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분들의 말씀을 들으니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한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ㅎㅎ 왜냐하면 제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가 따지자면 행복에 관한 주제이거든요..ㅋㅋ
@Mandala 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삶의 의미, 행복, 복리, 죽음, 사랑과 같은 주제들이 실천철학 영역에서 종종 연구자들의 관심을 끕니다. 저는 복리와 사랑에 관한 주제를 주로 공부하고 있구요.
"하나의 학문으로 정의되지 않은채"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대략적으로 뭐 일반적인 이론적 대립구도가 없이 산발적으로 연구된다는 의미이시겠지요? 일견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죽음이나 사랑에 관해서는 말이죠.
현대적인 논의에서는 대체로 'happiness'(행복)와 'welfare' 혹은 'well-being'(복리 혹은 복지) 등이 교환적으로 쓰입니다. 'welfare'와 거의 같은 의미로 주로 쓰이는 말이 'good for someone'(누군가에게 좋은 것)이 많이 쓰여요. 'good simpliciter'(걍 좋음)와 대조되어서요. 때론 'self-interest'라는 말도 쓰입니다.
복리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현대적 구도를 만든 사람은 데릭 파핏(Derek Parfit)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유명한 저서 Reasons and Persons의 유명한 부록 Appendix I는 따로 해설 논문이 나와 있을 정도이지요. 여기서 파핏이 구분한 세 가지 접근법이 쾌락이론(Hedonistic Theory; 저는 '희락주의'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욕구충족이론(Desire Fulfillment Theory), 객관적 목록이론(Objective List Theory)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22년 PhilPapers Survey에도 해당 항목이 있지요)
꽤나 이름 있는 윤리학자들이 관련 주제로 저서와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쾌락이론은 그다지 인기는 없어 보이지만 에피쿠로스, 벤담, 밀을 뿌리로 삼고 있고, 로저 크리스프(Roger Crisp), 프레드 펠드먼(Fred Feldman) 등이 현대적인 버전을 제안한 바 있습니다.
욕구충족이론은 어쩌면 현 시대를 잘 반영하는 이론 같아 보이지만 반론 또한 많습니다. 헨리 시지윅(Henry Sidgwick)이 현대적인 논의의 출발점에 있고, 리처드 브랜트(Richard Brandt), 크리스 히스우드(Chris Heathwood) 등이 지지했으며 이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 또한 충분히 해당 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검토합니다.
객관적 목록이론은 많은 철학자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된 것 같은데(PhilPapers Survey) 윌리엄 데이빗 로스(W.D. Ross)가 대표적인 지지자로 여겨지며 삶의 의미 같은 주제를 복리, 즉 개인의 행복과 연결시키는 논의가 이 맥락에서 논의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현대에 들어서 행복 혹은 더 나은 삶, 복리의 증진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이론적 조합이나 새로운 견해들이 종종 나오는 것 같습니다. (토마스 허카(Thomas Hurka)의 완전주의(Perfectionism)는 위 세 구분에 속하지 않는 일종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인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이 분야의 많은 저서들이나 논문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철학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주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논의 초점이 조정되거나 축소된 측면은 있을지 모르지만(삶의 의미와 복리의 문제를 분리해낸다든지) 저는 행복론이 고대서부터 중세는 물론 현대까지도 비록 인기 있는 핫셀러는 아니지만 스테디셀러인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분들도 아니고 올빼미에 계신 선생님들께서도 이 분야가 잘 소개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으시니 "할 일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기쁘면서도 고물상이 된 것 같은 기분도 잠깐 드는군요 ㅋㅋㅋ
본문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저는 @notorious 님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순전히 저랑 관심사가 겹쳐서 입니다 ㅋㅋ).
'행복론'의 범주는 아마 이론에 앞서 선행적으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행복론'이 복리 이론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개인의 삶을 더 낫게(better off)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을 것이구요, 설령 그렇게 시작한다고 해도 공공복리의 증진이라는 문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까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지만 확실한 건 사랑, 인간관계, 삶의 의미, 성취, 자기실현 등등이 모두 복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따져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어로 출간된 글 중에 행복론에 대한 고전적-현대적 논의를 전체적으로 잘 소개하는 글이 있는지는 부끄럽게도 잘 모르겠습니다. 로저 크리스프(Roger Crisp)가 쓴 『밀의 공리주의』(철학과현실사)라는 책의 두 챕터 정도가 복리 이론들을 개괄해주고 있긴 합니다. 조심스럽게 추측해보건대 배경지식이 많이 필요하진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영어를 어느정도 하신다면 Ben Bradley가 쓴 Well-Be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얇은 책인데, 저는 현대적인 논의의 틀을 잡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도 조만간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하고 있구요. 로저 크리스프가 쓴 "Hedonism Reconsidered"라는 논문도 상당히 좋습니다. 이 논문은 쾌락 이론에 대한 몇 가지 주요 반론에 대해 대응하는 논문이라 개괄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상당히 논증적이고 깔끔하게 쓰인 논문이었습니다.
정작 본문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큰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하네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