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가 필연인가

안녕하세요,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 혼자 판단이 잘 안돼 글 작성해봅니다. 어느 카테고리에 올려야 할지도 몰라 일단 잡념 페이지에 올려봅니다..!!
며칠 전, 학교 수업으로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선생님께서 주신 문제에 질의응답을 하였습니다. 그 질문 중 하나는 '인간의 현재 삶은 우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지, 아니면 필연적인 결과라고 보는지 서술하시오'였습니다.

저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답했습니다. 무신론자(하지만 아직 제 사상이 굳게 정립된 것이 아니라 훗날 바뀔 수 있다고도 봅니다)인지라 운명은 아니고, 여러 선택이 쌓이고 쌓여서 나온 결과가 삶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받고 휘말려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당장 눈 앞에 이루어진 결과만 보고 우연이라고 믿는 것이라 주장하였습니다. 또, 적어도 '만약에'라는 가능성을 꺼낼 수 있다면 우리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뜻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쓰다보니 궤변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긴 했는데... 막상 글로 정리하니 제가 뭘 말하고 싶은지도 헷갈렸습니다. 주변인과 얘기해보고 싶었지만 주변에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여기에 올려봅니다. '인간의 삶은 우연인가 필연인가'에 대한 답변도, 아니면 제 궤변에 대한 지적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생각이 잘못되었고, 구멍투성이일 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이 진짜 진리의 일부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 제일 부끄러운 일입니다. 부디 의견 말해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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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면, 필연적인 것과 선택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필연적이면 선택을 하지 못한다고 하니깐요.

스피노자를 흥미롭게 보실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 역시 모든 것은 필연적이고 결정론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과 굉장히 비슷한 말을 E1append에서 하기 때문에 그쪽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E1append라는 표기는 <에티카> 첫번째 파트의 부록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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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볼 때, 우연/필연이라는 개념이 엄밀히 정의되지 않은 듯하네요.

@Miwon 님은 필연 - 인간의 자유의지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 결단 가능하다는 점)와 연관시키고, 우연을 그렇지 않는 것으로 보시는 듯합니다.

근데 이게 좀 뒤적여보면 딱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게 될 겁니다.

우연에서는 통상 랜덤(randomness)가 포함됩니다. 말 그대로, 운에 달린 일이죠. 가장 극단적인 예시로는 어떠한 인과 관계조차 성립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볼 수 있을 겁니다. 펜이 갑자기 터지고, 나무가 당나귀가 되고.
이런 랜덤과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인간의 자유의지적 행동은 필연적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필연'이라 할 때, 보통 우리는 좀 더 '엄격히' 정의된 행동을 필연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어떤 물건을 쳤을 때 그 물건이 멀어지는 것은 "물리적으로" 필연적이죠. 아니면 1 더하기 1이 2인 것도 필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떠한 "상황 조건", 즉 원인이 동일하다면 결과도 동일하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그런데 통상 자유의지를 말한다함은, 인간의 행동이 "동일한 원인"에 의해서 "동일한 결과"가 산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행동이 랜덤하지는 않죠.)

따라서 세분화하면 이렇습니다.

랜덤 <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 < (물리학적/수학적/논리학적)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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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필연성이라면, x가 필연적이다 iff x가 일어나지 않으면 모순이 생긴다 -- 라고 이해하고 있어서, 살짝 헷갈렸습니다. 보통 선택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즉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하니깐요.

제가 경험한 궤변은 개념을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데에서 오는 거였군요. 조금 더 생각해보고 판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답변 감사합니다!

(1) 인과론과 자유의지는....정말 어렵고 도무지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런 학문이니....편하게 편하게 생각을 정리하시면 될 듯합니다.

필연성/우연성과 (자발적) 선택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정의하는 일이 필요하겠지만, 작성하신 글을 보면 궤변이라고 할 것은 아니고,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법한 생각으로 보입니다(사실 이 주제가 사람들을 철학에 기웃거리게 만드는 가장 유명한 주제 중 하나입니다). 자연법칙이 아닌 타인들의 선택이 개인의 행위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살짝 다르지만, @yhk9297 님께서 언급하셨듯이 글에서 피력된 입장은 (스피노자 등으로 대표되는) 결정론적인 입장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스피노자식의 결정론이 레퍼런스로 언급되었으니, 저는 결정론의 반대편에서 자유의 가능성을 옹호한 칸트를 참조해보시기를 추천하겠습니다. 칸트는 나의 행위가 인과적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점과 내가 나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위한다는 두 가지 명제가 양립 가능함을 보이려 했습니다. 인간의 행위는 이러저러한 물리적, 생물학적 원인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한 바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칸트의 말대로 인과적 결정성과 자유의지가 양립 가능하다면 "필연적인가, 우연적인가?"라는 질문은 사실은 거짓 딜레마를 감추고 있는 질문일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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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개념이 들어오면 또 얘기가 재밌어지는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결정론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자유로울 수는 있다고 하였으니깐요. 언제 한 번 스피노자와 칸트가 결정론과 자유를 이해하는 방식을 비교해봐도 재밌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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