가져와야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경제제도 하에서 이득은 소수에게 부담은 전체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샌델식의 미덕에 의한 해결책은 가치들간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기때문에, 다른 규범적 고려사항을 제대로 살피지못하게한다.
따라서 사안의 특정측면만 고려한후 바로 결론으로 달려갈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민열은 샌델이 일관된 원칙으로 지지되지 못하고 자의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것이 샌델 이론의 본질적인 성향이라고 본다.
샌델은 일관되고 정합성있는 원칙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공동체의 구체적삶, 우리가 직접 써나가는 이야기와 유리되어있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따라서 샌델이 규범적 문제들을 칸막이로 나누고 각각의 사안에서 구체적 판단을 내려야한다고 생각하는 특징은 샌델 본인도 의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민열은 가치들간의 관계를 미리정하지않고 각각의 사안에 직면하여 구체적 판단을 내린다는것은 '문제를 풀 장비는 궁핍하게 만들어 놓고, 문제는 엄청나게 복잡하게 만드는' 행동이며 판단의 합리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선택권이 너무 많이 늘어나면 오히려 판단을 주저하고 애초에 가지고 있던 직관을 따르는 '판단마비'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샌델은 이러한 구체적 판단이 독단적이라고 비판받으면 '우리는 좋은 삶에 대한 공동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럴수밖에 없다'
라고 주장할것이다.

그러나 이민열은 샌델에 대한 국내학자 김영기의 비판을 소개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써 나갈 때에, 나와는 다른 이야기를 써 나가는 타인들과 타협하고 조정하기도 해야 한다. ---- 그렇다면 이때 우리는 무슨 기준에 의해 우리의 이야기를 조정해 나갈 것인가? 전체가 지향해야 할 목적을 잘 발견해서 조화롭게 잘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지만 공허하다. ---- 우리가 문제상황에 부딪혔을 때 문제를 해결할 구체적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적 제도나 정책, 정의 여부를 평가할 구체적 원칙을, 구체적 기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5)

그러나 이민열은 샌델의 방법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도, 그 주장에서 '샌델의 이론을 따르는것은 옳지 않다'라는 결론이 바로 따라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샌델이 자신의 이론을 고집하는이유는 20세기에 지배적이었던 도덕철학들(공리주의,자유지상주의,자유주의)이 하나같이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기떄문이다.
그래서 이민열은 샌델을 올바르게 비판하려면 기존의 도덕철학들에 대한 샌델의 비판을 살펴봐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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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civiledu.org에서 자유주의liberalism와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구별이 필수적이며,
    나아가 자유지상주의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빼고 '소유권리론'으로 번역하는것이 나을수도있다고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라는 단어는 자유를 최우선으로 여길것같지만, 정작 소유권과 계약의 무조건적 자유를
    옹호하는 입장이라 오히려 자유를 억압할수도 있는 입장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2. 이민열,『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20p 본문에서는 주저하면서 내린 판단,별 확신이 없는 판단,당황하거나 놀랐을때 내린판단, 자신의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얽매인 판단 등을 예로 든다. 롤즈의 개념인것 같다.

  3. 이민열,『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19p

4.이민열,『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39p

5.김영기, ''마이클 샌델의 정의관 비판- 『정의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경북대학교 동서사상연구소 논문집 제10집, 2011년, 17~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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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열 선생님의 비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너무 원론적으로만 맞는 말이기 때문에 샌델에 대해 그다지 강력한 비판이 아닌 것 같아요. 가령,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라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은 너무 손쉬운 비판이죠. 따져 보아야 할 지점이 두 가지예요.

(1) 『정의란 무엇인가』가 덕 윤리에 대한 입문서라는 사실을 간과한 게 아닌가?

샌델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굳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집중적인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게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아 보여요. 물론, 이 책이 한국에서 2010년대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책인 것은 맞지만, 사실 전문 연구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책은 그냥 덕 윤리의 취지와 특징을 소개하는 개괄적인 입문서일 뿐이거든요. 본격적인 학술서가 아니라 입문서인 만큼, 이 책이 이야기하는 덕 윤리에는 구체적인 정치관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지는 않은 게 당연하죠. 오히려 입문서를 상대로 "현실의 쟁점들을 판단할 구체적이고 정합적인 정치관을 제시하라!"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 과한 게 아닐까요?

(2) 덕 윤리가 정말 정치적 쟁점들을 판단한는 데 원칙을 제시하지 못할까?

덕 윤리가 규범 윤리로서 뚜렷한 원칙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덕 윤리에 대해 자주 제기되는 일종의 '교과서적' 비판이에요. 그런데 이것도 교과서를 넘어서는 차원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실 덕 윤리는 특성상 수많은 개별적 원칙들을 제시하는 윤리일 수밖에 없거든요. 원칙들이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원칙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해서, 개별 상황별로 하나하나 원칙들을 따져야 하는 게 덕 윤리의 특징이죠.

