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첫 봉급으로 한 일

[칸트가] 마흔 살이 되어서 처음으로 봉급 받는 직장을 하나 갖게 되었는데, 대학 교수가 아니고, 그 도시 도서관의 부사서였습니다. 하도 [칸트의]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그 자리를 칸트에게 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마흔 여섯 살이 되어서 비로소 교수가 되었는데, 예전에 제가 그 사람의 전기를 읽으면서 '이건 아주 특이하다.'하고 생각한 것이… 이 사람이 마흔 살에 비로소 봉급을 받았는데, 연봉 62 탈러라고 합니다. 연봉 62 탈러라고 하면, 세 끼를 먹을까 말까 할 정도의 봉급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이 봉급을 받아서 맨 먼저 한 것이 자기 집에 도우미를 한 사람 쓴 겁니다. 이 사람이 봉급을 받자마자 한 게 도우미를 하나 구한 거였단 말이에요.

왜 그랬겠어요? '이제 정말 공부 좀 전념해 보겠다!' 저는 그렇게밖에 이해가 안 돼요. 이 사람이 남자 도우미인데, 죽을 때까지 40년을 [칸트와] 같이 있었습니다.

가끔 제가 그런 말을 하는데, 칸트가 최초의 프로 철학자입니다. 칸트가 처음으로 철학을 생계 수단으로 삼으면서 철학을 한 사람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최초의 프로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시작이 마흔 여섯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평균 연령이 마흔 여섯이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뭐, 평균만큼 살았으면 전혀 꽃을 못 피우고 말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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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영상 속 칸트는 칸트가 아니라 야코비네요 ㅋㅋ
일주일 전 즈음에 열린 칸트 학회에서도 칸트 대신 야코비가 현수막에 걸렸습니다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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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정말 영상 썸네일이 야코비네요! 게다가, 칸트학회에서까지 야코비 그림을 걸 정도면, 이제 그냥 저 인물을 '칸트'라고 부르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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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슈미트 사례를 뛰어넘는 칸트-야코비 사례가 나왔군요 :astonish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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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 비슷하게 게티어-드레츠케-티벳 승려 사례가 있는데요… 다음 중 게티어는 (주로 사진이 사용되는 2, 3이 아닌) 1번 인물입니다. 종종 퍼트남의 사진이 사용되기도 하는게 뻘하게 웃겨요. 데일리 누스에서도 부고에 2를 띄워서 망신살을 맞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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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는 어떤 티벳 승려인데 이름을 잊었습니다. 3은 드레츠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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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저도 지금까지 2번으로 알고 있었는데 1번이셨다니 충격이네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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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비가 핸섬했나 보군요. 바람둥이 같기도 하고 배우 같기도 하네요. 작고하신 남기호 선생님의 야코비 연구서가 곧 출간될 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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