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분석철학자들을 대표할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을 나눕니다.
1) “역사성”이라는 단어를 연구하는 것이 철학자의 일인가?
이건 짜실한 피드백인데요(…), 분석철학자들의 주된 일이 어떤 단어를 연구하거나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표현이 철학적으로 중대한, 또는 철학적 문제를 야기하는 개념을 표현하거나 용법을 가질 때 이에 주목할 뿐이죠. 일단 “역사성”이 중의성을 (갖기는 하지만, 철학적 혼란을 야기할 정도로는) 갖지는 않으니 연구가 필요하다면 전자의 연구여야겠습니다. 역사성 개념의 분석 말이죠.
2) 역사성 개념은 개념 분석의 대상으로 적합한가?
그런데 역사성 개념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지가 의문입니다. “역사성”은 분석이 필요한 일상적 표현이라기보다는 다분히, (학제적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니) 저자마다 나름의 정의를 해야 할 전문 용어같습니다. 마치 ‘보편자’ 개념을 술어 귀속의 해명을 위해 사용할 뿐, 추가적으로 분석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3) 시점이나 연대기의 문제가 분석철학에서 무시되어 왔는가?
아닙니다. 한편으로, 시제의 논리적 특성은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일찍이부터 발화 맥락과 시점에 따라 문장의 진리값이 달라진다는 점이 인지되어 있었고, 이는 문장과 진술 간의 구별을 두게 했습니다. 이후 프라이어를 통해 시제 표현의 의미론적 구조가 규명되기도 했고요.
연대기 역시 주목되어온 주제입니다. 크립키, 카플란, 에반스, 퍼트남 등은 고유명이나 자연종명사의 의미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적 맥락 및 그 사용의 역사(이른바, ‘인과적 사슬’)가 의존함을 보였습니다.
따라서 분석철학에서는 ‘역사성’ 개념을 망각했다거나 그 의의를 간과했다기보다는, 보다 광의의 ‘맥락 의존성’ 개념을 이를 위해 사용한다고 보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역사성 개념(이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맥락 의존성 개념보다 더 명료하고, 유용한가?
제가 생각하기에 핵심은 이쪽입니다. 일단 “역사성”이 어떤 단일한 개념을 표현하는지부터가 제게는 의심스럽습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 여부에 관한(‘예수의 역사성’) 표현이기도, 시간적 흐름에 관한(‘언어의 역사성’) 표현이기도 하고, 서사로서 역사에 관한(가령, 민족사에 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역사성”이라는 말이란 이처럼 퍽 방만한 용법을 갖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중 철학적으로 필요한 내용은, 제가 느끼기에 다분히 ‘맥락 의존성’ 개념으로 포착됨 직한 것들입니다. 어떤 시점이나 맥락에 의해 표현의 내용이 바뀐다는 측면이요.
혹 역사에 따른 사람들의 사고 방식 변화 따위를 철학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는데, 이편은 이미 사회학이나 인류학의 편으로 넘어간 듯합니다.
여전히 이 마지막 의미를 강조한 ‘역사성‘’ 개념을 취하려면 위의 중의성들을 잘 분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령 하이데거(에 대한 어떤 이해들)의 경우, 제 인상으로는 ‘표현의 시점 의존성’으로부터 곧장 ‘사고 방식의 역사 의존성’으로 넘어가는 것 같거든요.
+)
쓰다보니 질문에 답을 안 했네요. “역사성”에 대해서라면,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적어도 역사철학은 분석적 전통에서 주요한 주제를 형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나 공동체적 역사에 관해서는, 언어철학적 탐구를 위해 다방면으로 사용된 이력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