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체성에 대한 의문

인용은 생략했습니다. 중간에 논의를 단순화 시키기도 했습니다.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에서 이야기 나온 것과 제 생각을 좀 정리해서 올립니다. 심리철학 전공자가 아니고 이 분야 훈련이 부족해서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구하고자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기억과 욕망과 성격 등 모든 정신석 속성은 신체적 활동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내 정신은 내 몸과 똑같은 것이거나, 몸을 이루는 물질들의 물리적 관계로 인해 생겨나는 것일 것이다.
(이 점을 설명하는 좀 더 자세한 방법이 있겠으나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정신과 몸이 분리 가능하다는 상상을 허용하는 것이 정체성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몸-나와 정신나라는 개념이 서로 다른 사고실험에서 전면에 등장하면서 혼란을 일으킨다. 정체성 개념을 살릴려면 정신과 몸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몸과 정신의 연결을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아마도.. 정신이 물리적 작용의 결과라는 입장이라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임의적이지만 constitutive panpsychism을 상상하고 있다..)

그럼 나는 몸인가? 그런데 몸을 이루는 세포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물질로 대체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지금 나를 이루는 세포는 하나도 남지 않고 완전히 다른 세포들로 대체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존재를 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마 그래야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오래 전의 나와 오랜 후의 나를 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특정 육체의 구조를 지속 시키는 어떤 내적인 시스템일까?
그럼, 이 시스템이 유지되기만 한다면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은 조금씩 대체되어도 나의 동일성은 유지될 것이다. 당장은 좋은 대답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둘로 나누면 나는 둘로 나뉘어지는가? 이 시스템은 부분들을 결합시키는 조정력(coordination)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부분들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어떤 대상이 어떤 대상으로 지속되려면, 조정력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둘로 나뉘는 순간 이 시스템은 결합 유지에 실패한 것이고 그래서 조정력을 잃은 것이 된다. 즉 나를 구성하는 시스템이 둘로 나뉘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기껏해야 새로운 두 존재자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을 논증하는 거꾸로 된 방법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은 일대일 관계이다. 그런데 몸이든 마음이든 분리될 수 있다고 가정하면, 당연히 정체성 개념은 좌초되지 않겠는가? 정체성 개념을 전제하고 그것을 찾고자 한다면 "분리되지 않음"을 내적 성격으로 가진 조정력에 주목하는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정 시스템이 곧 정체성인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처참하다. 다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만약 두 개의 별개의 조정 시스템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로 결합된다고 해보자. (조정력은 분리되지 않음을 내적 성격으로 가질뿐 결합되지 않음은 내적 성격으로 가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도로가 하나의 도로 합쳐진다고 해보자. 각각 도로는 그 도로를 그 도로로 유지해주는 조정력을 가질 것이다. 예를 들어 도로의 각 부분이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가 단순하지만 도로의 조정력이라 할 수 있다.

두 개의 도로가 하나로 합쳐지면 그 합쳐진 구간의 조정력은 이전의 각 도로의 조정력과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단순히 말해, 두 개의 도로는 합쳐진 구간에서도 쭉 이어진다.

나는 위에서 조정 시스템이 그 구성을 대체할 수 있다고 인정했으므로, 더 복잡한 경우에서의 결합도 허용되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인형의 부분을 각각 조정력을 잃지 않을만큼 분리한 다음 결합시키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여기 결합된 인형이 있다. 두 인형의 조정력은 결합된 인형의 조정력과 인과적으로 이어져있다.

아니면, 나와 어떤 타인이 어찌저찌 하나의 유기체로 결합을 했다고 해보자. 그런데 나와 타인을 교묘하게 나눠서 합친거라, 나와 타인을 결합하지 않고도 각자 나로서 생존할 수 있는만큼의 부분만큼을 나눠서 이를 합쳤다고 해보자. 그럼 그 유기체의 정체성은 나와 연결되어있는 것인가 타자와 연결되어 있는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두 개의 대상이 하나의 대상으로 결합된다면, 각 대상이 그 대상으로 있게 해주는 두 개의 조정 시스템, 즉 각 대상의 정체성이 하나의 대상으로 연결되게 된다. 만약 조정 시스템의 지속이 정체성의 지속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대상에 두 개의 정체성이 연결되어 지속하고 있다는 말이된다. 하나인데 두 정체성? 이것도 말이 안된다. 정체성은 일대일 관계이다.

조정 시스템끼리는 결코 결합할 수 없는 독립성을 가진다고 해야할까? 시스템이 결합하면 더 이상 같은 조정 시스템이 아니라고 해야할까?
그럼 모든 교차로마다 새로운 도로가 생기는 것이다. 즉 모든 결합마다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을 받아들일만한 좋은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만약 그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이 여정은 성공적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볼 땐 두 가지 해결책밖에 없다. 정체성 개념을 포기하거나, 결합과 분리가 모두 불가능한 어떤 개념을 정체성과 연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후자에 해당하는 설득력있는 개념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실체, 본질, 모나드, 영혼, 리 따위의 개념이 떠오르긴한다. 어? 사실 정체성도 있고 영혼도 있는 것인가? 주말에 교회에 나가야겠다.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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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상술하신 바와는 별개로, 저도 심성과 별개의 정체성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개념이 이를 나름 잘 반영해 온 전통적 개념이라고 생각해…서 요즘 주말에 교회를 가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는 합니다.

다만 영혼이 뭔가 실체적 존재자라고 보기에는, 여기에서 ‘영혼’에 해당하도록 요구되는 최소한의 자원이란 인과력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는 그러한 것이어서, 께름칙함이 있죠. 한편 이걸 ‘자아’같은 식으로 부르기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서 요구됨 직한 정체성이란 스스로뿐 아니라 타인으로부터도 부과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뭐가 필요한 걸까… 잘 모르겠습니다(?). 가끔씩은, 특정한 시공간 연속체(또는 ‘조정 시스템’)에 인과적으로 연결된 서로 다른 단칭적인 심적 파일들의 집합 (그런 것이 있다면 일종의 동치류가 되겠는데요) 따위로 이 ‘영혼’이랄 것을 환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이걸 어떻게 명료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게으르네요.

이와 별개로, 영혼을 단칭 사고에 기반하는 정체성 요소로 생각을 하면 기독교적 영생 개념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답니다? 만물이 소멸되어도, (영원하다고 상정된) 하느님이 누군가에 대한 단칭 사고를 유지하고 있으면 그의 영혼은 영원히 보존되는 것이고, 반면 하느님의 심성으로부터 단절된다면 그의 영혼은 만물의 소멸과 함께 소멸되는 것이니까요.

(역시 대륙합리론자들은 뭔가를 알았던 것입니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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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영국 경험론자들에게 살해당하셨군요.

나의 기억과 욕망과 성격 등 모든 정신적 속성은 신체적 활동에 기반한다. -> 내 정신은 내 몸 또는 내 몸을 이루는 물질들의 물리적 관계로 인해 생겨나는 것이다. 이 논증은 나의 기억과 욕망과 성격이 내 정신에 포함 또는 일치한다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세포가 교체되었을 때 '나' 가 바뀐다는 것은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바뀌었을 때 ‘나’의 정체성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만약 인간의 정신이 오직 물질의 작용에 의한 결과물이라면, 세포가 바뀌었을 때 ‘나’에 대한 관념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물론은 단적으로 틀렸습니다…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아직 너무 어려서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