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단절”(Brechung)은 제 표현이 아니라 『미학 이론』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당연히 이때 “단절”은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사회와 무관한 채 남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고립은 앞서 밝혔듯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물론 예술은 사회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사회와 관계를 맺지만, 그것이 예술이 사회와의 단절을 통해 사회와의 부정적 관계를 성취한다는 제 이해와 양립 불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미적 단절에게는 불가결하게 단절된 것이 남아 있다. 상상에게는 상상이 표상하는 것이 [불가결하게 남아 있다.] 경험적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예술은, 그곳에서 지배적인 자기보존 원리를 그 생산물의 자기존재라는 이상으로 승화한다.”(ÄT, 14, 인용자 강조)
다음으로, 아도르노 철학에서 경험적 현존이 사회적 현실과 크게 구별되어 쓰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양자를 엄격히 구별하려고 하면 사회적이지 않은 경험적 현존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의 인식과 경험이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사회적 과정과 불가분하다는 점을 주장해 왔던 아도르노가 비사회적인 경험적 요인의 존재를 인정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예술의 자율성이 오로지 사회비판을 수행하는 한에서만 주어진다는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예술의 자율성은 계몽의 자연지배 속에서 상(Bild)과 기호(Zeichen)가 분리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노동분업을 통해 자기 자신을 동일시의 계기와 미메시스적 계기로 분리시킬 때, 혹은 개념과 직관으로 분리시킬 때 예술과 학문은 서로 분화되어 각기 독자적인 영역을 부여받습니다.
학문과 문학의 깨끗한 분할과 더불어, 이 분할의 도움으로 이미 야기되었던 노동분업은 언어로 확산된다. […] 기호로서의 언어는 자연을 인식하기 위해 계산에 순종해야 하며, 자연과 유사하려는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 상으로서의 언어는 완전히 자연이기 위해 모상에 순종해야 하며, 자연을 인식하려는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 진보하는 계몽과 더불어 오직 진정한 예술작품들만이 이미 존재하는 것의 모방으로부터 벗어날 능력이 있었다.(Horkheimer, M., Adorno, Th. (1969). Dialektik der Aufklärung. Fischer. 24)
그리고 미메시스의 언어인 상이 사회에서 실재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고 자기 폐쇄적으로 되는 일도 언어의 노동분업과 더불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계몽과 자연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노동을 통한 지배관계에 들어서면서, 자연에 자기를 비슷하게 함으로써 자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방식인 미메시스는 계몽의 진보와 더불어 사장됩니다. 요컨대 예술의 “단절” 혹은 “닫혀 있음”은 예술이 주술과 달리 그 실제적 영향력을 포기하게 됨으로써 획득되는 것이며, 예술의 자율성도 이 가운데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더 이상 비슷하게 하기[Angleichung]를 통해 영향받지 않고 노동을 통해 지배되어야 한다. 예술작품은 아직 주술과 공통되게도, 하나의 고유한, 자기 내에서 닫혀 있는[abgeschlossen] 영역을 정립하는바, 이 영역은 세속적 현존의 관련으로부터 밀려나 있다. 이 영역 안에서는 특수한 법칙들이 지배한다. 주술사가 제전에서 첫째로, 신성한 힘들이 유희한다는 장소를 모든 환경에 반해 한계짓는 것처럼, 각각의 예술작품에서는 그 주위가 현실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두드러진다. 예술은 영향에 대한 포기를 통해 마법적 공감과 자기를 구분하는데, 바로 이러한 포기는 마법적 유산을 더더욱 깊이 고수한다.(Horkheimer, Adorno, 1969, 25, 인용자 강조)
다시 말해 상의 언어가 그 실재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와 단절되는 일은 계몽이 신화를 해체하고 미메시스의 영향력을 소거해서 무력화시킴으로써 발생하지, 처음부터 예술이 사회비판을 수행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라는 제 서술은 틀렸다고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예술이 사회비판적인 한에서만 자율성을 획득한다”는 주장이 과도하다고 보입니다.
그 외에 예술에서 내용과 형식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보편자와 특수자 사이의 거짓 화해에 대한 비판이라든가 하는 논의는 정확히는 질문의 둘째 물음에 해당한다고 보이는데, 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공부해보지 않아 그 물음에 답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