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빌리티와 이동 중 거주 개념 관련

안녕하세요
저는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학부생입니다.

모빌리티 이론 관련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존 어리(John Urry) 라는 랭커스터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동 중 거주 dwelling-in-motion(dwelling-in-transit)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요. 하이데거에게 거주란 1) 어터한 터에 뿌리를 박으면서 2)짓기의 활동이 일어나며 3) 사장과 다른 사물들을 불러일으키는 장이 되어, 거주는 현존재의 근본특성이다 라고 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이동성보다 정주성이 부각되는 공간론을 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존 어리가 이동 중 거주 를 통해서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직 미처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명료한 개념화나 하이데거의 거주 개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인식을 받았습니다. 혹시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있을까요? 현재 강현수, 이희상 역의 모빌리티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이나,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을까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우선 저는 존 어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하이데거 전공자도 아닙니다. 또한 존 어리의 이동 중 거주라는 표현의 출처를 정확히 밝혀주셔야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개념에 대한 명료한 기술은 어리 본인의 책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됩니다.

(2) 제 눈에는 어리가 하이데거의 개념에 의거해서 자신 논의를 펼치고 있는건지 아닌건지 글쓴이님의 질문 글에 정확히 기술되어 있지 않네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어리가 하이데거의 거주 개념과 자신의 개념의 차이를 설명할 필요가 없죠.

짐작컨대 어리가 하이데거의 거주 개념에 의거해서 '이동 중 거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나보죠? 말씀대로 하이데거는 이동성보다 정주성을 강조하는 철학자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이데거가 보기에 사람(존재자)은 그가 존재하는 곳(공간)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 존재이죠. 쉽게 말해, 사람은 어떤 곳에서 거주하는(할 수 밖에 없는) 세계-내-존재입니다. 따라서 이동하는 것조차 거주하면서 이동하는 것이고, 이동은 항상 이동 중 거주이죠. 가령 'X가 A에서 B로 이동한다'를 하이데거식으로 표현해 보자면, 'X는 A에 거주함이라는 관계를 맺으면서 B로 이동한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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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해석이 하이데거에 대한 다소 왜곡된 해석이라고 봅니다. 물론, 자세한 설명을 위해서는 어리의 텍스트와 하이데거의 텍스트를 직접 비교해야겠지만, 적어도 하이데거의 논의는 시공간적인 위치 이동의 문제나 도시공학적인 주거의 문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하이데거는 실재를 수리물리학적으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 '안에-있음'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합니다.

즉, 온 세상을 측량화하고 수치화하여 이론 속에 객관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시도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폭로하는 것이 하이데거의 핵심 작업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맥락과 동떨어질 수 없는 존재자들이기 때문에, 결코 '신의 관점'과 같은 세계 바깥의 위치에서 세계를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계-내-존재'라든가 '거주함' 같은 용어들이 사용되는 이유입니다.

물론, 하이데거의 이 논의를 사회학, 건축학, 도시공학 등에서 좀 더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동성'이나 '정주성' 자체가 하이데거의 사유에서 전면에 부각되는 주제인 것처럼 해설하는 것은 적어도 텍스트 주석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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