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인도) 불교 입문서, 폴 윌리엄스의 <인도 불교 사상>(2판)

(1)

사실 '불교' 입문이라는 것이 정말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있었습니다. 흔히들 불교 철학을 플라톤 철학이라던가, 칸트 철학처럼 "한 사상가" (특히 석가모니의) 철학으로 여기는 경향을 보아왔는데, 기실 들여다보면 불교 철학이랑 '서양 철학'처럼 큰 시간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전승되어 온 하나의 '철학적 경향'에 가깝습니다. 그러다보니 이 안에서도, 여러 학파들이 생기고, 여러 뛰어난 논사들이 나오고....

(2)

하지만 무엇보다 불교 입문서를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지역성'입니다. 불교는 크게 세 가지, 동남아의 상좌부, 동북아 한문권의 대승, 티베트-중앙아시아의 금강승/밀교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무엇도 불교가 태어난 "인도 불교"를 온전히 계승했다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그렇다 주장하긴 합니다만...)

그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어떠한 경전을 수용하고, 어떠한 경전을 배제하고, 또한 번역으로 인한 오해/시차들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을 교정/수정하면서 자신들의 교리를 발전시켜나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 즉 석가모니의 가르침이라 불리는 '사성제'조차 (각자의 해석을 배제하고)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고집멸도. 여기서 고(고통), 집(고통의 원인, 집착/갈애), 도(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는 방법 ; 팔정도)는 쉽습니다. 그런데 멸. 이 모든 고통이 사라진 해탈/열반의 경지는 무엇일까요? 이 문제는 그 망할 '무아'라는 것과 함께 불교의 역사 내내 사람들을 괴롭히는 문제입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나가르주나를 제외하면, 정말 어떠한 '근본성/본질'도 없는 무언가를 받아드린 불교 학자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개별적인 자아'라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아비달마에서는 오온이, 유식에서는 식이, 중국 대승에서는 불성 -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방식으로 말하니깐요.)

(3)

폴 윌리엄스의 <인도 불교 사상>은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피해갑니다. 절대 극단으로 가지 않는 섬세하고 균형잡힌 논의,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는 그 분야 전공자에개 맡기기 (폴 윌리엄스는 중관 전공, 다른 공저자인 앤서니 트라이브는 상좌부, 알렉산더 원은 밀교 전공입니다.), 대립되는 내용이 있다면 다양한 학설을 소개하기. 정공법입니다.

특히 이 정공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a) 석가모니의 원래 가르침에 대한 내용과 (b) 대승 불교의 기원에 대한 논의입니다.
(a) 석가모니의 원래 가르침에 대한 내용은 여러 책에서, 여러 종파적 배경 (상좌부, 중국 대승 등)을 깔고 있는 내용을 읽었지만, 이 책만큼 좋았던 경우는 없습니다. 우선 (i) 최대한 이후 아비달마 불교 등에서 발전된 '정교한 해석'을 배제하고, 최대한 석가모니가 했었던 단순하고 (그만큼 문제가 있는) 해석을 그대로 제시하고자 노력했다. (ii) 동시에 해석의 근거가 되는 문헌을 충실하 밝혔다. (이 부분이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의외로 불교 철학 입문서에서는 그냥 카더라....라는 수준의 인용문이나 출처를 찾을 수 없는 인용문들이 왕왕 등장하곤 합니다.) 게다가 (iii) 사성제, 무아, 연기 등과 같은 내용뿐 아니라, 불교의 명상법 그리고 불교의 세계관 (육도) 역시도 충실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좋습니다.

(b) 대승 불교의 기원 역시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아직까지도 학계에 정론은 없고, 온갖 이설들이 왕왕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윌리엄슨은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으로 가면서도, 대승의 핵심 - 즉 보살이라는 이상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히 하고자 노력합니다.

(4)

그 외에도 (c) 복잡한 여러 아비달마 학파의 구분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설명한다는 점 (d) 중관/유식/여래장-불성에 대한 컴펙트한 가르침은 물론 <법화경><화엄경>처럼 인도에서는 거의 중요하지 않는 경전도 다룬다는 점 (e) 밀교에 대한 여러 환상들을 거두어내고, 실제 밀교가 어떠하고 수행법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다룬다는 점 역시 호평 받을 만한 부분입니다.

(5)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책이 '인도' 불교 사상사인만큼, 중국 - 동남아 - 티베트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지만 (a) 중관-유식 이후, 여러 힌두 학파들과 치고박고 싸우면서 인도 불교 논리학을 정립시킨 디그나가, 다르마키르티에 대한 논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질 만한 학자를 통으로 빼먹은 셈이죠.)

(b) 나아가 아직 '인도' 불교 사상사는 요원하다는 아쉬움이 좀 들었습니다. '인도 불교' 사상사이지만, 불교가 당시에 있었던 다른 '인도 사상들'과 어떻게 충돌하고 대립하면서 자신들의 견해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뭐, 사실 이건 영미권에서도 이제 시작인 부분이라....앞으로 좋은 책이 나오겠죠 뭐.)

(6)

인도 불교를 다루지만, 어쨌든 인도 불교가 나머지 불교의 토대를 이루는만큼, 불교 사상에 관심 있으신 분이라면 이 책을 정독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동북아 불교에 대한 책을 하나 추천드리지만, 이시이 코세이의 <동아시아 불교사>를 추천드립니다. 책이 얇고, 사상을 거의 주마간산격으로 거의 다루지 않지만 이 책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i) 불교 경전이 번역되어서 영향력을 미친 시점 (ii) 그러한 번역으로 당대 중국 학술계는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 (iii) 그리고 중국 - 일본 - 한국의 불교계는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있는지에 대해서 시간적 순서에 따라 굉장히 일관성 있게 쓴 책입니다.
(개별 종파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삼론은 <중국 반야 사상사 연구>, 천태는 <천태불교의 철학적 토대>, 화엄은 <중국화엄사상사>, 선종은 <중국선종사> 정도의 책이 기억에 남네요. 일본 불교에 대해서는 미노와 겐료의 <일본 불교사> 책이 좋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흠....마츠모토 시로의 <티베트 불교 철학> 서장이 역사에 관해서는 깔끔한 입문서라 생각합니다. [다만 책의 나머지 부분은 굉장히 디테일한 내용을 다루는 학술 논문이라...안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각 책의 난이도는 상이한 편이고, 초점도 철학책과 사학책이 섞여있긴 합니다.)
(동남아 불교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한국어 저서로는 좋은 개괄서/개론서가 없습니다. 영미권도 소략하긴 하지만, Stephen Berkwitz의 South Asian Buddhism이 가장 좋은 듯합니다. 그 외에도 Kate Crosby의 Theravada Buddhism도 좋은 책입니다. 그리고 Kate Crosby의 논문/저서들에는 정통 상좌부 외에도 여러 잊혀진 '불교 경전'에 대해서도 논의하는데 이 부분도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13개의 좋아요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하도록 할게요. 그런데 히라카와 아키라가 집필한 인도불교사 책도 유명한 것 같던데요, 이에 대해 혹시 간단히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1개의 좋아요

(1) 읽어본 적이 없어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1개의 좋아요

제가 불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비평하기 어렵지만, 대가의 책인만큼 내용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초심자를 위한 책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어느정도 불교를 접하신 분이라면 권할 수 있지만 처음 불교를 접하는 분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2개의 좋아요

알겠습니다. 위에서 좋은 책들 많이 추천해 주셨는데,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