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목 그대로입니다. 누군가 주체가 되어 어떤 결정을 내리고도, 자신이 그 결정을 내리는 주체라는 걸 모를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결과가 따라올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과 관련해서 아는 연구 동향이나 논문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예전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라 아는 바가 없네요. 철학사 말고 현대 철학을 선호합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을 쓰고 생각을 해봤는데, Donald Davidson - Agency; Davidson - Freedom to Act; Setiya - Reasons and Causes 쪽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말하는 건 (아직 제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행동을 하는 것이 의도를 갖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도를 가지려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알아야하니,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주제에 어느 정도 답을 해주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 결정을 내린다면, 자신이 그 결정을 내리는 주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 라고 이 사람들이 말한다란 결론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야에 처음 발을 들이는 것이기도 하고, 생각한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다른 코멘트들, 논문 추천 하실 거 있으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또 추가할 것은, 제 질문이 존 로크의 회의주의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데카르트와 다르게 존 로크는 우리가 하는 것들을 뒷받침하는 실체 (substance)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결국 우리는 우리를 사람 (person)이라는 것만 안다고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질문은 존 로크와 미묘하게 다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존 로크는 우리가 여러 영혼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영혼을 실체로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 중 하나겠죠. 하지만 제 질문은 더 hypothetical한 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체라면, 우리는 우리가 주체인 것을 알 수 있어야하는가?" -- 이것이 제 질문이니깐요. 확실히 생각한지 얼마 안 돼서 수정이 많다만,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일단, 행위 자체는 자각이나 반성 없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또, 직관적으로 타당한 추론을 하는 일상적 사례들을 생각해 보세요. 이들은 반성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무슨 결단을 내렸는지 알 수는 있겠으나, 그 이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기가 막힌 솔로를 한 뒤에 자신이 뭘 했는지 몰라하는 연주자에게 ‘너는 솔로하지 않았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럼에도 주신 질문에는 미묘함이 있는데, 제 생각에 혼란의 원인은 ‘결정을 내리다’입니다. 통상 합리적 결정은 마음에 현상하는 사고 과정의 결과여야 한다는 이해가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보니 (합리적) 결정이 자각 없이 가능한지 의문시될 수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때로 행위 주체는 도덕적 판단이나 여타 실용적 판단을 함에 있어 그 판단을 정당화하는 과정을 의식하지 않은 채 내리는 듯합니다. 뿐만아니라 그러한 판단을 했는지 자체를 사후에 파악하기도 합니다. (‘그 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며 반추하는 전쟁범죄자를 생각함 직합니다.)
그렇군요. 지금 드는 생각은, 모르는 것과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거나 악기 연주를 하면 자신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모른다기 보단 의식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국 제가 질문하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 행동을 하면 자신이 행동의 주체임을 알 수 있어야 하는가?" 와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car_nap 님 덕분에 좀 더 정확하게 제 질문을 수정할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양상적 질문으로 수정된다면 보다 거부하기 어려워진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다만 페어플레이를 위해서는 양상역 안에 들어오는 내용이 다음처럼 조정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행위자 a에 대해, 임의의 x가 a의 행위라면 a는 자성을 통해 자신이 x하기로 했음을 알 수 있다.
행위철학에는 고전적인 구분이 있는데요. 행동/행위 구분이 그것입니다.
이는 의미의 존재여부로 정의됩니다. 몸짓에 의미가 없으면 행동, 의미가 있으면 행위입니다. 자다 일어났는데 이불이 오줌으로 적셔져 있다는 것은 행동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행동으로 보지 않고 생리현상 정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행동은 의식 안에서 의미 없는 몸적 사건 정도로 정의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Yhk님이 주신 질문에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답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의미를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서 달린 문제로, 의미망의 개념을 도입하면 나는 a라는 의미만을 의도했음에도 a는 필연적으로 b와 연결돼 있으면 b도 의미라고 말할 수 있게됩니다.
이는 실수라는 상황이 그 예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실수는 자신이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부주의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어제부터 SEP에서 "에이전시" 엔트리를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이쪽으로는 완전히 문외한이라 이 질문이 반갑네요.
철학 공부를 하다보면, 다들 에이전시라는 표현을 쓰면서,장황한 이론적 설명은 생략하고 '뭔말인지 느낌 알지?' 식으로 에이전시 개념을 가져다 쓰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특히 사회 철학 분야의 글들과 정치 철학을 논하는 글들에서요. 물론 저도 대략 '응 느낌 알지' 하고, 해당 글의 문맥에 따라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갑니다만ㅎㅎ 그래도 이참에 에이전시란 무엇인가 좀 이론적으로 알아보려고 하는데, 아뿔사 분석철학 알못이라 조금 겁도 나네요ㅎㅎ
좋은 문헌들 있으면 추천 좀 부탁드려요~!
SEP의 agency와 action 항목이 입문으로는 적절한듯합니다. 또 루틀리지에서 2020년 나온 Sarah Paul의 philosophy of action도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고 좋습니다.
다만 사라 폴도 그렇고 SEP도 그렇고 아주 최신 담론까지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러프하게 말하면 데이비슨과 앤스콤이 토대를 놓은 "고전적 action" 이론과 그의 확장이라고 할까요?
80/90년대에 골딘(Golden) 등이 집합적 행위자 개념을 도입해서 agency 논의를 확장시켰는데 (아마 sep에는 여기까진 있을겁니다. 폴 책에서는 본 기억이 없는거같네요.)(누구를 빼먹었나 했더니, 데이비슨 제자인 마이클 브렛맨을 빼먹었네요. 브렛맨도 골딘과 함께 집합적 행위자 개념을 발전시킨 중요한 학자입니다.)
요근래에는 AI와 알고리즘의 행위자성, (신유물론에서 계속 다루는) 동물이나 식물 나아가 사물의 행위자성에 대한 논의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에서 유래한) motivation에 대한 연구도 이쪽으로 합류해서 논의가 풍부해지고 있죠.
이런 논의들을 모두 깔끔하게 다룬 책이나 아티클은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책임의 문제와 엮여서, agency의 rationality라는 규범성 뭐 이런 문제들도 응용윤리/신경윤리쪽에서도 꽤 활발히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질환과 행위자성, 책임 뭐 이렇게 접근하는 방식도 있고....그렇습니다.)
항상 좋은 답변 정말 감사합니다 (: 그렇지 않아도 제가 읽고 있는 신유물론 쪽의 한 책에서 사물의 행위자성을 이야기 하길래, 에이전시 개념부터 좀 알아야지 비판도 할 수 있을 듯해서 공부해 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만달라님이 제인 베넷 리뷰하신 적 있으시지요?)
Agency와 Action 이쪽으로 입문하기에 딱 적절한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ㅎㅎ 사실 이번 여름에 학교에서 agency and causation를 주제로 세미나도 열리는데, 저는 거기에 참석할 지 여전히 고민 중이어서, 일단 지금 제 수준으로 접근 가능한 분야인 지 간보고 있는 김에 SEP의 "에이전시" 엔트리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입문서를 읽어보고 잘 생각해 봐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