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할까?

공학 관련 학술 동아리에서 철학 관련 스터디를 준비하면서 요즘 사유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학문 전반에 대한 얕은 흐름들을 짚어보고 철학적 주제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게 스터디의 목표입니다.
나, 너, 세계에 대한 주제 다음으로 잡은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주제인데 예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모두가 성공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입니다.
물론 성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은 (여전히 well defined하지 않지만) 경제적 안정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사실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순 없지요.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분법적일 수 있지만 두 가지 반응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그래 나는 여기까지가 끝인 것 같으니 이쯤에서 만족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하자.
  2. 아니야. 나는 이보다 더 높게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더 노력해서 올라가보자.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땐 우리 사회는 여전히 2의 관점이 만연한 것 같습니다. 저는 1의 관점을 취하면서 마음이 확실히 편해졌습니다만 한편으론 내가 게으르고 자기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이 논제가 철학과 맞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맞지 않는다면 죄송합니다. ㅠ) 모두가 최고가 될 수 없다면 개인의 관점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나 관련 자료가 있다면 참고하고 싶습니다. 혹은 이 질문이 좀 더 다듬어지려면 어떻게 수정되어야 할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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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높은 차원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내가 아니라 남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어떤 구성에서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가 나오지만
보통 다른 이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입장에서는 그것보다는 내가 어떤 바탕에서 무엇을 하고자 했는가?(보통 사회, 역사성의 관점에서) 가 먼저 나오니까요.
보통의 우리나라 왕의 관점(홍익인간)이라는게 2번에 가깝지만 아무도 그것을 과한 요구거나 개인의 욕심이라고 보지 않는 이유는 이런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 추천합니다.

만약에 질문자께서 말하는 것이 단순하게 개인의 차원이라면,
그냥 행복해지면 됩니다. 답은 없습니다. 남들이 뭐라든 그게 중요한가요? 심지어 나를 채찍질하더라도 그냥 개인의 만족일 따름입니다. 구조주의적으로 남들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고 탓하기에는 각 개인은 너무나 가능성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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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선 질문하신 내용의 핵심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또는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질문으로 대강이나마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철학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큰 과언은 아닐 것 같아요. 이후에 다른 선생님들께서도 관련 자료나 탐구들을 알려주시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2. 문제는 무엇이 성공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에 있을 것 같아요. 통상적인 용법에서 '삶에서의 성공'은 경제적인 안정이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뜻하지만, '성공'의 개념이나 의미 자체가 경제적 안정이나 자유로 국한되는 건 아니라서요. 가령 프로젝트를 성공했다고 말할 때나,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할 때, 이 경우는 경제적 자유나 안정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보이니까요. 오히려 이러한 경우에서는 '상정된 목적을 성취했다'는 의미에서 성공을 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상정된 반응이나 선생님의 의문과 같이 살펴보았을 때, 문제 제기된 '성공'의 의미는 다분히 경제적인 안정으로 한정된 것처럼 보입니다.

  3. 그렇다면 문제는 '삶에 상정된 목적이 있는가?'라는 물음인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목적론과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를 건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따라서, 인간적 활동의 목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을 성취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4. 또 다른 문제는 의문과 예상된 반응 속에서 몇 가지 사회적, 경제적 가치와 조건이 당연한 것처럼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단적인 예로, 통상적인 의미에서 성공이 경제적 안정이라는 기준에 따라 판단되는 것은 특정한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가령,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그에 따르는 경제 체제라는 조건처럼 말이에요. 그 외에도 제게는 다음과 같은 의문이 떠오릅니다.

첫째, (경제적 안정으로서) 성공을 위해 우리 모두가 서로에 대해 경쟁하는 것이 과연 당연한가?
(또는 성공이 그 자체로서 경쟁을 유발하는가?)

둘째, 그러한 성공이 정말 모든 사람이 달성할 수 없는 것인가?
(과연 모두가 최고가 되기 어려운 것인가?)

셋째, 그러한 성공이 삶의 주요한 목적이나 보편적인 가치가 될 수 있는가?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생각을 해본다면, 성공은 결과에 대한 판단처럼 보입니다. 즉, 주어진 결과가 상정된 목적에 부합하는 또는 그것을 넘어서는 성과를 보였는지에 따라 성공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아요. 상정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경쟁이라는 과정을 거칠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경우에 대해 경쟁이 요구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또 경쟁이 목적 달성 과정에 필연적인 것은 또 아니니까요.

  1. 아무래도 모종의 혼란을 만들어내는 것은 '성공'이 다양한 의미에서 사용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터디의 목표가 '모두가 성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리는 것이라면, 성공의 의미를 보다 잘 정의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터디에서 정의한 '성공'의 의미가 왜 그러한 의미로 정해졌는지 밝히고 논증하는 작업도 필요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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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덕의 상실』이란 책이 굉장히 흥미로워 보이네요.

사실 스터디가 아직 진행중은 아니고 계획중에 있습니다...ㅎㅎ 주차마다 주제를 달리해서 논의하고 싶은데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남과 비교해서 우위에 서는 삶과 나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각 주장의 논증을 찾고 싶었습니다.

글을 올린 직후에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선생니께서 얘기하셨던 것과 비슷한 질문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미 성공을 경제적인 성공으로 상정한 것 아니냐 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극단적일 수 있을 것 같아 첫 글을 좀 두루뭉실하게 썼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을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람들을 정량적 기준으로 줄세웠을 때 1등을 한 사람이 성공한 것이고 꼴등을 한 사람이 실패한 것이라고 하자. 대략 중간쯤 있는 사람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1등에 도달하는 것이 맞아." 라고 말해줘야 할까 혹은 "너가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정하고 거기에 가까워지며 만족하는 것이 맞아."라고 말해줘야 할까?

입니다. 꼭 중간이 아니더라도 1등과 꼴등에 가깝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이 개인적인 관점에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하느냐가 좋을까에 대한 것입니다. 때문에 제기해주셨던 의문들에서 경쟁하는 것이 당연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공에 다다를 수 없다고 전제해버리고 세 번째 의문만이 남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스터디 때 논의토록 하겠습니다. 제기해주신 의문들 또한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사실 사회에서 경쟁, 비교, 평가하는 일은 꽤 많고 또 필요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가 어렸을 때부터 그런 환경에 노출됐다보니 최근들어 거기에 지치고 상처받는 것들이 많이 보여서 이런 것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때문에 선정한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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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정언명령쪽으로 보면 뭔가 얻어내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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