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서 개념분석?에 대해

형식이 잘짜여진 철학적인 쪽글이나 논문같은걸보면

주제로 다루는 개념에 대해 필요조건(?)을 정의하고 시작하는 글들이 있잖아요?

예를들어서 썸타기에 대한 유명한(?)논문을 보면

'썸타기란 iff a가 b에 대해 무슨무슨 감정을 가지고있는 상태이며....'

이렇게 개념분석을 하시더라구요

근데 이런식의 방법은 논의를 좀 더 깔끔하게 해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 이것도 어떻게보면 서술자의 주관적인 정의라고 할수있지 않을까요?

이런 식의 개념정의가 서술자의 직관에 영향을 덜받을수있게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아직 쌩초심자라서 여쭤봅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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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분석은 단지 논자의 약정이나 정의와는 다릅니다.

X에 대한 개념 분석이란 통상 X 개념을 표현하는 모든 문장들을 X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 다른 문장으로 일관되게 옮길 방법을 찾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가령, 우리는 ‘총각’ 개념을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자’로 분석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총각’ 개념을 표현하는, 즉 낱말 “총각”이 포함된 모든 문장들을, 이를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자”로 대치한 문장으로 바꾸어 써도 꼭 같은 말을 하는 것이 됨에 따른 것입니다. 이 때 ‘꼭 같은 말’, 또는 ‘동치’란 통상 ‘동일한 진리 조건을 갖는다’를 통해 이해됩니다. 즉, “…총각…” 꼴의 모든 문장이 “…결혼하지 않은 성인 남자…”와 늘 함께 참이거나 늘 함께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때의 룰(?)이 있다면, 개념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개념을 몰래 재정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겠습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사고실험입니다. 철학자들은 X를 Y로 분석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다수의 사례들에서 X가 Y와 다르지 않음을 보입니다. 게티어 사례는 좋은 예시입니다. 철학자 게티어는, 지식을 “정당화된 참인 믿음”으로 분석할 수 없음을 보이기 위해, 정당화된 믿음이면서 통상 거짓이지만 공교롭게도 참이 된 사례에서, 그 믿음이 ‘정당화된 참인 믿음’을 만족하지만 ‘지식’을 만족할 수 없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설명을 하려면 길어지니 검색을 한 번 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사고실험에서는 평가자의 의미 직관이라는 것이 사용되는데, 이 의미 직관에 따른 논증을 단지 논자 상대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무엇이어서 가치가 없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단, 사고실험의 평가자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만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와 어떠한 개념을 갖고 소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의미 직관 역시 믿을 수 있겠습니다. 또, 우리는 사고실험에 대한 평가자의 평가를 다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실험과학에서의 ‘재현’에 상당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적어도 평가자의 직관이 의심스럽거나 논쟁적임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적어도 논쟁 없는 몇몇 개념 분석의 사례가 있었다는 점(위의 ‘총각’ 사례는 대표적입니다)은 개념 분석이 단지 사적인 약정이나 정의와는 다름을 보여줍니다. 만일 개념 분석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나 약정에 불과했더라면, 다른 이의 개념 분석을 자신의 의미 직관에 비추어 보고 이에 동의하는 과정이 유의미하게 발생했으리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개념 분석이 ‘논의를 깔끔하게 해주는 효과’를 갖는지는 제게 의심스럽습니다. 개념 분석 과정에서 논증자들은 수많은 예문과 예시를 들며 어떠한 가설을 폐기하고 어떠한 요건을 들고, … 최종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내놓는데, 이 과정에서 ‘평소같으면 생각 안 해도 되었을’ 사례들을 고려하게 하는 바람에 논의가 꽤 난삽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작성자 말씀처럼 정의나 약정 따위는 이와 달리 논의를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 주죠. 이 역시 개념 분석과 정의 및 약정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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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가끔씩 떠올랐던 궁금증들이 명쾌하게 해결됬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