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내 질문의 요점을 망가뜨리고 말았어요.": 마이클 샌델, 하버드생에게 한 수 배우다?!

16898175779883

SNS에서 이 사진이 <하버드생 레전드ㄷㄷㄷ> 혹은 <하버드생의 아이디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고 있더라고요. 아마 그 글의 작성자 분은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네요.

사스가… 하버드생. 마이클 샌델의 질문을 그 자리에서 해결해 버리네?! 그 유명한 샌델 센세조차 "학생은 방금 내 질문을 망가뜨리고 말았어요!"라고 하지 않았냐? 이거 샌델 패배 선언 아님?!

그런데 이런 사진을 보고 있는 철학과 대학원생은 속이 뒤집어집니다. 샌델이 한 말은

학생은 방금 내 질문을 망가뜨리고 말았어요!

가 아니라,

학생은 방금 내 철학적 질문의 요점을 망가뜨리고 말았어요!

였으니까요. 더 알아듣기 쉽게 번역하자면,

야, 이 똥멍청아, 내가 지금 그걸 묻고 있는 게 아니잖아? 말귀를 못 알아먹냐?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즉, 샌델은 결과주의 윤리에 대한 반례로 저 질문을 제시한 것이죠. 결과주의 윤리에 따르면, 모든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잖아요. 일종의 공식처럼 표현하자면,

모든 행위 x에 대해서, x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인 행위라면 x는 도덕적 행위이다.
(∀x)(Ux → Mx)

U: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이다.
M: 도덕적이다.

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 주장에 대한 부정은

"모든 행위 x에 대해서, x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인 행위라면 x는 도덕적 행위이다."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x)(Ux → Mx)

일테고, 위와 논리적 동치인 주장은

어떤 행위 x에 대해서, x가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인 행위이더라도 x는 도덕적 행위가 아니다.
(∃x)(Ux & ~Mx)

이죠. 샌델은 바로 이러한 행위 x에 해당하는 사례를 제시한 거고요. 즉, 1명을 희생시켜서 시한부 환자 5명을 살리는 행위가 썩 도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거죠. 비록 이 행위는 '더 많은 사람에게 이익'인 행위이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을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살해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 저 학생의 답변은 도덕철학의 쟁점이나 논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어요. (a) 제시된 상황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 상황'이 아니라 결과주의 윤리의 허점을 지적하는 '반례'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b) 사람을 '어떻게' 살려야 하는지가 쟁점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과 무고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 중에서 '무엇이' 도덕인지가 쟁점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 거죠.

그런데도 저 학생의 답변이 마치 도덕철학적 질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인 것처럼 SNS에서 돌아다닌다는 게 역설적이네요. 사실, 이 사례뿐만 아니라, 철학이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사례들을 볼 때면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곤 합니다. 실제 철학의 쟁점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잘못된 이야기들이 자주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칭송받을 때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할지 막막해지네요.

12개의 좋아요

글의 쟁점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이지만,, 쉬는 시간에도 저런 철학 관련 컨텐츠를 즐기시는건가요? :fearful: 고등학교 때부터 철학책을 보신걸로 아는데 정말 철학 오타쿠시네요..

2개의 좋아요

아뇨, 종합시험 공부하다가 페북에 저게 올라온 걸 보고 눈이 뒤집어져서 썼습니다... 이걸로 제 종합시험 공부를 위한 시간이 또 사라졌네요;;ㅠㅠ

5개의 좋아요

ㅋㅋㅋㅋㅋ 저럴거면 트롤리 딜레마도 ‘평소에 브레이크 점검을 잘 하면 그만이죠’ 하고 말면 되지 뭐하러 사고 실험을 만듭니까….

7개의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정확한 비유네요

1개의 좋아요

철수는 운동장 왼쪽을 4m/s로 달리고 있습니다. 영희는 운동장을 오른쪽으로 6m/s로 달리고 있어요. 12시에 계주를 시작한 두 사람이 만나게 되는 시각은 언제일까요?

왜 철수와 영희는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걸까? 함께 달리면 안 되는 걸까?

출처

같은 사례랑 궤를 같이 한다고 봅니다. 뭐 아마 저 샌델의 수업 내에서도 그랬을 것이고, 농담으로 잘 넘어가면 문제가 없겠습니다만 ... 설마 저걸 갖고 진지하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많을 ... 까요 ...?

