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름홀츠에 관한 질문

헬름홀츠의 기호이론(sign theory)는

  1. 자극(stimulus)은 반응을 곧바로 촉발시키지 않는다
  2. 감각(sensation)은 자극을 기호화(symbolize)한다.
  3. 이 기호화는 우리 경험의 정합성을 목표로해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4. 예를 들어 칸트에 의해서는 사물에 대한 선험적 기준으로서 작용된 공간은 사실 선험적 기준기 보단 우리 경험의 해석이다.(하늘에 떠있는 달과 내 손가락이 크기가 같아 보이지만 그 크기가 다르다고 인식)

혹시 이 이론이 공간을 선험적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 이외에 칸트와 구분되는 지점이 있나요??

그리고 이 기호화(symbolize)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그냥 해석적..? 구성적..? 인식을 말하는 걸까요)잘 모르겠어서 혹시 관련되어서 아시는 분 계실까요?

혹시 이 시기 철학적 물리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해주는 짧은 책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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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철학자/수학자/과학자들은 당대에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던 자연과학/수학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칸트의 철학을 재해석하거나 비판하는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심리학 및 생리학의 발전이었고, 따라서 많은 동시대인들이 칸트의 형이상학적 인식론을 경험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지각이론으로 재해석하고 싶어했죠. (이러한 19세기의 특징적인 경향성은 훗날 프레게와 후설에 의해 "심리학주의"라고 비판받게 됩니다.) 헬름홀츠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헬름홀츠는 전반적으로 완전히 Kantian spirit을 따르고 있었고, 따라서 칸트의 철학이 19세기의 발전된 심리학과 경험과학과 양립가능하다고 봤던 것이죠. symbolize 역시 이러한 의식 내지 무의식적인 활동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의 일환일 것입니다.

칸트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언급하신 것처럼 시/공간을 (선험적) 순수직관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죠. (이러한 경향성은 사실 헬름홀츠 뿐만 아니라 19세기 전통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흐름입니다.) 다른 중요한 차이는 역시 심리학주의 문제인 것 같아요. 헬름홀츠는 심리학주의가 오히려 자연과학의 성과라고 보고 이를 통해 칸트의 철학을 재구성하고자 했지만, 칸트는 3비판서에서 줄곧 자신의 선험철학적 서술을 심리학적 서술로 오독하지 말라고 경고했거든요. 왜냐하면 사실의 문제(심리학)로부터 정당성의 문제(선험철학)이 나오지 않는다고 칸트는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문제는 칸트의 설명이 심리학적 설명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설명이냐의 문제가 오늘날 칸트 연구에서까지 논쟁이 됩니다. 크게 3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1. 칸트는 심리학주의를 명시적으로 거부했고, 실질적으로도 심리학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2. 칸트가 말로는 심리학주의를 비판했지만, 사실상 심리학주의적인 설명을 했다/포함한다. 따라서 문제적이다.
  3. 칸트의 선험철학은 사실상 심리학주의적 설명을 포함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1번을 취한다면, 칸트-헬름홀츠의 차이가 극대화될 것이고, 2번이나 3번을 취한다면 그 차이가 작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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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그림이 좀 더 일목요연 해진 것 같습니다. 감사합이다.

한가지 추가적인 의문이 있는데, 헬름홀츠가 sign theory를 통해 논박하려 했던 projection theory(자극은 곧바로 반응으로 이어진다)는 보다 행동주의적 입장이고 그 이후 Muller나 헬름홀츠는 각각 (심리학적 의미에서)선험적인 신경의 특성으로, 경험의 (체계의 정합성을 위한)자동 조정 작업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던 것으로 이해하면 적절할까요?

세부적 논의로 들어가면 솔직히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데요. 부정확성을 무릅쓰고 대답해보자면, 셋 모두 큰 틀에서는 칸트적인 입장을 견지합니다. 즉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감각기관/신경/뇌 안에 있는 모종의 신경생리학적 작용 및 활동이 (인식 주체 내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projection theory를 행동주의라고 하기는 좀 어색해보입니다.) 헬름홀츠의 이론이 앞의 둘과 차이가 있다면, 헬름홀츠의 경우 지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신경생리학적 작용 뿐만 아니라 (경험에 앞서는) 심리학적 활동에 대한 설명 역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세기 과학자들보다는 신칸트주의를 타겟하는 철학사 책이긴 하지만, F. Beiser 옹의 <The Genesis of Neo-Kantianism, 1796-1880> (OUP Oxford, 2014)를 추천드립니다. 가볍게 읽기 좋고, 관심있으신 헬름홀츠 등의 파트만 따로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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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 사이에 있어서 설명 방식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던 거군요.

요즘 신칸트주의랑 논리실증주의 시기에 관심이 생겨서 「다보스의 결별」을 읽어보고 있는데 배경지식이 전무하다 보니까 전체적인 그림이 안 그려지더군요;;

말씀해 주신 책 또한 부분적으로 참고하며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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