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올빼미 분들의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트롤리 딜레마는 살면서 처음 접하는 철학적 논쟁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너처럼 행동하면 되겠어 안 되겠어"라는 어머니의 꾸중을 정언명령과 연결시키지 않는다면요^^ 그렇듯 여기 계신 분들 또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생각을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말해본 경험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강올빼미에는 대단하신 분들이 많으니 많은 종류의 답변이 쏟아질 거라고 예상이 되는데요 과연 서강올빼미 분들은 그 상황에 처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실 저는 죽어도 노선을 바꾸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만

저는 내공이 없어서 "도덕적 행위가 아닌 것을 넘어 부도덕한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5명 살고 1명 죽는다는 단순한 계산이 오류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정도로 밖에 답을 하지 못하는데요 서강올빼미 분들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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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리 딜레마는 사실 답이 중요한 문제라기 보단, 문제 발생 자체가 논증에 있어서 핵심이기에 전 보통 “상황 봐서 니 알아 해라”라고 답하는 편입니다

예전에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몇 가지 글을 써본 적이 있어요. 하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쓴 글이고, 다른 둘은 지금 성균관대학교 철학과에서 트롤리 딜레마로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인 후배와 논쟁하면서 쓴 글이에요. 많은 시차를 두고 쓴 글들인 만큼, 제 입장에도 변화가 큽니다. 지금 제가 이 글들과 똑같은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정의란 무엇인가: 철로를 이탈한 전차의 딜레마
https://blog.naver.com/1019milk/80112480155

철로를 이탈한 전차의 딜레마에 대한 단상: 엉터리 문제를 해소하기
https://blog.naver.com/1019milk/memo/221204499667

철로를 이탈한 전차의 딜레마에 대한 단상: 합리화를 거부하고 악을 인정하기
https://blog.naver.com/1019milk/memo/221210068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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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

[토론] 트롤리 논제는 사이비 문제인가?(1)
https://blog.naver.com/eric970/221248046613

[토론] 트롤리 논제는 사이비 문제인가?(2)
https://blog.naver.com/eric970/221249436513

트롤리 논제의 사이비성 논의에 대한 추가보충
https://blog.naver.com/eric970/221220578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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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적은 없고, 예전에 봤던 인상적인 논문 하나만 소개해봅니다. (Leiter, Brian., The death of god and the death of morality, 2019)

for a non-egalitarian, the entire Trolley Problem is misconceived. For the non-egalitarian, the question is: who are the five, and who is the one to be sacrificed? Consider the “Nietzschean Trolley Problem” (apologies for anachronism): a runaway trolley is hurtling down the tracks towards Beethoven, before he has even written the Eroica symphony; by throwing a switch, you can divert the trolley so that it runs down five (or fifty) ordinary people, non-entities (say university professors of law or philosophy) of various stripes (“herd animals” in Nietzschean lingo), and Beethoven is saved. For the anti-egalitarian, this problem is not a problem

요약하자면 니체로 대변되는 반평등주의자들이 보기에 트롤리 딜레마가 딜레마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철학적 논쟁의 대상도 아니지요. 트롤리 딜레마는 딜레마에 놓인 사람이 평등이라는 가치를 지고의 가치로 받아들일 경우에만 딜레마로 성립합니다. 그러나 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한 명이 위대한 천재(베토벤)이고 나머지 다섯이 평범한 인간(법대 교수; 글쓴이 Leiter 본인이 법대 교수입니다)인 상황에서 다섯을 죽일 가능성이 높지요.

그리고 인용 구절의 단락 마지막 문장이 논문의 핵심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Belief in an egalitarian God would thwart that line of reasoning; but absent that belief, what w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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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이라는 것이 도덕적 선택이 되려면 선택의 영향을 받는 대상과 영향의 성격과 정도가 선택자에게 상식적인 선에서든 선택자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 선에서든 어느 정도 확실하게 알려져 있어야 합니다. 알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이든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 선택은 어떤 선택이든 도덕적 선택이 아닙니다. 저는 트롤리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 하는데, 선택에 따라 한 명의 목숨을 살리느냐 다섯 명의 목숨을 살리느냐가 갈리는 상황이 그 문제에 가정되어 있다면, 동일한 유형의 상황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럴듯한 가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그 한 명과 다섯 명에 대해서 한 명이라는 것과 다섯 명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라는 가정도 되어있다면 그 가정이 그럴듯한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그럴듯한 가정이라고 하더라도 선택의 영향을 받는 대상에 대한 그 정도 지식만 가지고 문제의 선택을 도덕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선택은 도덕적 선택보다는 간단한 산수 문제 풀이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다른 사정이 동일하다면 [다른 사정을 알 수 없다면], 한 명을 살리는 것보다는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이, 다섯 명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한 명이 할 수 있는 좋은 일보다 더 많고, 다섯 명의 죽음이 한 명의 죽음보다 사람들에게 고통과 손실을 더 야기하기에, 더 좋다는 결론이 자명하게 나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계산을 정확히 한 결과는 보통의 간단한 산수 문제 풀이의 결과와는 다릅니다. 한 명이 죽고, 그래서 선택자는 다섯 명이 죽었을 때와 아마도 똑같은 정도로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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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순히 사람 수 측면에서 레버를 당겨 1명 죽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의 부차적인 조건들을 붙이는 것은 이 논제를 너무 어지럽게 만든다고 생각하네요.

보통 저 사례와 추후에 미는 사례를 같이 넣어서 윤리적 직관의 충돌을 시험해보지요. 저는 그렇게 직관이 충돌할 때, 그것을 화해시키는 해법을 찾아보게 하는 용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덕 논쟁으로 결국 정답이 아닌, 가치관마다 다른 선택이 유도되는데,
그 가치관에 따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의 다툼이란 측면과
보통 사람들도 쉽게 접하고 생각해볼 수 있을만한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처럼,
대개의 경우, 특히 이런 논쟁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에겐,
직접 한 명을 밀어서 죽이는 사례와 함께 윤리적 직관의 충돌이 일어나는 문제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트롤리 딜레마는 단순히 살리는 사람의 숫자 문제는 아닐 거라 생각해요.

하여 이 말씀대로, 많은 사람들이 트롤리 딜레마의 세부 조건들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곧 많은 사람들에겐 이 문제가 충분히 딜레마가 된다는 방증이라 생각하고, 따라서 충분히 철학적 의의와 딜레마적 요소를 지니고 있기에 충분히 철학 논쟁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은 트롤리 딜레마 자체에 대한 생각이었구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물으신다면,
직접 한 명을 미는 케이스와 함께 고려하여,
공리 판단과 의무 판단의 절충으로 알려져 있는 선택으로서
선로를 한 명 쪽으로 돌려 5명을 살리는 선택을,
미는 케이스에선 밀지 않고 5명이 죽는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이 판단이 논리적 '판단'인지,
윤리적 직관의 충돌과 딜레마의 해소를 위한 '납득'인지는
여전히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