1개의 좋아요

어... 음... 인터넷에 저 질문을 검색하다가 국내의 F모 커뮤니티에 달린 댓글들을 봤는데... 댓글들이 가관입니다. “토론에서는 뭔 말인들 허용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인터넷 망령 애들이 하버드생을 눈치 없다고 까네?ㅋㅋㅋ”, “정답만 강요하니까 한국에서 토론 문화가 정착 안 되지!”, “질문의 요점을 망가뜨렸다는 건 한 방 먹었다는 뜻이잖냐?“, “자유로운 대답을 막으면 창의성이 죽는다!” 등등... 어지럽네요...

3개의 좋아요

ㅋㅋㅋ 그런데 사실 (아마도 @YOUN 님께서도 공감하시리라 제 멋대로 생각해봅니다만 ...)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제일 무서운 상황은 그냥 아무도 대답 안 하고 침묵만 감도는 상황이니까요 ... 저런 식의 요점을 놓친 대답을 하는 경우에는 최소한

올, 한 방 먹었는데? 자, 여기에 설정을 하나 더 더해보자. 이미 돌아가신 분의 장기는 무슨무슨 질병으로 인해서 이식이 불가능함! 땅땅! .... 이번에는 어떻게 할래?

같은 식으로 토론을 이어나갈 수 있으니, 저는 저 정도면 감지덕지인듯 합니다 ...

1개의 좋아요

글의 요지에 동의합니다. 철학 수업에서는 질문의 요점을 파악해야하겠죠. 한편으로는 실용성이 윤리적 명제를 논하는 가치에 영향을 끼치는 지를 탐구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예를 들어서, 자율주행차 시대가 현실화(빠르면 10년이내 상용화)되면서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일반 대중과 공학계에서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기사로 다루기도 했습니다

공학계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었던 거 같기도 해요. 딜레마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하기 위해서 MIT에서 도덕실험(https://www.moralmachine.net/)을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트롤리 딜레마가 자율주행에서 과대평가되었다는 논문이 ICSE라는 컴퓨터공학계의 유명학회에 개제되기도했습니다.

요점이 3가지 정도 있는 거 같은데, 그 중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과대평가되었다 거는 아래에서 얘기될 거 같습니다.

  • 현실 상황은 변수가 너무 많아서 트롤리 딜레마처럼 이상적인 상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즉 트롤리 딜레마에 대해 토론이나 도덕실험을 해서 결정 알고리즘을 정해놓아도 쓸일이 없다.

이 예시는 컴퓨터공학계에서 트롤리 딜레마라는 윤리 명제를 다루는 경우입니다. 사실 정확하게 자기네 맥락에서 이 명제에 대해 연구하는 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다루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언론에서 이 트롤리 딜레마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일부 이유가 자율주행 때문이기도 하니, 공학계의 의견은 우리 사회가 이 윤리적 명제를 얼만큼 의미있는 것으로 다루게 될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두서없이 글을 쓰고 있는데 정리하자면!

  1.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윤리적 명제가 얼마나 현실의 문제와 관련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그 명제를 논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듯하다. 이런 판단 기준은 유의미하고 타당한 것일까?
  2. 더 나아가서 어떤 윤리명제를 다루는 것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질까? 많은 윤리학 대학원생들이 자기 연구주제를 정리하여 교수에게 찾아간다. 그들이 듣기 가장 무서운 말은 "그래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말일 것이다. 사실 이는 윤리명제 뿐 아니라 모든 (특히 당장의 경제적 가치가 애매한) 연구주제에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저 학생이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고, 철학 수업에서 논쟁 지점을 벗어나는 게 좋은 수업 태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런 윤리적 문제가 실생활에 발생하긴 하나요?" "실생활에서 발생하지 않는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라는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자비의 원리를 발휘해도 좋지 않은가하고 생각합니다.

나아가서 저 게시물을 보고 통쾌하다고 보는 대중들 중에는 첫번째 질문에서는 NO. 두번째 질문에서도 NO라고 생각을 정리하며 저런 철학 수업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특히나 대중들은 저 철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때문에 저기서 다루는 결과주의에 대한 반론보다 저런 윤리적 명제를 다루는 가치에 대해 더 관심있으니, 학생의 질문을 자비의 원칙으로 해석한 버전의 논의에 더 관심이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4개의 좋아요

심지어 블로그 글도 제대로 읽지않고 멋대로 댓글을 달거나, 답정너의 정신으로 혼자만의 뇌피셜을 쓰는사람도 종종 있지않습니까? 저도 youn님의 심정을 이해할수 있는것 같습니다. 미디어에 종종 나오는 어떤 광대는 상대방의 주장을 멋대로 단장취의해 멋대로 조롱하고 비난하는 짓을 아무렇게나 하기도 합니다.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1개의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