수많은 덕들 중에서 어떤 덕들을 강조하는 덕 윤리의 체계를 구상할 것인지에 따라 원칙들은 상당히 다양할 수 있어요. 매킨타이어가 강조하는 것처럼, "누구의 정의이고, 어떠한 합리성인지(whose justice, which rationality)"가 중요한 문제인 거죠. 바로 이 점에서 '덕 윤리'를 옹호하겠다거나 비판하겠다는 주장은 다소 공허해요. '어떤 덕 윤리'인지에 따라 원칙들이 너무나 다양한데, 정작 이런 다양성은 '덕 윤리'라는 큰 표제 아래에서 묶일 때는 일일이 말해질 수 없죠. 그래서 마치 덕 윤리가 아무런 원칙도 제시하지 못하는 윤리인 것처럼 오해되기도 하고요. 단일하고 절대적인 윤리적 원칙이 없다고 해서 원칙들 자체가 없는 건 아닌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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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감사하게도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제가 책을 안 읽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youn님의 의견에 대답할 거리가 생긴것같습니다.

1. 덕윤리는 정치적 쟁점들을 판단할수있는 원칙을 제시할수있으며, 여러가지 덕에서 여러가지 원칙들이 나오기때문에 덕윤리를 하나로묶어 비판할수없다.

youn님께서 말씀하시는 덕윤리의 '원칙'과 저자가 말하는 '원칙'의 의미는 조금 다른것 같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롤즈는 정치철학이란 우리의 숙고적 판단
(사람을 죽이지말라, 돈을 훔치지말라...)을 해명하고,
또 새로운 사안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여러 직관들과 가치들로 넓게 지지되는 판단원칙을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책이 정말로 주장하는것은 '샌델의 이론은 아무 원칙도 제시할수 없다'가 아닌,
넓게 정당화가 되는 원칙을 제시하라인것같습니다.

'넓은 정당화'의 한 예로 5장에서 이 책은,
(특히 정치적 논의에서) 특정 '미덕'을 따라야한다고 말할떄,
우리는 이미 '무엇이 이사회에서 허용되는 권리이고 무엇이 권리가 아닌가'라는
특정한 의무,권리의 개념을 전제할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샌델은 이런 관계를 명료하게 해명하지않고
'미덕'이 '의무,권리'와 같은 차원에서 경쟁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책의 내용을 받아들인다면,
자비심을 키우려면 이럴떄 이렇게 행동하고,
시민적 덕을 키우려면 저럴때 이렇게 행동하라...라는 것은
그냥 그때그떄 새로운 '판단'을 내리는 것에 불과하거나,
'일상적인 도덕원칙'이라고 말할수는있겠으나 저자가 말하는
'원칙' 과는 차이가 있는것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공동체에 내재된 공동체만의 덕에서 그에맞는 원칙이 나올수있다'
는 공동체주의적 덕윤리가 등장한 배경도,
자유주의의 공허함을 지적하면서 나온것이라고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비판을 반박하면서 롤스식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것 또한 충분히 '다양한 덕윤리'에 대한 비판이 될수있다고 생각합니다.

2.'정의란 무엇인가'는 덕윤리의 취지와 특징을 소개하는 입문서이다.
따라서 구체적 정치철학을 제시하라는 것은 부당한 면이 있으며
저자의 비판은 공허하다 .

우선 저자는 샌델의 여러 저작들과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입장은,
'공동체가 구성원들의 좋은 삶을 판단해야한다'
라는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그것이 샌델과 다른 이론들과의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이 언급하는 샌델의 여러 저작들에서 나오는 구체적 결론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결론들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몇가지 예를들어, 장기매매, 국기모독죄,탄소배출권, 폐쇄적종교공동체의 문제)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나오는 결론들마저도 이 책이 비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샌델은 장애인응원단원,모병제,가격폭리처벌법의 문제들에서,
행위의 목적을 무엇으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애초에 목적이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각각의 행위가 정의/부정의하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저자는 샌델의 도덕추론이, 원칙이 선명하지못하고,
단순 직관에 의존할수밖에 없는 이유를 몇가지 소개합니다.
그 이유들 중 일부로는, 샌델표 미덕개념의 불명료함, 목적론적추론의 한계, 심층적 원칙을 제시하겠다는 자유주의의 비전보다, 각각의 사안에서 공동체의 미덕을 키우는 선택을 그때그때 내려야한다는 미덕의 이론이 우월하다는 샌델의 생각 등등이 있습니다.

이렇게본다면, 정의란 무엇인가의 두루뭉술한 서술은,
너그러운 입문서로서의 미덕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이론에 내재한 결함때문에 일어날수밖에없는 느낌이라고 볼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렇게 해석한다면,
두 책 사이의 관계는 말씀하신것처럼 너그럽고 포괄적인 개론서맞는 말이긴한데 공허한 비판이아니라, 그저 여러가지 사안에서 대립하는 두 이론이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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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저자도 샌델의 공동체주의가 그의 다른 저작들에 비해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선명하게 드러나지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책의 목적이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렇게까지 사악한 책이었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긴합니다. 저자의 목적도 샌델의 전체 이론을 반박하는것이지,
<정의란 무엇인가>의 출판사 와이즈베o의 분들과 번역자선생님까지
비판해야한다! 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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